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춘 보훈처', 가짜 상이군경 조사 방해"...뉴스타파 4년 전 관련 보도

2019년 01월 11일 10시 25분

박승춘 처장 시절인 2015년, 국가보훈처(이하 보훈처)가 경찰의 ‘상이등급 조작 사건’ 수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 회원수 11만 명이 넘는 상이군경회가 관할관청인 보훈처의 허가없이 일명 ‘대명사업’을 벌여 불법적인 수익을 올리고도 이를 회원들을 위해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8일 보훈처는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 산하 국가보훈처 위법·부당행위 재발방지위원회’(이하 위원회)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보훈처는 이 외에도 재향군인회 경영 문제, 박승춘 처장 시절 대대적으로 추진된 나라사랑교육에서도 총체적인 문제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8월 발족한 ‘위원회’는 지난 5개월간 보훈처가 벌인 각종 위법, 부당행위를 조사해 왔다.

▲ 2015년 5월 28일 뉴스타파 보도 ‘당신은 중증 상이군인이 맞습니까?’

보훈처 발표 내용 중 ‘가짜 상이군경’, ‘상이군경회 대명사업’ 관련 내용은 4년 전 뉴스타파의 보도내용과 직접 관련돼 있다. 2015년 5월 28일 뉴스타파는 상이군경회 이사인 김길수 씨 등 다수의 상이군경회 간부들이 실제 부상정도보다 높은 등급의 상이등급을 받아 매월 최대 700만 원대의 세금을 가로채 왔으며, 이 과정에서 보훈심사에 참여한 보훈병원 소속 의사가 부당하게 등급을 올려준 사실을 확인해 보도했다.

당시 뉴스타파는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힘든 상이군경에게 부여되는 등급을 받은 사람들이 자가운전을 하고 심지어 일상적으로 골프를 치고 다니는 영상을 확보, 공개했다. 또 상이군경회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대명사업을 통해 불법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도 보도한 바 있다.

이번 발표에 따르면, 뉴스타파가 상이군경회와 관련된 일련의 보도를 한 직후 경찰은 ‘보훈병원 의사 등 상이등급 조작 사건’을 수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이등급 의심자인  상이군경회 간부에 대한 직권 재판정 신체검사를 보훈처에 의뢰했다. 하지만 보훈처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유공자예우법)’로 규정된 재판정 신체검사를 실시하지 않았고, 재심사 거부 의사를 6개월이 지나서야 경찰에 통보했다. 보훈처가 사실상 수사방해 행위를 벌인 것이다. 결국 부정 등급 의심자들은 불기소처리되면서 법망을 빠져 나갔다.  

상이 2등급은 ‘일상생활에 수시로 다른 사람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 사람’인데 골프를 치고 있어 현재 신체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재판정을 의뢰했으나 보훈처에서 거부하여 결국 불기소
국가보훈처 진상조사단 발표문 / 2019년 1월 8일

상이군경회, ‘대명사업’으로 불법 수익…18개 불법 사업장서 연간 90억 원대 매출

의혹이 무성했던 상이군경회 ‘대명사업’의 실체도 이번 발표를 통해 드러났다. ‘위원회’는 “상이군경회가 법률로 허용된 수익사업 권한을 악용, 대명사업으로 불법수익을 벌어들였다”고 발표했다. 대명사업이란 상이군경회가 국가유공자예우법으로 보장된 수의계약이라는 특혜에 의해 시행하는 수익사업을 회원들과 함께 직접 운영하지 않고 다른 업체에 소정의 수수료를 받는 조건으로 단체 명의만 빌려주는 것이다. 다음은 ‘위원회’ 발표 내용 중 일부.

2018년 현재 상이군경회가 승인을 받아 운영하는 46개 사업(70개 사업장, 326개 품목) 중 일부 사업에 대한 대명사업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수익사업 중 24개 사업장과 회원 일자리 제공 목적에 적합하지 않은 전문영역인 미디어, 전산사업 등이 대명사업 의혹을 받고 있다.
국가보훈처 진상조사단 발표문 / 2019년 1월 8일

이와는 별도로, ‘위원회’는 상이군경회가 운영하는 총 70개 사업장 중 18곳이 보훈처의 승인을 받지 않은 불법사업장이라는 사실도 공개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이들 18개 사업장에서 상이군경회가 벌어들이는 매출은 무려 93억 원(2016년 기준)에 달했다.

▲ 2015년 5월 28일 뉴스타파 보도 ‘의혹투성이 상이군경회 수익사업’

재향군인회 부채 5535억 원...나라사랑교육도 총체적 부실

‘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국내 최대 제대군인단체인 재향군인회의 부채 규모는 5535억 원(2018년 10월 기준)이다. 그 중 대부분은 아파트, 골프장 등 20개 부동산 사업에서 발생했다. 2011년부터 구조조정 및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정상화를 추진해 1400억 원의 부채를 상환했으나 이후 전망은 불투명한 상황. ‘위원회’는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를 “회장 1인의 독단적 운영, 전문성이 결여된 사업운영”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박승춘 전 보훈처장(2011~ 2017년 재임) 시절 중점적으로 추진된 나라사랑교육도 총체적인 부실덩어리였다. 박 전 처장의 지시로 322명의 강사가 아무런 절차없이 선발됐으며, 교육내용도 편향됐다는 것이다. ‘위원회’에 따르면, 2012년 2664회에 불과했던 나라사랑교육은 2016년에는 1만 727회까지 늘어났다. 박 전 처장 재임시절 교육을 받은 사람은 500만 명이 넘었다.

전문강사들을 교육시키는 사람들도 이념적으로 편향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국정원이 운영한 여론조작 민간조직 ‘알파팀’의 리더 김모 씨가 강의자료를 만들었고, 보훈처는 그에게 750만 원을 대가로 지불한 사실이 이번 ‘위원회’ 조사로 확인됐다. 김 씨가 만든 자료에는 “민주당 정권과 시민사회단체 내의 종북, 친북 세력이 북한에 유리한 정책과 여론조성을 했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었다.

국정원 제작 ‘보훈교육 DVD’ 활용, 폐기 관련 보훈처 직원들 조직적 위증

2011년 보훈처는 국정원 심리전단이 제작한 ‘호국보훈 교육자료’ DVD 1000세트를 전달받아 나라사랑교육에 활용하기도 했다. DVD에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대북정책에 대한 비난’, ‘민주화운동에 종북, 친북 세력이 연계되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박승춘 전 처장과 보훈처 직원들이 이 DVD의 활용, 폐기와 관련된 내용이 다뤄진 국회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위증한 사실이 이번 ‘위원회’ 발표를 통해 새롭게 드러났다. DVD의 배포, 활동, 폐기 과정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보훈처 직원들이 “DVD 제작자가 누구인지 모른다”거나 “DVD를 전달받은 사실도 없고 그 내용도 알지 못한다”는 등의 허위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보훈처 나라사랑교육 담당 공무원들은 ‘호국보훈 교육자료 DVD’의 배포, 활용, 회수, 폐기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으나 DVD의 존재가 쟁점이 되자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국회에서 위증을 하거나 감사원 감사에서 허위답변을 했다.
국가보훈처 진상조사단 발표문 / 2019년 1월 8일

보훈처는 이번 ‘위원회’ 발표내용을 “겸허히 수용한다”고 밝혔다. ‘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뒷받침하기 위한 후속조치를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보훈처의 한 관계자는 “가짜 상이등급, 대명사업 등과 관련 필요한 규정을 마련하고, 동시에 사실관계를 파악해 불법행위가 확인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을 감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보훈단체 운영의 민주성을 높이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에 회장 선거를 위탁하는 등 조치를 취하겠다”고 설명했다.

취재 : 한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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