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국회의원 영수증 중복청구는 중점조사 대상, 5년전부터 반납 고지했다"
2018년 12월 06일 19시 53분
국회의원 ‘영수증 이중제출’ 비리와 관련해 국회사무처가 회계처리 기준을 강화하겠다면서도 중복 청구는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선관위 판단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은 6일 보도자료를 내고 “영수증 이중청구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회계처리 기준을 더욱 엄격히 지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 총장은 “사무처에서 지원받은 의정활동 비용을 후원회 지출계좌 입출금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용한 것이지 영수증 이중청구는 아니다”라고 했다.
국회의원은 국회사무처에서 세비 및 보좌진 인건비와는 별도로 의원 1인 당 매년 5000만 원이 넘는 사무실 운영 경비를 지원받고 있다. 올해 기준 세부 예산 내역은 ▲사무실 운영비 600만 원, 전화요금 등 공공요금 지원비 1140만 원, 차량유지비 429만 원, 차량유류비 1320만 원, 사무실 소모품 지원비 500만 원, 공무수행 출장비 451만 원, 직원 특근매식비 728만 원 등이다.
여기에 의원실 신청에 따라 지급되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 정책자료 발간비 등이 있고, 보좌진 급여까지 포함해 의원 1명에게 지급되는 예산은 연간 6억 원 규모다. 이 중 의원세비는 1억 3700여만 원으로 OECD 국가 중 최상위 수준이다.
그럼에도 영수증 이중제출로 국회 예산을 타낸 국회의원들은 의원실 경비가 부족해 일부 예산을 전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A의원실 보좌관은 “(국회 예산이 없을 때) 의원실 살림이 굉장히 힘들었다”며 “(국회 예산 전용이) 사무실을 운영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된 건 맞다”고 말했다. B의원실 보좌관도 “결론적으로 영수증 이중제출을 하고 선지출한 정치자금을 채워넣지 않은 것은 문제지만 우리는 운영의 묘를 살렸다고 생각한다”며 “국회 예산은 목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유용일 수도 있지만 예산을 좀 더 유연하게 썼다”고 말했다.
영수증 이중제출은 국회내부에서 오랜 관행이었다. 상당수 의원실은 영수증 이중 제출, 중복 정구로 타낸 국회 예산을 의원실 경비 계좌에 넣고 의정보고서 기획 제작 등 본래 청구 목적과는 전혀 다른 용도로 썼다. 지역구 관리나 식대 등으로 사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C의원실 보좌관은 “수행비서가 (지역구 관리를 위해) 이틀씩 지역에 숙박을 하는데 숙박비만 해도 한 달에 80만 원 이상”이라며 “(지역 사무실) 운영비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중 제출을 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연말에 남은 국회 예산을 다 타내기 위해 선관위에 보고가 끝난 영수증을 다시 제출한 사례도 있었다. 즉 처음부터 정부 예산을 용도 외 목적으로 사용할 계획을 갖고 돈을 타낸 것이다. D의원실 보좌관은 “(연간 의원에게 할당된) 국회 예산이 남아서 놔둘까 고민하다가 행정비서가 이중제출 얘기를 듣고 그렇게 처리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다른 정부기관이나 일반 회사에서 이 같이 영수증을 이중제출해 돈을 지급받았다면 법적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정책홍보비를 연간 1000만 원 넘게 지원해주는 목적이라는 게 있고, 법률 취지가 있는데 그것과 어긋나게 의원 개인의 통장에 넣어서 의원실 임의의 용도로 쓴다는 것은 국가 보조금의 취지와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이죠.
그러나 정작 의원들에게 예산을 지급해 온 국회사무처는 ‘의정활동비 보전’이란 명목으로 영수증 이중제출 비리를 사실상 방조했다. A의원실 보좌관은 “우리가 의정보고서를 만들고 영수증을 제출하면 국회사무처에서 예산을 보전해줬다”며 “국회사무처가 이 예산을 어떻게 쓰는지 우리에게 물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B의원실 보좌관도 “(지급받은) 국회 예산은 포괄적인 의정활동비라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국회사무처에 ‘왜 안내를 해주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우리는 영수증 받고 예산 항목에 맞게 지급했으니 할 일을 다한 것 아니냐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E의원실 보좌관 역시 “국회사무처가 영수증 이중제출을 몰랐을 리가 없다”며 “그러나 국회사무처는 예산이 지급된 후 의원실이 어떻게 돈을 쓰는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국회사무처가 영수증 이중제출을 제지하지 않으면서 상당수 의원은 국가 예산을 지원 목적과 관계 없이 임의대로 사용했다. E의원실은 “큰 틀에서 국회의원 의정활동비로 쓴만큼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의원들의 영수증 이중제출 비리는 주로 정책자료발간비 및 홍보물유인비 항목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났다. 이들 예산은 그동안 의원실이 신청하면 국회사무처가 사후 지급하는 방식으로 처리됐다.
국회사무처는 그런 거에요. 어쨌든 (예산) 항목 별로 지원을 했는데 그게 맞게 영수증이 제출되면 우린 할 거 다했습니다.
국회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른바 ‘예비비’ 항목으로 뭉뚱그려져 있던 예산이 보다 투명하게 집행되도록 지급 규정을 세분화됐다. 예비비 시절에는 의원 본인은 물론 보좌관들까지 돈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 국회 전직 보좌관은 증언했다. 즉 그 당시만 해도 국회 예산으로 음성화된 정치자금 또는 ‘뒷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급 규정 세분화 이후에도 국회사무처는 국회의원들이 예산을 그 용도에 맞게 제대로 사용하는지 제대로 관리감독 하지 않고 아예 손을 놓고 있다. 국회사무처는 국회의원인 국회의장의 지휘감독을 받는 입법 보조기관이다. 의원들이 국회사무처에 대한 인사권은 물론 감사권까지 행사하기 때문에 의원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유인태 국회사무총장도 현행 지원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가짜 연구자와 차명 계좌 등을 동원한 국회의원들의 세금 빼돌리기 비리 등 지난 10월 뉴스타파가 보도한 국회의원들의 입법 정책개발비 오남용 실태에 대해, 유인태 사무총장은 11월 7일 국회사무처에 대한 국정감사장에서 “원래 정책개발비 제도는 의원들 세비 보전하려고 만든 제도”라며 별 문제가 아닌데 “(언론이) 요란을 떨었다”는 식으로 발언했다.
원래 정책개발비라고 하는 게 의원들 세비 올리면 하도 여론이 안 좋아서, 공무원들 세비는 올리는데 못 올려 가지고 이것 조금 보전해 준다고 만든 제도예요, 이 정책개발비가. 그러니까 대충 리포트(연구보고서) 내면 갖다가, 보좌관들이 내게 돼 있는 걸 가지고 이번에 너무 (언론이) 요란을 떤 겁니다, 이게.
또 유 총장은 6일 영수증 이중제출 비리와 관련해 “회계처리 기준을 더욱 엄격히 지키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하면서도 현행 지원 제도에 대한 개선 계획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5월부터 <세금도둑잡아라> 등 시민단체와 3곳과 함께 ‘국회의원 의정활동 예산감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뉴스타파 등은 행정소송을 통해 2016년~2017년 동안 국회의원들이 집행한 ‘정책자료 발간 및 홍보물유인비’ 내역과 ‘정책발송료’ 사용 내역 등을 입수했다. 뉴스타파는 이 자료를 각 의원들이 선관위에 신고한 정치자금 지출 내역과 교차 분석해 의정활동비 이중청구 사실을 밝혀냈다.
※ 국회의원 영수증 이중제출 내역 특별페이지(링크)
※ 20대 국회의원 입법 및 정책 개발비 지출 증빙 자료 공개 특별페이지(링크)
취재 : 문준영, 김새봄, 강현석, 박중석
데이터 : 최윤원
데이터 시각화 : 임송이
촬영 : 최형석, 김남범, 오준식, 신영철
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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