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안전

세월호 특수단, 경빈 군 헬기 이송 지연 '무혐의' 내부 결론

2020년 03월 03일 08시 00분

‘기소’ 해경 지휘부 혐의서 빠진 경빈 군 사건…’무혐의 결론’ 확인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이 지난 2월 18일 세월호 구조 지휘 과실 혐의로 김석균 당시 해경청장 등 지휘부 10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공소장 속에는 그동안 특수단이 세월호 구조 과정의 일부로 판단하고 공을 들여 수사해 왔던 임경빈 군 헬기 이송 지연과 관련된 혐의 내용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 특수단이 2월 18일 법원에 제출한 해경 지휘부에 대한 공소장

뉴스타파 취재 결과 특수단은 경빈 군 사건에 대해 이미 내부적으로 무혐의 판단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특수단은 지난 1월 3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416가족협의회 유가족 10여 명과 만났다. 당시까지의 수사 경과와 향후 일정 등을 유가족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였다. 특수단은 먼저, 구속영장이 기각된 김석균 청장 등 6명에 대한 영장 재청구는 하지 않고 2월 중으로 해경 지휘부에 대한 기소를 마치겠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이어 특수단은 사참위가 수사 요청한 사건들에 대한 수사 경과도 전달했다. DVR 바꿔치기 의혹 수사와 경빈 군 헬기 이송 지연 의혹, 그리고 청해진해운에 대한 산업은행의 불법 대출 의혹은 모두 혐의점 및 혐의 대상을 특정할 수 없다고 가족들에게 설명했다. 기무사의 유가족 사찰 의혹은 군 검찰과의 공조가 필요한 사안이어서 속도가 더딘 상황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가운데 경빈 군 사건에 대해 특수단은, 20여 명의 관계자를 불러 조사하고 대한응급의학회 등 전문기관에 자문을 구하는 등 고강도 수사를 벌였지만 당시 경빈 군이 생존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경빈 군이 3009함에 머무는 동안 김석균 해경청장과 김수현 서해청장이 헬기를 타고 떠난 행위가 경빈 군의 사망과 인과관계를 갖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이 사건에 대해 사실상 무혐의 처분 방침을 밝혔다. 이 자리에는 경빈 군의 어머니 전인숙 씨도 동석했다.

특수단의 설명을 들은 유가족들은 수사 결과를 즉각 수용하지 않고 더 적극적인 수사를 주문했다. 이에 따라 특수단은 해경 지휘부 11명을 기소하면서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경빈 군 사건은 혐의 유무를 확정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니까 특수단은 경빈 군 사건에 대해 이미 수사를 마치고 무혐의 결론을 내렸지만 유가족들의 입장을 고려해 확정 발표만 미뤄놓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특수단의 수사가 부실했던 것일까, 아니면 애초부터 사참위가 제기한 의혹이 무리였던 것일까. 뉴스타파는 경빈 군 사건을 사참위와 특수단이 어떻게 조사하고 수사했는지 취재했다.

▲ 지난해 10월 31일 사참위의 ‘세월호 참사 당일 구조 과정 의혹 조사내용 중간발표’

사참위가 제기했던 ‘경빈 군 헬기 이송 지연 의혹’이란?

사참위는 지난해 10월 31일, 세월호 참사 당일 구조 과정 의혹 등에 대한 조사내용 중간발표를 통해 임경빈 군 헬기 이송 지연 의혹을 공식화했다. 발표 내용은 이랬다.

참사 당일 세월호가 선수 일부만 남기고 침몰한지 7시간이 흐른 오후 5시 24분쯤, 사고 해역을 수색하던 해경 1010함 넘버2 단정이 경빈 군을 발견해 끌어올렸다.

경빈 군은 5시 30분 당시 지휘함이던 해경 3009함으로 인계됐고, 3009함 의무실에서 해경 응급구조사 2명 등으로부터 심폐소생술 등 응급 처치를 받았다.

20여 분이 지난 5시 52분쯤 해경은 원격의료시스템을 통해 목포한국병원 의사의 의료 지도를 받는데, 이때 경빈 군을 ‘사망자’가 아닌 ‘환자’로 호칭했다.

잠시 후 의사는 “심폐소생술을 지속하면서 병원으로 이송하라”고 지시했다고 사참위는 발표했다.

▲ 오후 5시 59분 목포한국병원 측 모니터에 표시된 경빈 군 산소포화도

그 즈음 목포한국병원 측 원격의료시스템 모니터 상에는 경빈 군의 산소포화도가 69%, 맥박이 48로 나타나 있었다. 사참위는 이 수치를 근거로 당시 경빈 군이 사망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봤다.

해경은 119헬기로 경빈 군을 이송하기로 했지만 40여 분이 지나도록 헬기는 오지 오지 않았고 결국 6시 40분 쯤 경빈 군은 해경 경비정을 통해 병원으로 출발하게 됐다.

이후 경빈 군은 세 차례에 걸쳐 다른 경비정으로 옮겨타는 과정을 거쳐 최초 발견 시각 이후 4시간 41분이 지난 밤 10시 5분에야 목포한국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사참위는 경빈 군이 해경 경비정을 통해 이송되는 도중에 공식적인 사망 판정을 받았다며 관련 서류도 제시했다.

당시 사고 해역에서 목포한국병원까지 헬기로 이동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30분 미만이었다. 그런데 경빈 군이 3009함에 머무는 동안 해경 헬기 2대가 착함했었지만 이 헬기들은 각각 김수현 서해청장과 김석균 해경청장을 태우고 이함했다.

결국 일정한 산소포화도와 맥박 수치가 확인될 만큼 생존 가능성이 있던 상태였던 경빈 군 대신 해경 지휘부가 헬기를 이용했고, 이로 인해 경빈 군은 적절한 응급조치를 받지 못하고 숨지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게 사참위 발표의 핵심이었다.

사참위 발표에서 빠진 것…경빈 군 최초 상태 직접 목격자들의 진술 내용

그런데 당시 사참위 발표에는 반드시 들어가 있어야 할 내용이 빠져 있었다. 바로 경빈 군이 최초 발견돼 응급조치에 들어가기 전까지 경빈 군의 초기 상태를 직접 목격했던 이들, 그리고 경빈 군에 대한 의료 지도를 했던 목포한국병원 의사의 진술과 조사 내용이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당일 오후 5시 24분 쯤 경빈 군을 처음 발견해 끌어올린 1010함 넘버2 단정에는 모두 7명의 해경이 탑승해 있었다. 1010함 소속 해경 3명, 그리고 안동과 여수 122구조대 소속 해경 4명이다.

이 가운데 122구조대 해경 4명은 응급구조사 자격 소지자들이다. 평소 물에 빠진 사람에 대한 구조와 응급조치에 매우 능한 인력들이다.

▲ 경빈 군의 최초 상태를 직접 목격했던 해경들의 진술서

뉴스타파는 그 가운데 2명이 경빈 군을 발견할 당시 상황을 진술한 문서를 입수했다. 최근 기소된 해경 지휘부 중 1명이 헬기 이송 지연 의혹과 관련해 사참위 조사를 받을 당시 제출했던 문서다.

먼저 당시 1010함 넘버2 단정장이었던 전 모 해경의 진술이다. 당시 해상 수색 중 떠오르고 있던 여러 부유물을 확인하고 있던 중 빨간 구명동의를 발견하고 접근해 확인해 보니 머리가 잠겨진 상태로 떠 있는 익수자였으며, 단정 위로 끌어올린 뒤 살펴보니 신체는 굳은 상태로 호흡과 의식이 없었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할 때 코와 입에서 피가 섞인 거품이 나왔다고 진술했다.

다음은 동승했던 122 안동구조대 소속의 김 모 해경의 진술이다. 당시 여러 부유물과 함께 주황색 부유물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것을 목격하고 즉시 접근해 확인한 결과 구명조끼를 착용한 남학생이었이며, 의식과 호흡, 맥박이 없었고 양 팔은 웅크린 자세로 강직되어 몇 차례 펴보려고 시도했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았으며, 심폐소생술 도중 입가에 포말이 형성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확인 결과 이들은 모두 사참위의 조사를 받았고 같은 내용을 진술했다. 그러나 사참위는 의혹 발표 당시 이들의 진술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진술서들 가운데는 경빈 군을 인계받아 3009함 의무실에서 응급조치를 시행했던 해경 항공단 소속 김 모 해경의 것도 있다. 그 역시 응급구조사 자격 소지자였다. 그는 진술서에서, 초기 환자 평가를 실시했을 때 피부와 입술이 창백하고 동공 반응이 없었으며 손가락 등이 강직됐고 호흡과 맥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참위는 이 응급구조사에 대해서도 면접 조사를 벌였지만 역시 의혹 발표 당시 이 같은 진술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당시 경빈 군을 인계받아 응급조치를 취하던 3009함 의무실에는 응급구조사 자격을 소지한 해경이 한 명 더 있었다. 3009함 소속의 김 모 해경이다.

뉴스타파는 수소문 끝에 김 씨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몇 년 전 해경 조직을 떠나 현재 경남 창원에서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었다.

▲ 당시 3009함 소속 응급구조사였던 김 모 씨와의 인터뷰

그 역시 당시 경빈 군은 사망 징후가 뚜렷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맥박과 산소포화도, 심전도 같은 환자모니터링 장비 상의 수치 뿐만 아니라 심폐소생술을 위해 손을 댔을 때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왔고 피부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으며 몸 곳곳에 시반으로 보이는 반점들도 다수 보였다고 했다. 또 익사자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입가의 포말도 확인됐고, 심폐소생술 도중 폐 속에 물이 차 있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채증영상 속에서 경빈 군이 ‘환자’라고 호칭된 것인지를 물었다. 그는 사참위 조사관을 만났을 때에도 그 질문이 가장 먼저 나왔다면서 당시 본인이 대답한 내용을 들려줬다.

“사참위 조사관들한테도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경빈 군은 당시 분명히 사망했던 상태였다고요. 하지만 응급구조사는 법적으로 사망 판정을 내릴 수도 없고 사망이라는 말을 입밖에 내서도 안 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환자라고 표현했던 거라고 사참위 조사 때 밝혔습니다.”

김00 / 3009함 응급구조사 해경

하지만 조사를 받고 얼마 뒤 발표된 사참위의 조사 내용은 자신의 진술과 180도 다른 것이었다고 했다.

사참위 편집해 공개했던 당시 채증영상 원본 입수해 분석해 보니

이처럼 경빈 군이 물에서 건져진 직후 상태를 직접 목격했던 이들의 진술은 모두 일치했다. 호흡과 맥박, 동공반응 등 모든 징후들이 이미 사망 상태인 것으로 판단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참위 발표 당시 제시됐던 목포한국병원 측 원격의료시스템 모니터의 산소포화도 69%, 맥박 48이라는 수치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뉴스타파는 사참위가 의혹 발표 당시 일부만 편집해 참고영상으로 제작해 제시했던 3009함 채증영상 원본을 입수해 분석했다.


영상 촬영이 시작된 건 이미 해경 항공단 응급구조사 김 모 씨가 경빈 군에 대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던 오후 5시 47분이었다. 당시 카메라를 들고 있던 건 3009함 응급구조사였던 또 다른 김 모 씨. 그는 채증을 시작하면서 경빈 군의 상태에 대해 “현재 호흡 없으며 산소포화도 제로임”이라고 말한다.

경빈 군의 산소포화도 수치가 나타나는 장비는 누워 있는 경빈 군의 머리 방향 벽면에 있었다. 환자의 몸에 패치를 부착해 맥박과 산소포화도, 심전도 등을 표시해 주는 PMS, 즉 환자모니터링시스템이었다. 이 장비는 바로 위 선반에 올려져 있는 원격의료시스템으로 환자의 상태 정보를 그대로 송출해 주게 되어 있다.

▲ 5시 49분 경빈 군의 산소포화도 수치가 ‘00’으로 표시돼 있다.

촬영이 시작된 지 2분여 뒤인 5시 49분에 PMS 모니터 상의 산소포화도 수치가 포착되는데, 이 때에도 0%로 나타났다.

그리고 3분이 더 지난 5시 52분쯤 원격의료시스템을 통해 목포한국병원 간호사와 연결되는데 성공했다. 3009함 응급구조사들은 간호사에게 응급의학 전문의를 불러달라고 요청하면서 당시 경빈 군의 상태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을 한다. 항공단 응급구조사 김 씨는 “바다에서 익수돼 구조를 했는데 시간이 상당히 흘렀다. 심폐소생술을 한 지도 한 20~30분 됐다. 여기서 판단할 때는 도저히 특별한 반응이 없다”고 전한다.


그때 간호사가 “지금 의사가 와서 보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응급구조사 김 씨는 옆에서 경빈 군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던 해경 윤 모 씨에게 “잠깐 손을 떼 달라”고 말한다. 의사와 연결되기 직전 심폐소생술을 멈추게 한 건, 심장을 압박하는 동안에는 혈액이 강제로 순환하게 돼 정확한 맥박과 산소포화도 등이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다.

30여 초 후 목포한국병원 응급실 의사의 의료 지도가 시작된다. 의사는 일단 심폐소생술을 계속 시행하라고 지시한다. 이어 AED, 즉 심장자동충격기가 있으면 시도해 볼 것도 지시한다. 그러자 응급구조사는 “지금 에이시스톨(Asystole, 심장 무수축 반응)이 떠서 심장자동충격기를 붙여도 제세동을 하라는 리듬을 못 읽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에 대한 의사의 대답은 “아, 그러면…”까지만 정확히 들린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화로 미뤄볼 때, 이 순간 의사는 심폐소생술을 지속하며 병원으로 이송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응급구조사는, 심폐소생술은 계속 지속할 수 있으나 현재 위치가 해상의 함정이라서 병원까지 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의사는 “아, 그러면…”이라며 잠시 고민한다.

바로 그때, 3009함에 파견되어 경빈 군에 대한 응급조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소방방재청 직원이 “119 헬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서 개입한다. 응급구조사는 헬기가 바로 지원될 수 있는지 재차 확인한 뒤, 경빈 군을 헬기로 이송할테니 받아줄 준비를 해달라고 병원 측에 요청한다.

▲ 5시 56분 경빈 군의 산소포화도 수치가 14%로 표시돼 있다.

그런데 119 헬기를 기다리며 심폐소생술을 계속하던 5시 56분 무렵, PMS 모니터의 산소포화도 수치는 100%, 다시 1분여 뒤인 5시 57분쯤엔 14%로 표시됐다.

그리고 또 1분여가 지난 뒤, 사참위가 제시했던 목포한국병원 측 원격진료시스템 모니터 상의 산소포화도가 69%로 나타나게 됐던 것이다.

정리하면, 경빈 군에 대한 심폐소생술은 의사의 지도를 받기 위해 멈췄던 40여 초 동안을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실시됐는데, 그러는 동안 산소포화도는 0%에서 100%로, 다시 14%에서 69%로 요동치듯 바뀐 것이다.

이 영상을 살펴본 강용수 대한응급구조사협회 사무총장은 “PMS 상의 맥박과 산소포화도 수치는 완전히 사망한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해도 일정 수준으로 나타날 수 있다. 심장을 압박하면서 인위적으로 혈액을 순환시키기 때문이다. 이 영상을 봤을 때도 심폐소생술을 지속하는 동안 나타난 산소포화도 69%라는 수치를 놓고 생존 가능성이 있었다는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밝혔다.

언론 관심 집중됐던 ‘산소포화도 69%’... 사참위 판단은 적절했을까

사참위의 의혹 발표 당시에도 경빈 군의 산소포화도가 69%로 표시된 장면에 대해 언론들은 집중적인 관심을 보였다. 발표 현장에서는, 최초에 응급구조사가 산소포화도를 0%로 말했는데 12분 정도 지나 69%로 나타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도 나왔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사참위의 대답은 “6명의 응급의학 전문의들의 자문을 구한 결과, 최초 0%라는 수치는 아마도 패치가 제대로 부착되지 않았던 상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으며, 69%라는 수치는 생존했다고 확신하긴 어렵지만 사망이라고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고 입을 모았다”는 것이었다.

▲ 박병우 사참위 세월호 진상규명국장

과연 그랬을까. 뉴스타파는 사참위가 자문을 구했다는 6명의 응급의학 전문의들 가운데 2명의 신원을 파악해 접촉해 봤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응급의학이 아닌 내과 전문의였다. 그는 사참위가 경빈 군의 채증영상을 보여주며 의견을 물어온 데 대해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심장을 압박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산소포화도 69%라는 수치가 의미 있는 것으로 보긴 어렵지만 저런 상태에서 원칙적으로 취해야 하는 조치라고 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병원으로 갔어야 한다는 정도의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한 명의 응급의학 전문의는 뉴스타파의 전화와 문자 메시지 등에 응하지 않았다.

뉴스타파는 더 많은 전문의들의 판단을 구해보기 위해 전국의 응급의학 전문의들 대다수가 집결하는 대한응급의학회 정례 학술대회 현장을 찾았다. 무작위로 10여 명의 전문의에게 경빈 군 응급처치 채증영상과 사참위가 제시한 산소포화도 69% 사진을 보여주며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모두 같았다. 아무리 응급의학 전문의라고 해도 이 자료만을 놓고 당시 경빈 군의 상태를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정확한 답변은 그 당시 직접 의료지도를 했던 의사 본인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목포한국병원 의사 “초기 상태 정확히 알았다면 심폐소생술 중단 지시했을 것”

이에 따라 취재진은 참사 당일 원격의료시스템을 통해 경빈 군의 상태를 살피며 의료 지도를 했던 목포한국병원 의사 김 모 씨를 찾아갔다. 김 씨는 현재 응급의학과 과장으로 근무 중이었다.

▲ 경빈 군에 대한 원격 의료지도를 했던 목포한국병원 의사와의 인터뷰

김 씨는 그 당시 목포한국병원 응급실의 상황부터 설명했다. 세월호 생존자와 부상자들이 물밀 듯이 한꺼번에 들어왔기 때문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원격의료시스템 쪽으로 와 달라는 간호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부상 환자들을 살피느라 즉각 달려가지는 못했고, 약 1분 쯤 뒤 모니터 앞에 섰다고 했다.

모니터에 비친 3009함 의무실의 모습은 학생으로 보이는 환자에게 응급구조사가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있는 상황으로 판단됐다. 그런데 워낙 정신이 없던 와중이어서, 보통 상황이었다면 반드시 진행했었을 ‘병력 청취’ 절차를 빠뜨렸다고 김 씨는 말했다.

“일반적으로는 사고 발생 시간이라든지 발생 장소, 구조된 경위 등을 응급구조사나 보호자에게 물어본 뒤에 의료 지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심폐소생술을 얼마나 지속했느냐도 묻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좀 특수한 상황이었고 제가 응급실에서 동시에 진행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그걸 미처 확인을 못했어요.”

김00 / 목포한국병원 응급의학과 과장

그래서 그는 심정지 환자에게 일반적으로 취하는 조치들을 응급구조사에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영상을 통한 의료 지도에서 심폐소생술을 지속하라는 것, 가능하다면 심장자동충격기를 써보라는 것, 그리고 가급적 빨리 병원으로 옮겨달라는 것 외에는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병원으로 옮겨달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것이 경빈 군의 생존 징후가 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 씨는 이어, 그 당시 병원 측 원격의료시스템 모니터에 표시된 경빈 군의 맥박과 산소포화도 수치도 전혀 참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도 심폐소생술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모니터 확인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흉부 압박을 시행하는 사람의 손이 환자의 몸에 붙인 패치를 건드릴 수도 있고 기타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서 노이즈가 발생할 수 있어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김 씨에게 경빈 군의 초기 상태를 목격한 해경과 응급구조사들의 진술 내용을 전달하고, 만약 그 당시 ‘병력 청취’ 과정을 통해 이런 정보들을 알았다면 어떤 의료 지도를 했었을 것인지를 물었다.

그는 “만약 응급구조사로부터 경빈 군이 세월호 침몰 후 7시간이 지나 구조됐고, 호흡과 맥박, 산소포화도, 동공반응이 없는 상태였으며, 피부조직이나 팔 다리가 굳어 있는 것도 확인된다는 정보를 정확히 받았다면 ‘심폐소생술 그만 하세요. 이미 사망하신 것 같습니다. 병원으로 옮겨 주세요.’ 정도의 권고를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역시 병원을 방문한 사참위 조사관들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한 달여 뒤 언론을 통해 사참위의 의혹 발표 내용을 접하고는 무척 당황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진술한 내용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여러 기자들로부터 연락이 왔지만 어느 언론의 취재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든 언론이 사참위 발표를 기정 사실로 보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인터뷰를 해도 제대로 반영되기 힘들 것 같아서였다. 그렇다면 뒤늦게나마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참위 발표의 핵심은, 재난 상황에서의 구조 체계를 현재의 미흡한 상황보다는 더 개선해서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가치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실제 사실을 곡해해서 조금은 다른 구도로 활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의료인으로서의 양심을 걸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인터뷰에 응하게 됐어요.”

김00 / 목포한국병원 응급의학과 과장

하지만 그는 사실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인터뷰를 하면서도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고 말했다. 바로 경빈 군의 어머니였다.

“인터뷰 하겠다고 말씀드리면서도 제가 계속 부담이 됐던 게 경빈 군 부모님 생각 때문이었어요. 사참위 발표 때문에, 경빈 군이 당시 생존해 있었는데 구조 과정이 잘못돼서 숨진 걸로 지금 생각을 하고 계실 거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 당시에 생존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고 저도 판단을 하고요. 이런 인터뷰가 보도되면 또 부모님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그게 너무 걱정이죠.”

김00 / 목포한국병원 응급의학과 과장

경빈 군 어머니 만나 취재 내용 전달…사참위 “관계자 진술 종합 판단해 결론 내린 것”

경빈 군의 어머니 전인숙 씨는 사참위의 의혹 발표 이후 지난해 11월 13일부터 하루도 빠짐 없이 청와대 앞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타파는 보도에 앞서 어머니 전 씨를 만났다. 사참위 발표와 그동안의 언론 보도가 사실과는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는 취재 내용을 어머니가 보도를 통해 접하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지난해 11월부터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경빈 군 어머니 전인숙 씨

경빈 군 어머니는 촬영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취재진과 2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눴다. 취재진은 경빈 군을 처음 발견한 해경과 응급구조사, 의료 지도를 했던 목포한국병원 의사의 진술 등 취재된 모든 내용을 전달했다. 또 검찰 특수단이 대한응급의학회에 공문을 보내 ‘세월호 참사 해역의 당시 수온에서 익수자가 생존 가능한 최대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등의 자문을 구했지만 역시 경빈 군의 생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회신을 받았다는 취재 내용도 전달했다.

어머니는 당시 경빈 군이 숨진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비교적 담담히 받아들였다. 다만, 아무리 숨진 아이라고 해도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내기까지 5시간 가까이를 물 위를 떠돌게 만든 국가기관의 비정한 행태 만큼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경빈 군 어머니와 만난 뒤 사참위에 질의서를 보냈다. 의혹 발표 당시, 경빈 군의 초기 상태를 현장에서 목격했던 핵심 관계자들의 진술 내용 등을 사참위 발표 때 밝히지 않았던 이유 등을 묻고 이를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 뉴스타파 질의에 대한 사참위의 답변서

이에 대해 사참위는, 해당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 내용 공개는 사참위법에 따라 불가능하며, 해당 내용들은 이미 사참위의 조사 결과와 판단에 반영됐고 검찰 특수단에도 모두 제공되었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특수단, 사참위 수사 요청 의혹들 줄줄이 ‘무혐의 처분’… 사참위, 제대로 가고 있나?

경빈 군 사건과 관련해 뉴스타파가 직접 만나거나 진술 내용을 확인한 핵심 관계자들은 모두 사참위 조사와 특수단 수사를 잇달아 받았다. 그리고 특수단은 사참위가 조사하지 못한 관계자들까지 더 폭넓게 수사한 뒤 이 사안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당초부터 사참위의 의혹 제기가 무리한 것이었음을 특수단 수사가 확인해준 셈이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 역시 사참위가 수사 요청했던 세월호 DVR 바꿔치기 의혹과 청해진 해운에 대한 산업은행의 불법대출 의혹 역시 무혐의 판단을 내렸고 기무사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에 대해서만 군 검찰과의 공조가 필요해 현재 수사를 진행 중인 상황이다. 그러니까 사참위 출범 이후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발표했던 4건의 의혹 가운데 3건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정리된 상태다.

사실 사참위의 세월호 관련 의혹 발표는 그동안 ‘조사결과 중간발표’라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니까 조사를 완전히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사참위는 이 같은 방식으로 조사 활동을 벌이는 이유에 대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사참위로서는 합리적 의혹이 제기된 사안들을 검찰에 넘겨 수사하도록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국가 조사기구인 사참위의 위상을 볼 때, 사참위가 발표하는 의혹들은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사실관계가 거의 확인된 내용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크다. 향후 검찰 수사를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검증된다 해도 대중들에게 한번 각인된 인식은 향후 쉽게 바뀌기 어렵다.


사참위의 조사활동 기한은 올해 말까지다. 과연 현재까지와 같은 방식의 조사활동이 국민적 과제인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유효한 것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해 봐야 할 때다.

‘진실’이란 단순히 ‘사실’들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맥락까지를 포함해 확정되는 것이지만, ‘사실’이 아닌 것들로 구성되는 ‘진실’이란 존재할 수 없다. 국가 조사기구의 최우선 임무 역시 ‘진실’의 구성물이 될 ‘사실’들을 면밀히 검증을 통해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아닐까. 

제작진
취재기자김성수
촬영기자김기철 신영철
편집정지성 박서영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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