독자 속이는 ‘기사형 광고’...조선일보 1위, 한국경제 2위
2019년 10월 17일 15시 56분
언론의 생명은 신뢰다. 언론 사업은 뉴스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정보를 판매하는 비즈니스지만 사실은 그 속에 담긴 신뢰를 판다고도 할 수 있다. 올해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공개한 세계 38개 국가 언론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언론 신뢰도는 22%였다. 조사 대상 국가 중 꼴찌다. 그것도 4년 연속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망하는 언론사가 거의 없다. 왜일까?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한국 언론의 기이한 수입구조에 주목했다. 그 중 하나가 기사를 가장한 광고다. 또 하나는 세금으로 조성된 정부의 홍보, 협찬비다. 이 돈줄이 신뢰가 바닥에 추락해도 언론사가 연명하거나 배를 불리는 재원이 되고 있다. 여기엔 약탈적 또는 읍소형 광고, 협찬 영업 행태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가 타파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게 불가능하다. 뉴스타파는 이 시대 절체절명의 과제 중 하나가 언론개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추적 결과물은 언론개혁 계기판 역할을 할 뉴스타파 특별페이지 ‘언론개혁 대시보드’에 집약해서 게재한다.-편집자 주 |
오늘 장내가 소란하므로 정상적으로 회의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오늘 회의의 심사보고나 제안설명은 단말기 회의록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회의 자료로 대체하기로 하고, 질의와 토론도 실시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2009년 7월 22일, 18대 국회 283회 국회 본회의 현장. 당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소속 국회부의장 이윤성은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표결을 강행했다.
“의원님들 투표 방해하시지 마시고요. 투표 다 하셨습니까? 투표를 종료합니다.”
한나라당이 이날 날치기 통과를 강행한 법안은 바로 신문방송 겸영과 종합편성채널(종편)을 허용하는 이른바 ‘미디어 3법’이었다. 종편 관련 이슈가 워낙 큰 관심사여서 이날 날치기된 법안의 ‘디테일’을 주목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중 하나가 당시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발의한 신문법 기타 부분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었다. 한선교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그 전까지 기사와 광고를 구분하지 않을 경우 2천만 원까지 과태료를 물리는 신문법 상 처벌 조항이 삭제돼 있었다. 신문사업자들이 바라던 바였다. 이 처벌 조항 삭제는 현재 한국에 독자를 속이는 기사형 광고가 넘쳐나는 상황을 초래한 주요 요인 중 하나다.
한국 언론계와 학계, 광고계에서 ‘기사형 광고’에 대한 문제 의식이 커지면서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8월 ‘기사형 광고’ 심의안이 처음 마련됐다. 당시 한국언론재단(현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신문의 기사형 광고’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행했다. 한국언론재단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기사와 광고 혼동을 가중시키지 않으면서도 광고 효과를 제고할 수 있는 기사형 광고를 만들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자율적 가이드라인이 없다”며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연구팀은 여러 번의 회의와 공개 토론회를 거쳐 다음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언론재단 ‘기사형 광고’ 가이드라인(안)
① (광고의 명시) 기사형 광고에는 “광고”, “기획 광고” “전면 광고” 중 하나를 반드시 표시하여야 한다.
……
③ (기만 표시 금지) 기사형 광고에 “특집”, “광고 특집”, “PR 특집”, “PR 광고”, “PR 고지”, “PR 기획”, “전면 PR”, “PR 페이지”, “기사형 광고(advertorial)”, “Advertising”, “Advertisement”, “Promotion”, “신상품 소개”, “협찬”, “소비자를 위한 정보”, “스폰서 특집”, “스폰서 섹션” 및 이와 유사한 기만적 표시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④ (기만적 표현의 금지) “취재”, “편집자 주”, “도움말 주신 분”, “자료 제공”, “독점인터뷰”, “글(또는 취재) ○○기자, 사진 ○○기자”, “전문기자”, “칼럼니스트” 등 기사로 오인되게 하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아니되고, 기사 말미에 이메일 주소를 넣는 등의 기만적 표현을 해서는 아니된다.
……
⑦ 신문의 기존 섹션면과 유사한 “헬스 & 라이프”, “부동산”, “재테크” 등의 명칭, 제목 등을 붙여 제작할 경우 특히 ‘전면 광고’ 표시에 신중을 기하여야 하고, 기사와 유사한 도표, 통계자료, 인터뷰, 사진 등을 사용할 경우 오인성을 감소시키도록 각별히 유의하여야 한다.
……
⑨ 기사형 광고임을 쉽게 식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개발, 좌측 상단에 표시하여 독자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이바지하여야 한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기사형 광고에 광고 표시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 신문법에는 기사와 광고를 구별하지 않으면 2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리는 벌칙조항이 있었는데, 이 조항이 기사형 광고에도 적용된다는 결론이었다.
보고서가 발행되고 한 달이 지난 2006년 9월, 문화관광부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기사형 광고 편집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시행하기로 했다. 문화부 산하 공공기관인 신문발전위원회가 기사형 광고를 심의하고, 심의 결과에 따라 과태료도 부과하기로 했다.
기사형 광고에 대한 심의와 제재가 처음 도입된 이후, 심의를 회피하고 기사형 광고를 계속 게재하려는 신문사와 이를 막으려는 신문발전위원회 사이에 기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7년 3월 한국경제 섹션지 ‘BizⓝCEO’에 실린 기사형 광고에는 기자 이름이 없었다. 당시 신문발전위원회는 이 섹션지에 실린 기사들에는 ‘기자 이름이 안 들어가 있기 때문에 기사형 광고로 볼 수밖에 없다’라고 유권해석했다. 그러자 한국경제는 다음 달 같은 섹션에 바이라인, 즉 기자 이름이 달려 있는 기사형 광고들을 내보냈다. 신문발전위원회가 바이라인이 붙어있는 이 기사들도 기사형 광고로 판단하자, 한국경제 관계자는 “(이 지면은) 관록 있는 기자들을 배치해 내부 프로세스를 거쳐 만들고 있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광고임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기사형 광고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어진 배경은 뭘까? 2007년 대선에서 권력을 장악한 이명박 정권은 이듬해인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승리를 거두자 언론지형을 집권여당에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신문법과 방송법 등 이른바 ‘미디어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미디어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신문사와 방송사를 함께 운영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으로, 그 결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 메이저 신문사들을 대주주로 하는 종합편성채널(종편)이 탄생했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면 미디어법 개정안과 종편 설립 문제를 두고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과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의 대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2009년 2월 25일 열린 임시국회에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고흥길 위원장은 “3당 간사에게 계속 추가 의제 협상을 요청을 하고 했지만 도저히 진전이 없는 것 같다”며 22개 미디어 관련법을 일괄 상정했다. 민주당 간사인 전병헌 의원은 “지난 1월 6일 세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합의한 바대로 2월 임시국회 에서 미디어법 이른바 언론 관계법 상정은 하지않는 것이 약속”이었다며 반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미디어법 기습 상정의 여파로 다음 날엔 모든 상임위가 ‘올스톱’되기도 했다. 약 4개월이 지난 7월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을 본회의에 직권 상정하고 단독으로 통과시킨다.
당시 미디어법 중 하나인 신문법이 전면 개정될 때, 기사형 광고를 제재하는 근거 규정이었던 과태료 규정도 함께 사라졌다. 국회 상임위나 본회의 회의록에는 관련 논의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종편’ 허용 여부를 두고 첨예한 사회적 대립이 있었기 때문에, 종편과 큰 상관이 없는 법률안의 세부적인 내용이 논의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신문법 개정 이후에 심의를 담당하게 된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관계자는 “신문발전위원회에서 업무를 이관받아서 실무를 하게 됐다. 처벌 규정이 원래 있었는데 없어졌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며 처벌규정이 폐지된 내막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업무 이관 전에 신문발전위원회 기사형 광고 심의위원이었던 노향기 전 기자협회장도 “오래된 일이고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처벌 규정이 사라진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2009년에 신문법 전면 개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은 모두 12명이다.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이들 중 8명은 언론인 출신이었고, 신문기자 출신은 5명이다.
법안을 공동발의한 진성호 전 의원은 “(종편 취지에) 동의하기 때문에 법안을 공동발의해줬다”며 “과태료가 없어진 부분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진 전 의원은 기사형 광고가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기사와 광고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법안 내용은 대표발의한 한선교 의원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2010년 2월 전면 개정된 신문법이 시행되며, 기사형 광고 심의는 처벌 규정 없이 이른바 ‘자율심의’ 체제로 넘어갔다. 이때부터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가 기사형 광고를 심의하기 시작했다. 이 기구의 심의 통계에 따르면, 기사형 광고 심의 결정건수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처음 심의를 시작한 2010년에는 275건에 불과했던 기사형 광고 심의 결정건수가 불과 4년이 지난 2014년에는 1천 건을 넘겼다.
기사형 광고에 따른 피해 사례가 판례로 나오면서, 관련 내용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김세연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원래 2009년도에는 ‘혼동하지 않도록’ 이러한 문구가 있어서 더 적확하게 명하고 있었고 위반할 때 과태료 규정이 있었는데 그게 다 삭제되면서 문제가 생겼다”며 문화체육관광부에 조치를 주문했다. 유진룡 문체부 장관도 “관심 가지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면서도 국회에서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세연 의원은 실제 2014년 처벌규정을 부활시키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19대 국회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김세연 의원실 관계자는 “사실 처벌 조항이 폐지된 이유를 정확하게 찾지 못했다. 이슈가 돼서 빠진 건 아닌 것 같고 은근슬쩍 빠졌는데, (처벌 조항을 빠지게 한) 주체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기사형 광고 처벌 규정 부활 법안이 발의되자 반대 입장을 밝히고 나선 곳은 다름아닌 신문사업자 이익단체 신문협회였다. 신문협회는 협회 의견을 통해 “해당 과태료 규정은 신문산업을 진흥하고 언론의 자율성을 존중하기 위해 폐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를 다시 복원하는 것은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려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규제 법안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문협회의 적극적인 반대는 이때만이 아니었다. 2017년에 다음과 네이버 양대 포털의 뉴스제휴평가위원회가 ‘기사형 광고를 포털 뉴스사이트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내자, 신문협회는 신문협회보를 통해 “기사형 광고가 신문사의 신규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제재하는 것은 신문사 영업권과 생존권을 심대하게 위협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도 2018년 10월 기사형 광고를 양성화하는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했다.
독자를 기만하는 기사형 광고가 신문사의 신규 수익원이라는 것을 자백한 셈이었다. 신문협회는 2018년 20대 국회에서 김병욱 의원이 과태료 부활 법안을 발의했을 때도 “시대 변화에 역행하는 과잉 규제”라며 협회 의견으로 반대 의견을 냈다.
여러 번에 걸친 성명을 통해 신문협회는 업계의 자율규제가 최선의 대안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협회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윤리강령과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의 악성 콘텐츠 규제를 예로 들며 “전통적으로 신문업계는 기사와 광고가 혼동되지 않도록 자율규제 방안을 중층적으로 마련해 지속적인 자정 활동”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또 과태료 조항은 “언론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신문산업의 진흥을 위해 2010년 신문법을 전부 개정하면서 삭제한 것”이라며 “8년 전 삭제한 조항을 명확한 이유 없이 복원하면 ‘과거로의 퇴행’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또 ‘애드버토리얼 기사’는 “‘기사의 성격’과 ‘광고의 성격’이 혼재된 콘텐츠”라며 “국내의 애드버토리얼의 경우 해외의 네이티브 광고에 비해 기사로서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고 했다.
2007년 3월 21일 한국경제 섹션지 ‘BizⓝCEO’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중소기업들을 소개하는 ‘기사’가 여러 건 실렸다. 헤드라인(제목), 바이라인(기자 이름), 기사체 문장 등 스트레이트 기사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지금은 이처럼 기자의 이름을 붙인 기사형 광고를 담은 섹션을 어느 신문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지면이 처음 나왔을 때는 큰 논란이 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경 BizⓝCEO섹션은 기사형 광고로밖에 볼 수 없는데 기자 이름을 싣고 ‘광고’라는 표기를 안 쓰는 편법을 쓰다보니 기획광고 물량이 한경으로 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미디어오늘 2007년 3월 28일)
2014년 1천 건을 넘긴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의 기사형 광고 편집 기준 위반 결정 건수는 2017년에는 3천 건을 넘길 정도로 양적으로 크게 늘어났다. 2007년 기사형 광고를 기자의 기명 기사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던 한국경제의 ‘BizⓝCEO’ 같은 기사형 광고 지면을 지금은 어느 신문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뉴스타파가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로부터 주의나 경고를 받은 기사를 세본 결과, 광고 표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기사형 광고 건수는 2019년 상반기에만 3천 건이었다.
신문협회의 주장과는 달리 학계나 심의기수 관계자들은 자율규제로 넘어간 이후 한국 언론사들의 기사형 광고 행태가 더욱 노골적으로 상업성을 추구하면서 언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재벌과 거대신문사의 방송사 운영을 허용해 여론독과점의 길을 터준 이명박 정권은 신문이 독자를 속이는 기만적 상술로 별 탈 없이 배를 불릴 수 있는 길도 눈에 잘 띄지 않게 꼼꼼히 열어 준 것이다.
취재 | 김강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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