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회피 폭로 후폭풍… 국민연금만 괜찮다?
2014년 11월 11일 23시 01분
지난 2010년 국민연금은 프랑스 파리 북부 근교에 위치한 오파리노 쇼핑센터 지분 51%를 3,500억 원에 매입했다.
국민연금은 오파리노가 “유럽에서 가장 부촌에 있는 쇼핑센터”라고 선전했고, 언론도 국민연금의 프랑스 투자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현지에서 확인해 보니 오파리노 쇼핑센터가 위치한 지역은 유럽연합 내 최고 부촌과는 거리가 멀었고 주로 서민 주거 지역, 우범 지역이었다. 이곳의 부동산 투자 가치도 파리나 남쪽 위성도시 지역에 비해 떨어지는 곳이었다.
파리의 부동산 중개인은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오파리노가 있는 올레스부아 지역 내 60% 이상이 1920년대부터 60년대 사이에 지어진 노후한 서민 임대 아파트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또, 지역 이미지가 좋지 않아 파리 사람들이 쇼핑을 위해 찾는 곳이 아니라고 전했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2011년에 이런 오파리노 쇼핑몰의 지분 24%를 1억 600만 유로, 우리 돈으로 1,600억 원을 주고 추가로 매입해 보유 지분을 75%로 늘렸다.
거기다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위해 추가로 3,000만 유로를 투입한 것이 뉴스타파 취재로 확인됐다.
국민연금 측은 오파리노의 자산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정상적인 투자라고 밝혔다.
하지만 감사원은 2011년 국민연금의 오파리노 쇼핑센터 투자가 부적정하다고 통보했다. 오파리노 매입 가격을 고려하면 명목투자수익률이 국민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 기준인 6.7% 미달인데, 위탁운용사인 영국계 부동산 투자회사 락스프링이 제시한 수익률 9.8%만을 근거로 투자를 강행했다는 지적이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오파리노의 대주주였던 영국계 부동산 회사 해머슨이 국민연금에게 지분을 매각한 것을 두고 “5% 대의 낮은 수익이 나는 부동산을 매각해 높은 수익을 내는 자산에 재투자 하는 예”라고 보도했다.
뉴스타파는 국민연금의 오파리노 투자가 수익성과 타당성을 충족시키는 투자였는지 점검하기 위해 임대수익 등에 관해 문의했지만 국민연금은 “위탁운용사와의 비밀 유지 계약”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며 계속 답변을 거부했다.
하지만 공공기관인 국민연금이 공개를 거부하는 운용수익을 오파리노 지분 25%를 아직 보유하고 있는 사기업인 해머슨은 연간 회계 보고서를 통해 공시하고 있다.
해머슨의 작년 오파리노 임대 수익은 460만 파운드였고, 세전 이익은 고작 20만 파운드 (약 3억 4,000만 원)로 기록됐다. 국민연금의 지분이 해머슨의 3배인 것을 감안하면 단순히 계산해 볼 때 국민연금이 오파리노에서 작년에 거둔 세전 이익은 1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5,000억 원이 넘는 투자금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초라한 성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ICIJ가 입수한 룩셈부르크 조세당국과 회계법인 PwC의 사전 과세협정 문서를 보면 국민연금은 위탁운용사인 락스프링과 ‘NPS 부동산 프로젝트 합자회사’를 만든 뒤 이를 통해 오파리노 쇼핑센터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난다.
국민연금은 투자자금을 대고 락스프링은 제너럴 파트너(GP), 즉 무한책임 파트너로 실제 투자와 운용을 담당하는 역할이다.
국민연금과 락스프링은 이 합자회사를 통해 오파리노 투자 이전에 이미 영국의 부동산 2곳을 매입했다. 이후 락스프링은 국민연금으로부터 1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재량권도 위임받았다.
지난 1월 유럽의 부동산 투자 전문지인 PIE는 락스프링이 국민연금의 영국 내 투자에 대해 독점 계약권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민연금이 위탁운용사인 GP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 감사원이 부실투자라고 지적한 국민연금의 오파리노 투자도 락스프링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수익률 전망에 따라 이뤄졌다.
뉴스타파는 취재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오파리노 지분 취득 후 거액의 대출을 받은 사실도 확인했다. 락스프링이 2011년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오파리노를 담보로 2억 1,900만 유로, 당시 환율로 2천억 원 대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백조 원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굳이 이자까지 지급하며 은행 대출을 받았지만 그 이유와 대출금의 용도는 알려진 바 없다. 심지어 국내에선 거액 대출 사실도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뉴스타파는 국민연금 측에 대출을 받은 이유와 용도에 대해 물었으나 국민연금은 여전히 위탁운용사와의 비밀 계약을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위탁운용사는 보도자료까지 냈고, 해외 언론에도 보도된 사안이지만 국민연금은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주인인 우리 국민만 국민연금이 해외에서 어떻게 투자되는 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 의문투성이 투자 행태와 지나친 비밀주의가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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