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와 검사]⑩ 검찰과 증권사 '회장님'
2019년 10월 29일 19시 33분
뉴스타파가 지난해 <죄수와 검사> 첫 번째 시즌에서 집중보도했던 검사 출신 전관 박수종 변호사와 상상인 금융그룹의 유준원 회장이 구속됐다. 뉴스타파의 최초 보도 이후 10개월 만이다.
두 사람의 영장 실질 심사는 지난 19일 오전 10시 45분부터 밤 11시 30분까지 진행됐다. 그리고 20일 새벽 3시, 서울중앙지법 김태균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소명된 범죄혐의사실에 의하면 유 대표 등의 행위는 자본시장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크게 훼손한 것으로 사안이 중대하다”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두 사람에 대한 수사는 지난해 11월 시작됐다. 뉴스타파가 박수종과 유준원 두 사람의 비위 혐의를 집중적으로 보도하자 금감원은 지난해 10월 31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상상인 저축은행에 징계를 내렸다. 이어 검찰은 두 사람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는 박수종 변호사의 사무실과 상상인 그룹의 주요 계열사를 압수수색했다. 이후 검찰 직제 개편으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로 재배당됐고, 반부패수사1부는 지난 4월 상상인 그룹 계열사를 다시 압수수색하는 등 보강 수사를 거쳐 지난 17일 두 사람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두 사람의 범죄 혐의는 여러가지다. 뉴스타파가 <죄수와 검사> 시즌 1에서 무려 12편에 걸쳐 보도한 이들의 주요한 범죄 혐의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우선 박수종 변호사.
첫 번째는 ‘서울리거’와 관련해 공시의무 위반, 미공개정보 이용 거래, 시세 조종 혐의다. 박수종 변호사의 아내 정 모 씨는 2014년 3월 ‘다스텍’(현 ‘서울리거’)이라는 코스닥 상장사의 지분을 사들여 2대 주주가 된다. 그런데 이 ‘다스텍’은 단군 이래 사상 최대 대출 사기 사건으로 불렸던 ‘KT ENS’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인 서정기 씨가 불법 대출금으로 사들인 회사였다. 박수종은 아내 정 씨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차명을 동원해 이 회사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자신과 차명 법인이 보유하던 ‘다스텍’ 주식으로 수십억 원의 주식담보대출도 받았는데, 이 대출을 해준 것은 다름 아닌 유준원 회장의 상상인 플러스 저축은행이었다. 이후 주가는 별다른 이유없이 올랐고, 박수종 변호사는 주식을 팔아 수십억 원의 차익을 거두었다. 검찰은 금감원으로부터 ‘다스텍’에 대한 수사를 의뢰받았으나 박수종 변호사를 약식기소하는 데 그쳤다.
두 번째는 ‘모다’와 그 자회사 ‘파티게임즈’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벌인 고의 상장 폐지 의혹이다. 회사의 상장 폐지로 소액주주들은 천 6백억 원 가량의 투자금을 날렸지만 박 변호사는 천억 원이 넘는 알짜 자회사를 140억 원 정도의 헐값에 장악했다. 일부 주주들은 당시 경영권을 갖고 있던 박 변호사가 고의로 상장폐지를 유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세 번째는 유준원 회장의 상상인 주식을 대량 매수하는 과정에서 자본 시장법을 위반한 혐의다. 박수종 변호사는 지난 2018년 ‘모다’와 ‘파티게임즈’의 경영권을 장악한 직후 회사가 보유한 현금으로 ‘상상인’ 주식을 대량 매입했다. 또한 자신의 차명법인을 통해서도 ‘상상인’ 주식을 대량 매입했고, 자신이 지배하던 또다른 상장사 ‘행남자기’를 통해서도 ‘상상인’ 주식과 연관된 파생상품을 사들였다가 큰 손해를 봤다. 이 시기는 유준원 회장이 골든 브릿지 증권의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보유한 주식으로 주식담보대출을 받는 등 주가 방어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 다음으로 유준원 회장.
첫 번째는 지난 2014년 검찰이 수사했던 ‘스포츠 서울’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20억 원의 부당 수익을 올린 혐의다. 유준원 회장은 당시 주가 조작을 모의하는 회의에 직접 참여했다는 증언이 나왔고, ‘작전’에 참여했다는 의혹을 받던 사람 중에 가장 많은 20억 원의 부당 수익을 올렸으나 단 한 번도 검찰의 조사를 받지 않았다. 당시 유준원의 대리인이었던 김 모 씨는 서울 남부지검 조사에서 “유준원은 관여하지 않았다”며 유준원에게 유리한 진술을 했는데, 이 김 씨의 법률 대리인은 바로 박수종 변호사였다.
두 번째는 각종 무자본 M&A에 자본을 대면서 불법 수익을 챙긴 혐의다. 뉴스타파가 2015년 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상상인과 상상인 플러스 저축 은행의 주식담보대출 내역을 분석한 결과 두 저축 은행이 주식담보대출을 해준 200곳의 기업 가운데 60곳이 거래 정지를 당했고 그 가운데 19곳은 상장 폐지됐다. 유준원 회장은 “2017년 10월 이후부터는 무자본 M&A에 더 이상 대출을 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뉴스타파 분석 결과 2017년 11월 이후에도 대출 전후 3개월 이내 M&A가 발생한 회사가 62곳이나 됐다. 일부 언론은 조국 친인척의 펀드가 인수한 회사인 WFM에 관한 대출을 유 회장의 주요 혐의로 보도하고 있지만, 이는 유 회장이 무자본 M&A에 돈을 댄 수많은 사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세 번째는 골든브릿지 증권 (현 상상인 증권)을 인수하는 과정에 대한 의혹이다. 유준원 회장은 2018년 2월 골든브릿지 증권 인수 계약을 체결했는데, 금감원의 심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박수종 변호사도 개입했던 코스닥 상장사 ‘모다’의 M&A에 세종저축은행 (현 상상인 플러스 저축은행)이 돈을 댔는데, M&A 발표 전에 유 회장의 개인 계좌로 ‘모다’ 주식을 사서 1억 천 만 원 가량의 시세 차익을 본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금감원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거래가 아닌지 의심하고 검찰에 보고했으나 검찰은 유 회장에 대한 한 번의 조사도 없이 이를 무혐의 처리했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의 ‘무죄 증명서’를 발급함으로써 유준원 회장이 골든 브릿지 증권을 인수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을 치워주었다.
검찰이 두 사람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준 것은 아마도 이들의 범죄 혐의가 이렇게 차고 넘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이 많은 혐의 가운데 어떤 부분을 기소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의 범죄 혐의는 하나하나가 매우 위중하다. 법원의 평가대로, 자본 시장의 근간인 공정성과 신뢰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선량한 개인 투자자들이 입은 피해 역시 막대하다. 그러나 그 못지 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들이 범죄 행각이 어떻게 지금까지 법망을 피해왔는가를 규명하는 것이다.
금감원은 2015년 초부터 박수종 변호사의 여러 금융범죄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였으나 박수종 변호사는 금감원 조사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금감원은 결국 검찰에 박수종 변호사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그런데 사건을 맡게 된 서울 남부지검의 증권범죄 합동수사단장은 바로 ‘고교동창 스폰서 사건’의 김형준 전 부장검사였다.
박수종 변호사는 자신이 피의자였던 사건의 수사 책임자였던 김형준 전 검사가 돈이 필요할 때마다 돈을 빌려주었고, 최소 수백만 원의 향응을 제공했다. 김형준 전 검사의 스폰서 사건이 터지자 내연녀의 입막음 같은 은밀한 뒤치다꺼리를 했을 뿐 아니라 스폰서였던 김 모 씨의 법률 대리인을 맡아 김 전 검사에게 유리하도록 사건이 처리되도록 도왔다. 스폰서 김 씨가 언론에 제보를 하겠다고 하자 의뢰인이었던 스폰서 김 씨의 차명 휴대전화 정보를 검찰에 알려주기까지 했다.
박수종 변호사의 검찰 내 인맥은 김형준 전 검사 한 명에 그치지 않았다. 박수종 변호사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 남부지검에는 “박수종 변호사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소문까지 파다했다고 한다. ‘제보자X’에 따르면 박수종 변호사 사건을 수사하려던 한 검사실이 해체되어 버린 일도 있었다고 한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소문을 뒷받침하는 사실이 나왔다. 박수종 변호사가 검찰 수사를 받는 피의자 신분이었던 2015년과 16년 당시 그의 통화 기록에서, 22명의 현직 검사와 수시로 통화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은 기록이 나온 것이다. 그 가운데는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파견가 있던 주진우 전 검사도 있었다.
유준원 회장의 경우 앞에서 밝힌 것처럼 2014년 스포츠서울 주가조작 사건에서 가장 많은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확인됐지만 검찰은 유회장을 단 한 차례 참고인 조사도 하지 않았다. 당시 그의 대리인을 변호한 것은 박수종 변호사였다.
유준원 회장은 수많은 무자본 M&A에 돈을 대면서 천문학적 수익을 거둬왔지만 검찰은 이를 한 번도 문제 삼은 적이 없다. 뉴스타파가 만난 자본 시장의 전문가는 검찰이 이들을 봐주고 있다는 게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유준원이는 검찰에서 마음만 먹으면 한두 가지 잘못돼 있는 게 아니에요. 1045 거기는 그냥 뭐 뜯어내면 그냥 바로 나올 수 있는 정도, 그거는 검찰에서 마음만 먹으면 이미 나올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아요, 안 할 뿐이지.”
○ (그럼 유준원한테 문제가 있다. 그런데 검찰에서 봐주고 있다. 이런 거를 시장에 있는 분들은 거의...)
● “알죠, 다 알죠. 유준원하고 거래해 본 애들이 한 둘이 아니거든요.”
- 자본 시장 전문가 인터뷰 중
따라서 개별적인 범죄 혐의만을 규명하는 것만으로는 박수종 변호사와 유준원 회장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럴 경우 검찰의 수사는 오히려 공수처 출범 전에 문제가 될 소지를 도려내는 ‘꼬리 자르기’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검찰의 수사가 수많은 불법으로 천문학적인 부를 쌓아 온 박수종 유준원의 뒷배를 누가 봐주었는가까지 규명할 수 있을까. 문제는 그렇게 할 경우 검찰의 치부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그동안 금융 조사와 기업 수사를 담당해왔던 특수부와 금조부의 전현직 검사들의 유착 여부일 것이기 때문에 현 윤석열 검찰 총장 체제에서 검찰이 이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뉴스타파는 검찰의 기소 이후에도 검찰의 수사가 ‘꼬리자르기’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조직의 적폐를 제대로 파헤치는 올바른 수사가 될 것인지를 계속 취재할 예정이다.
한편, 구속된 박수종 변호사가 뉴스타파에 제기한 기사 삭제 가처분 소송에서는 뉴스타파가 항고심에서도 승소했다. 박 변호사는 지난해 뉴스타파의 <죄수와 검사> 시리즈가 보도되자 법원에 기사 삭제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3월에 있었던 1심 기각 결정에 이어 지난 6월 18일 서울고등법원 제40민사부(재판장 강영수)역시 가처분 항고를 기각했다. 고등법원은 결정문에서 박수종 변호사의 행위는 “변호사 직무의 공정성을 저해하고 의뢰인과 일반 국민의 공권력과 공직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위험을 초래하며, 자본시장의 건전성과 투자자들의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해한다”고 밝혔다.
취재 | 심인보 |
촬영 | 정형민 |
편집 | 박서영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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