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권

한 군인의 절규, “나는 벌레가 아니다”

2014년 05월 20일 23시 25분

지난 2008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어려운 집안을 돕기 위해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공군 부사관으로 입대한 이진혁(가명) 하사. 어릴 때부터 군인이나 경찰을 동경했던 까닭에 직업군인이 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열심히 군생활을 한 덕에 지난 2012년에는 장기복무가 결정됐다. 지난해에는 공군 수사관 양성 과정인 ‘양성수사관’에 선발되는 등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통의 이메일이 자신에게 있었던 5년 전의 끔찍한 기억을 되살렸고, 수사관의 꿈도 접게 만들었다. 이 하사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하사는 2008년 경기도 양주의 한 부대에 배치되면서 군생활을 시작했다. 하사관 교육 수료 후 첫 근무지였기 때문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첫 군생활은 당초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그는 그곳에서의 생활을 이렇게 기억한다. “군의 경찰인 헌병이었기 때문에 절차대로 일처리를 하고 싶었지만 부대 간부 대부분은 절차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지적을 하는 나에게 돌아온 것은 처음엔 욕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선임들은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갓 20살의 하사가 감당하기 힘든 일이 이어졌다.

심지어 선임 하사관들의 성추행도 시작됐다. 계속되는 폭언, 구타, 성추행에 이 하사는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한 간부의 진급 축하 회식 자리에서 선임 상사가 자신의 볼에 입을 맞추고, 가슴을 만지고, 귀를 깨무는 등의 성추행을 한 것이다. 이 하사는 군 상담기관을 찾아 자신이 당한 일들을 얘기했다.

곧 감찰이 실시됐다. 8명의 상급자들이 이 하사에게 가혹 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징계는 3명에 그쳤고 그나마 징계 중 가장 낮은 견책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 가해자는 이 하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복수하겠다’고 하는 등 협박을 멈추지 않았다. 사건이 종결되고 이 하사는 다른 부대로 전출됐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신을 향한 싸늘한 시선이었다. 바로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 찍힌 것이다.

피해사실을 상담했다는 이유로 가는 곳마다 왕따 신세였지만 이 하사는 이를 악물고 열심히 군생활을 했다. 지난해에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군 수사관 예비 과정인 ‘양성수사관’에 선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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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쁨도 잠시, 이 하사에겐 다시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닥쳤다. 양성수사관으로서 수사계에서 근무하던 지난 해 6월 13일, 선임 수사관이 휴가 중이어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선임 수사관의 아이디로 일을 하고 있을 때 한 통의 이메일이 눈에 띄었다.

발신자는 양 모 상사. 그는 5년 전 사건의 가해자였지만 징계는 받지 않았던 상급자였다. 그가 자신의 동기이자 이 하사의 선임수사관 앞으로 메일을 보낸 것이다. 고민 끝에 이 하사는 양 상사가 보낸 이메일을 열어봤다. 그런데 그 메일에는 놀랍게도 자신을 음해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XX는 더러워도 너무 더럽다. 살모사 XX처럼 지 애미 살 파먹고 올라간다. 근성이 더러운 것들은 언젠가는 나오고, 찌질한 것들은 결국 찌질해 질 수 밖에 없잖아?

심지어 이 하사가 수사관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 놈의 능력이야 말로 수사관으로 적합한지는 모르겠고. 만약 그의 과거를 알고도 이 새끼를 뽑았다면 나 할 말 없어. 그런데 만약 몰랐다면 꼭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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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사는 이 메일을 캡쳐하고 본문은 따로 복사한 다음 삭제했다. 사병들도 메일에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이 내용이 부대 안에 퍼지는 것을 막기위해서 였다. 그리고 선임 수사관이 휴가에서 복귀하자 바로 이 사실을 알렸다. 메일을 지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고 음해 메일을 보낸 양 상사에 대해 조사해 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상황은 반대로 흘러갔다. 선임 수사관은 메일을 삭제했다는 이유로 자술서를 요구했다. 그러나 메일을 보낸 양 상사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하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은 이 하사가 양성수사관에서 중도에 해임되는 사유가 된다. 메일 삭제는 범죄 행위라는 것과 수사관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이 해임 이유였다. 5년 전 가해자가 보낸 한 통의 메일이 이 하사가 6년의 군생활 동안 그토록 원했던 수사관의 기회를 날려버리게 한 흉기가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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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이 하사의 변호인인 김칠준 변호사는 이 하사의 행위는 자기 방어 차원으로 볼 수 있다고 반박한다. “5년 전 가해자로부터 메일이 온 사건이다. 이것이 부대원에게 전파됐을 때, 지금보다 얼마나 더 극심한 피해가 있을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 하사가 자신을 음해하는 메일을 삭제한 것은 정당한 자기방어라는 것이다.

양성수사관에서 해임되자 이 하사는 유서 한 장을 남기고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나 가족이 발견해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이날 이후 이 하사는 마음을 다잡았다. 지난 6년 간 자신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군대 문화의 실체를 밝히겠다고 결심했다.

이 하사는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죽으려고 까지 했는데 이제 뭐가 무섭겠어요. 죽어야 이게 끝날 순 있다면 죽을 겁니다. 하지만 죽더라도 진실은 밝히고 죽을 겁니다” 라고 말했다. 이 하사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기록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줄했다. 또 양성수사관 해임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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