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충돌 발생 직후 메이데이 신호를 보내고 '고 어라운드'(Go around, 복항)하려다 실패한 뒤 동체착륙을 시도했다."
지금까지 제주항공 7C2216 여객기가 최후의 수단인 동체착륙을 시도하기까지의 과정은 이렇게만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조류충돌이 발생한 시점과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고, 랜딩 기어를 내리지 못한 채 동체착륙을 시도한 이유와 경위도 일관성 있게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 양쪽 엔진이 모두 불능이 되었기 때문에 '메이데이'를 선언했을 것이란 추정만 나오고 있는 상태다.
사고 현장에서 수거된 비행기록장치(Flight Data Recorder)와 조종실 음성기록장치(Cokpit Voice Recoder) 분석이 끝나야 이 모든 의문들이 완전하게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비행기록장치는 커넥터 부품이 손상돼 제조사가 있는 미국으로 보내졌다. 완전한 분석까지는 수 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뉴스타파는 사고 여객기의 항적 정보가 초 단위로 기록돼 있는 'ADS-B'(Automatic Dependent Surveillance-Broadcast) 데이터를 입수해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전·현직 조종사 및 항공사고 조사 경험자 등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를 청취했다. 이를 통해 사고 여객기가 공항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일들과 동체착륙을 시도하게 된 경위를 보다 실증적으로 일관성 있게 분석할 수 있었다.
ADS-B 데이터란?
ADS-B는 GPS 위성 항법 시스템과 10,90MHz 전송 링크를 이용해 항공기의 정보를 수집 및 전파하는 시스템이다. 특정 항공기의 감시 정보(항공기 식별 부호, 위치, 속도, 고도, 진행 방향, 기체 경사, 기수 방향 등) 30여 종을 1초 단위로 지상에 있는 2만여 개의 항공 관제 기지국들과 상공에 있는 다른 항공기들에 전파(Broadcast)하는 시스템이다.
▲ ADS-B 시스템 개요도
기존의 레이더 기반 항공 관제보다 정보의 정확도가 높고 수집 및 전달 속도도 빠르다. 항공기의 통신 두절 등 비행 제한 요소들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항공 관제 기능을 향상시켜 항공기 충돌을 방지할 목적으로 개발돼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항공 관련 기관들 뿐만 아니라 개인도 ADS-B 수신기만 있으면 특정 항공기와 주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2월 29일 새벽 태국 방콕을 출발해 무안공항으로 비행한 제주항공 7C2216편의 정보도 수많은 ADS-B 수신기를 통해 수집됐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사고 여객기의 ADS-B 데이터는 12월 29일 오전 8시 58분 50초, 그러니까 동체착륙 결정(9시 1분)이 내려지기 2분여 전까지 수집된 정보다. 이중, 뉴스타파는 사고 여객기가 무안공항 관제탑의 착륙 허가를 받은 오전 8시 54분부터 8시 58분 50초까지 약 5분 구간의 데이터를 집중 분석했다.
▲ 제주항공 사고 여객기의 ADS-B 항적 데이터
공항 접근 중 조류충돌 불구 매뉴얼대로 정상 착륙 시도
사고 여객기는 무안공항을 향해 정북 방향으로 향하고 있던 오전 8시 54분쯤 관제탑으로부터 착륙 허가를 받았다. 당시 공항 활주로까지 남은 거리는 27.7km였고 고도는 4,050ft(1,234m)였다. 이후 고도와 속도를 계속 낮추면서 평소 항로대로 정상 비행했다. 기체의 흔들림 같은 특이 사항도 없었다.
▲ 8시 57분 무안공항 관제탑으로터 착륙 허가를 받을 당시 여객기 위치와 고도
오전 8시 57분쯤, 무안공항 관제탑이 조류충돌에 주의하라고 사고 여객기에 고지했다. 활주로까지 12.3km 남았고 고도는 1,575ft(480m)였다. 8시 57분 13초에 랜딩 기어가 내려가 있는 사진이 찍혔다. 조종사들은 통상적으로 2,500~2,000ft(762~610m) 고도에서 랜딩 기어를 내린다. 이 시점까지도 특별한 문제 없이 정상적인 착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 8시 57분 무안공한 관제탑으로부터 조류충돌 주의 고지를 받을 당시 여객기 위치와 고도
조금 뒤인 오전 8시 57분 25초부터 조금 특이한 항적이 나타난다. 약 30초 동안 사고 여객기가 정상 항적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벗어났다가 되돌아왔다. 이 시각, 여객기 고도는 1250ft(381m)에서 850ft(259m)까지 낮아졌고, 기체가 좌우로 번갈아 4도 이상 기울며, 기수 방향도 오른쪽 8도까지 틀어졌다가 회복됐다. 하지만 데이터를 본 현직 조종사들은 특별히 비정상적인 항적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통상적으로 착륙 준비 중 고도가 1000ft(305m)에 접근하면 항법을 자동에서 수동으로 전환하는데, 그 과정에서 기체가 약간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 8시 57분 25초~57초 구간의 여객기 항적과 고도
그런데 조금 뒤인 오전 8시 58분 3초, 활주로를 7.6km 남기고 700ft(213m) 상공을 지나던 여객기의 움직임은 특이했다.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오른쪽으로 9도나 기울었다가 돌아왔다.
이 무렵 무안공항에서 4km쯤 떨어진 농가의 CCTV에 공항으로 접근 중인 여객기의 모습이 포착됐다. 정확히 8시 58분 3초, 엔진 뒤편으로 화염이 뿜어져 나갔다. 전형적인 조류충돌 직후의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 조류충돌 발생 순간으로 판단되는 CCTV 화면
하지만 그 직후부터 여객기는 흔들림을 멈추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공항을 향해 계속 고도를 낮춰 갔다. 조류충돌로 엔진 터빈에 얼마나 손상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그대로 정상 착륙을 시도했다는 의미다. 이는 사고 여객기 기종인 보잉 737의 조종사 훈련 매뉴얼에 따른 조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 보잉 737 조종사 훈련 매뉴얼 중 조류충돌 대응 부분
매뉴얼은 이륙할 때 조류충돌이 발생할 경우, 즉각 회항하고 착륙할 때는 조류충돌이 발생하면 가급적 그대로 진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착륙 시 설령 새떼를 만나도 그대로 관통하는 것이 좋고, 이때 엔진 추력을 낮게 유지하라고 되어 있다. 한 현직 조종사는 "이륙할 땐 엔진 추력을 최대로 올리기 때문에 새가 부딪히면 엔진 블레이드에 큰 손상이 나서 즉각 회항하라는 것이고, 반대로 착륙할 때는 속도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엔진도 천천히 돌고 있어서 새가 충돌해도 상대적으로 손상이 적으므로 그 상태를 유지하며 착륙하는 게 더 안전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갑작스런 속력·고도 상승..."엔진 손상 급격히 악화됐을 것"
오전 8시 58분 25초, 조류충돌에도 불구하고 정상 착륙을 시도하던 여객기의 속도와 고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9초 동안 175ft(53m)를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기체가 다시 오른쪽으로 7도까지 기울어졌다.
▲ 조류충돌 이후 정상 착륙 시도 중 고도 상승 구간 데이터
전문가들은 이때 구간에서 엔진 고장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본다. 속도가 빨라졌다는 건 엔진 추력을 키웠다는 것이고, 이러면 앞서 조류충돌로 미세 손상됐던 엔진 블레이드가 더 크게 망가지면서 엔진 불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객기 속도와 고도가 9초 동안 높아졌다 떨어진 직후인 8시 58분 41초부터 촬영된 동영상 속에는 오른쪽 엔진이 불능 상태에 빠져드는 정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18초 동안 오른쪽 엔진에서 폭발음과 함께 12차례나 불꽃이 포착됐다.
▲ 오른쪽 엔진 고장 장면이 담긴 제보 영상 일부
이 영상이 끝난 직후인 오전 8시 59분 초반대엔 왼쪽 엔진도 급격히 불능 상태에 빠졌을 것으로 보인다. 1997년 대한항공 여객기 괌 추락 사건 등 다수의 항공사고를 조사한 경험이 있는 변순철 한국항공사고조사협회 사무국장은 "여객기는 엔진 1개만 살아 있어도 고도를 5,000ft로 끌어올려 선회 비행을 할 수 있다"면서 "조종사가 메이데이를 외쳤다고 국토부가 발표한 오전 8시 59분쯤에는 양쪽 엔진이 모두 불능 상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무안공항 인근 농가의 CCTV에 오전 8시 59분 25초부터 포착된 여객기의 모습을 보면, 기수는 들려 있지만 고도는 오히려 약간씩 떨어지고 있었다.
▲ 8시 59분 25초 이후 무안공항 인근 농가 CCTV에 포착된 여객기
엔진 손상 가능성 있는데 왜 고도 높여야 했나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조류충돌이 발생했던 것으로 보이는 오전 8시 58분 3초 이후, 매뉴얼에 따라 속도와 고도를 낮추던 여객기는 왜 갑자기 고도를 끌어올리려 했던 걸까. 엔진이 더 크게 망가질 수 있는데도 엔진 추력을 높여야만 했던 이유는 뭘까.
비행기록장치와 음성기록장치가 모두 분석되어야 완전히 설명될 수 있겠지만, ADS-B 데이터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주목할 점은 조류충돌과 엔진 고장 시점 이전부터 사고 여객기의 공항 접근 고도가 너무 낮았다는 것이다.
▲ 무안공항에 착륙할 때 정밀접근(왼쪽)과 비정밀접근(오른쪽) 방법을 담은 젭슨 차트
항공기가 공항에 접근할 때의 지침서에 해당하는 젭슨 차트(Jeppesen Chart)는 크게 정밀접근과 비정밀접근 방법을 따로 규정하고 있다. 정밀접근은 항공기를 활주로의 정중앙으로 유도하는 로컬라이저(Localizer)와 항공기의 착륙 각도를 3도로 맞춰주는 글라이딩 패스(Gliding Path)의 도움을 받아 착륙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참사 당시 무안공항에서는 활주로 개량 공사 등의 이유로 이 장비들이 작동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무안공항을 향하는 모든 항공기 조종사들에게 사전 고지돼 있는 상태였다.
▲ 정밀접근을 돕는 로컬라이저(위)와 글라이딩 패스(아래)의 개념도
따라서 사고 여객기는 착륙을 돕는 장비의 도움 없이 비정밀접근으로 착륙을 시도해야 했다. 무안공항의 젭슨 차트를 보면, 비정밀접근을 시도하는 항공기는 활주로 10.6마일(17km) 전방에서 고도 3,000ft(914m), 5.1마일(8.2km) 전방에서 고도 1,700ft(518m)를 통과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런 추이로 진행하면 3도의 착륙 각도로 안전하게 활주로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ADS-B 데이터 분석 결과 사고 여객기는 활주로 10.6마일 전방에서 고도 2,424ft(739m), 5.1마일 전방에서 고도 850ft(259m)로 비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젭슨 차트의 지침보다 크게 낮은 고도였고, 특히 활주로 5.1마일 전방에선 지침상 고도의 절반 높이로 공항에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 무안공항 비정밀접근 고도 지침과 사고 여객기 고도의 비교
한 현직 조종사는 비정밀접근으로 착륙하다가 활주로에 거의 접근해서야 고도가 너무 낮다는 걸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럴 경우 조종사는 고도를 끌어올려 선회 비행(Go around, 복항)을 한 뒤 다시 활주로에 접근을 시도하는 게 일반적이다.
▲ 동체착륙 후 활주로 위를 미끄러지고 있는 제주항공 7C2216 여객기
종합하면, 사고 여객기가 조류충돌 이후 정상 착륙을 시도하다가 갑자기 엔진 추력을 높이며 고도를 끌어올리려고 했던 건 활주로 접근 고도가 너무 낮았다는 걸 뒤늦게 인식했기 때문일 수 있다. 앞선 조류충돌로 손상된 엔진이 더 크게 악화될 수 있는 고도 상승, 그리고 자칫 활주로에 안전하게 내리지 못할 수도 있는 저고도 접근, 이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하는지는 전적으로 조종사의 몫이다. 사고 여객기의 경우는 후자를 더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고도를 상승시키려 했을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고도 상승 시도가 엔진 불능과 동체착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