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일보에는 '사장님 기사'가 있다

2021년 03월 23일 14시 48분

인천에 본사를 둔 일간지 기호일보의 전현직 기자들이 경영진의 편집권 침해를 고발하고 나섰다. "관행처럼 만들어져 온 소위 '사장님 지시 기사'의 제작·보도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호일보 측은 "편집권을 침해한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최근 뉴스타파는 기호일보 전현직 관계자들로부터 기호일보 한창원 사장이 부당하게 편집권에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기호일보 내부자료를 여러건 제보받았다. 자료 중에는 한 사장이 지난 3년 간 편집국에 내려보낸 160여건의 기사목록이 들어 있었다. 모두 인천 지역의 특정 정치인·기관·기업과 관련된 홍보성 기사였다. 
언론사 운영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경영과 편집의 분리'가 기호일보에서 일상적으로 무시돼 온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증거들이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기호일보 보도정보시스템 사진. 제목에 '사장님'이라고 적힌 기사들이 여럿 확인됐다.  

기호일보 내부전산망에 등장한 '사장님 기사'

뉴스타파는 최근 기호일보 전현직 관계자들을 통해 기호일보 보도정보시스템을 촬영한 사진 파일 여러장을 제공받았다. 보도정보시스템은 언론사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출판할 때 사용하는 내부전산망. 뉴스타파가 입수한 사진 파일에는 보도정보시스템에 올라온 각종 기사들이 날짜별로 정리돼 있었다.
그런데 보도정보시스템에 올라온 기사중에 눈에 띄는 것들이 있었다. 제목 앞에 '사장님'이라고 적혀 있는 기사들이다. 이런 기사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의 기사 목록에서 꾸준히 발견됐다. 
취재진은 먼저 전현직 기호일보 기자들을 만나 '사장님'이라는 제목이 달린 기사가 대체 뭔지 물었다. "'사장님 기사'는 사장과 친분·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에 대한 기사, 그래서 꼭 내보내야 하는 기사"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 기호일보 기자인 A 씨는 "총무국 쪽에서 보도자료에 '사장님'이라고 붙여서 보도정보시스템에 올린다. 그러면 그날 쓰는 기사가 적은 기자들한테 '이거 사장님 거니까 기사로 만들어서 올리라'고 지시한다"고 말했다. 
기호일보 한 현직기자의 말도 비슷했다.
사장님 지인들 있잖아요. 사장 메일로 온 보도자료 등을 디지털뉴스부로 다시 보내요. 그럼 그걸 디지털뉴스부 직원들이 앞에 다가 '사장님' 기사라고 해서 메일 온 거를 올려 버리는 거죠. 그럼 그 '사장님' 표시가 붙은 기사는 무조건 나가야 하는 거라는 표시죠.

B 씨 / 기호일보 현직 기자
뉴스타파는 제보받은 사진 파일을 분석해 소위 '사장님 기사'가 몇개나 되는지 세 봤다. 확인결과,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162개에 달했다. 제보받은 파일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기사까지 포함한다면, 실제 '사장님 기사'는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창원 기호일보 사장. (출처 : 이데일리TV)

'사장님 기사' 살펴보니...모두 특정 인물·기관 홍보 기사

'사장님 기사' 대부분은 인천에 연고를 둔 특정 인물과 기관을 띄워주는 홍보기사였다. 
2020년 5월 22일 기호일보 2면에 실린 '인천 남동을 윤관석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국회 통과 기사', 같은 해 7월 16일 5면에 실린 '인천 연수갑 박찬대 의원의 아동복지 관계자들과의 간담회 동정 기사'같은 것들이었다. 
2020년 7월 16일 기호일보에 실린 박찬대 국회의원 동정 기사(위 사진). 기호일보 보도정보시스템에 올라온 해당 기사 목록. '사장님'이란 표시가 달려 있다.  
남인천세무서에서 불우이웃 성금 200만 원을 기부했다는 기사(2018년 10월 8일), 인천 경영자총협회에서 쌀을 기증했다는 미담 기사(2020년 8월 27일)에도 '사장님'이란 표시가 달려 있었다. 한 전직 기호일보 기자는 "사장님 기사가 나가는 과정에서 종종 기자의 이름이 무단 사용되는 일도 벌어졌다"는 믿기 힘든 주장도 내놨다.  
제가 취재를 하지 않은 것인데도 제 바이라인을 달고 이제 인터넷이든 지면에도 나간 적이 있고. 종교든 이제 개인, 사적인 단체, 모임 이런 거로...명확하지 않은 집단에 대한 기사들도 몇 번 있었고요. 개인적인 뭐 이득이라든가 홍보죠.

C 씨 / 전 기호일보 기자
'경영과 편집의 분리'는 언론사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다. 사회적 공기(公器)인 언론이 사주 등 개인의 사유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한국기자협회 언론윤리헌장에는 '독립적인 보도를 보장하기 위해 편집과 경영의 분리 원칙을 준수한다'고 돼 있다. 기호일보가 스스로 정한 윤리강령에도 '우리는 경영과 편집의 분리원칙을 수호하며, 주주나 이사라 하더라도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을 행사할 수 없음을 천명한다'고 명시돼 있다.
기호일보에서 벌어진 '사장님 기사' 관행을 검토한 정연우 세명대학교 교수(광고홍보학과)는 "전달만 해도 지시와 명령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편집기자든 취재기자든 사장의 전달 내용을 거절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명백한 편집권 침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영흠 협성대학교 초빙교수(미디어영상광고학과)도 "언론사 사장 혹은 사주가 지역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언론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장님 기사'의 목적도 그런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노조 문제 제기 후 사라진 '사장님 기사'?

지난해 말, 기호일보 노동조합은 성명서를 내고 소위 '사장님 기사' 관행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는 게 노조의 주장. 기호일보 현직기자인 B 씨는 "노조가 성명서를 낸 후에도 '사장님 기사'는 여전히 지면과 인터넷에 실리고 있다. 다만 눈에 안 띄게 제목을 바꿔 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기호일보 한창원 사장에게 연락해 '사장님 기사'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한 사장은 뉴스타파와의 전화통화에서 "특정 기사를 쓰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내 이메일로 온 보도자료를 편집국에 내려보낸 것일 뿐이며 기사화되지 않은 사례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한 사장은 "노조에서 문제를 제기한 뒤에는 보도자료를 내려보내는 것도 중단했다"고 말했다.  
제작진
취재홍주환
촬영오준식 이상찬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