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공작 정치의 부활?

2013년 09월 17일 09시 02분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감찰지시로 채동욱 총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그 파장이 갈수록 커져 가고 있다.

검찰 내부는 물론 법조계에서는 법무부의 감찰 지시가 사상 초유의 일일 뿐만 아니라 채 총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부당한 압력이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보도로부터 법무부의 감찰지시, 그리고 검찰총장의 사퇴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청와대가 치밀하게 기획했다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검찰 내부의 제보라며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조선일보 기사가 사정당국이 아니면 알기 힘든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됐다는 점에서 국정원 사건 처리에 있어 현 정권에 눈엣가시 같았던 검찰총장을 끌어내리기 위한 작업이 이뤄졌다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보기관이 개인의 사생활을 파헤치고, 일부 언론에 흘려 여론재판을 받게 한 뒤 물러나게 압력을 가하는 전형적인 공작정치가 부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검 중수부장 시절 채동욱 총장을 휘하에 두었던 박영수 변호사(전 서울고검장)는 이석기 사건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사건 같은 큰 사건을 수사해야 하는 검찰에게 총장의 사퇴는 큰 타격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검찰의 독립은 권력과의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국가 최고 사정기관의 수장마저 공작정치의 희생양이 된 게 사실이라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앵커 멘트>
지난 9월 6일 조선일보가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혼외 아들이 있다고 보도한 뒤 채총장은 정정보도 소송을 내면서 유전자 검사를 받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어느 쪽이 진실인지 결국 밝혀지겠구나, 하는 순간 황기환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감찰하라고 지시했고 채총장은 사퇴했습니다.

감찰로는 유전자 검사를 할 수도 없고 진실을 밝힐 수 없는데도 왜 황장관은 검찰총장을 압박한 것일까요?

최기훈 기자가 보도합니다.

<최기훈 기자>
지난 9월 6일. 조선일보는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혼외 아들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아들을 얻은 사실을 숨겨온 것으로 밝혀졌다, Y씨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았다, 표현도 단정적입니다.

채동욱 총장은 같은 날 보도의 저의와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밝히고 검찰 내부통신망에 보도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검찰을 흔드는 일체의 시도에 대해 국건히 대처하겠다는 글을 올립니다. 사흘 뒤에는 조선일보에 정정 보도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9월 12일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내겠다고 밝히고 유전자 감식도 빠른 시일 내에 받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첫 날의 단정적 보도 태도와는 달리 조선일보는 채총장에게 사실확인에 나설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다음 날인 13일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해 감찰을 지시합니다. 사상 유래 없는 갑작스러운 조치에 채총장은 바로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박영수 변호사 / 전 서울고검장]
“이건 총장의 직무상 비리는 아니죠. 그런 정도의 사생활을 가지고 전례 없던 장관급 인사, 더군다나 그 검찰총장이라는 그 기관의 장을 법무부가 감찰 할 수 있냐는.. 우리 대통령이 뭐 청와대의 공직기강팀을 통해서 진상을 확인한다는 거면 이해가 가지만 그쵸?”

대검찰청의 박은재 미래기획단장도 검찰 내부통신망에 지극히 당연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도대체 어떤 방식의 감찰로 실체를 규명하려고 했냐며 감찰로는 유전자감식과 임모 여인의 진술확보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조상철 법무부 대변인]
“구체적인 건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저기(감찰관실)서 뭐 방안을 강구하겠지요. 이것 저것.”

[최강욱 변호사]
“이게 정말로 내보내기 위한 수순이 아니고 또 감찰조사를 계속하기 위한 거였다면 어제 그제 법무부가 보인 혼선들이 있어선 안 될 일이죠. 그러니까 감찰관도 해외 나가서 없고, 감찰관 바로 밑에 있는 과장급 담당관들도 모르는 상황에서 장관이 그냥 대변인 불러서 ‘내가 결정한 거야 발표해’ 이렇게 했다는 거 아닙니까? 이게 정상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놓고 볼 때 검찰 구성원들은 정말로 이거는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거짓말을 해도 어느 정도지.”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여야 대표와의 회담에서 법무부장관의 감찰은 진상규명을 위해 정당한 조치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지난 3월 김학의 전법무부차관의 성접대 의혹사건 때 법무부가 김 전 차관의 입장을 두둔했던 것과 상반된 것입니다.

[최강욱 변호사]
“청와대의 설명처럼 이것이 진상규명을 위한 일이었다면 이게 이렇게 갈 일이 아니죠. 애초에 김학의씨 때는 어떻게 했어요. 그거는 정식으로 수사가 이뤄진 건데도 김학의씨를 감싸는데 급급했었는데 이번 건 같은 경우에도 총장이 자기가 자발적으로 유전자검사도 다 받겠다고 하는 상황 아니었습니까? 그러면 청와대라고 하는 곳이 우리는 검찰의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까 진상이 규명되는 과정을 지켜보겠다. 그리고 당사자가 납득할 만한 절차를 통해서 해명을 하겠다고 하니 그걸 보겠다고 한다거나 아니면 원칙에 입각해서 의혹을 제기한 쪽에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청와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할 생각이 없다. 이게 정상이잖아요.”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예비검증 청문회에서 자신과 최태민 목사의 소문에 대해 천벌을 받을 네거티브 공세라고 일축한 바 있습니다.

[박근혜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
“만약에 그 애가, 누가 있다 하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면 그 애를 데리고 와도 좋습니다. 제가 DNA 검사도 다 해주겠어요. 근데 문제는 뭐냐하면 멀쩡하게 사는 애를 어디가 있다 그래갖고 만약에 그 애를 지목을 해가지고 뭐 이게 누구의 자손이 아니니 어쩌니 하면 그 아이나 그 부모한테는 그게 얼마나 날벼락 같은 얘기입니까. 그거야말로 천륜을 끊는 일인데. 아무리 남을 음해하기 위해서 지어내는 얘기라도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채동욱 총장의 경우도 혼외 자녀 의혹에 대해 DNA 감식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런데도 감찰이라는 수단까지 동원해 그를 검찰총장 자리에서 사실상 끌어내린 배경에는 국정원 댓글 의혹사건이 있었다는 게 중론입니다.

[최강욱 변호사]
“지금 채동욱 총장 같은 경우에는 자기들 스스로도 이명박정부가 임명한 총장이지, 뭐 우리가 시킨 거냐, 하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했었고.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는데 이게 자기들 뜻대로 컨트롤이 안 되니까 이거는 정리를 해야 되겠다. 그 전조로서 민정수석부터 쭉 교체가 됐고 그 후과로 총장까지 날린 거 아니냐.”

정치권과 검찰 내부에서도 이 같은 채동욱 기획축출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습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8월 한 달 간 민정수석실이 채총장을 사찰했고 이중의 민정비서관과 서울지검 김광수 공안2부장이 자주 통화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국정원 사건 특별수사팀이 이복현 검사도 청와대의 개입의혹을 내부통신망에 올리며 수사 외압과 총장음해는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상희 건국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임기 보장되는 검찰총장이라도 정권의 정책방향이 맞지 않아 경우에 따라서는 검찰총장을 경질할 필요성도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렇게 경질하려면 공개적으로 청와대나 책임 있는 곳에서 당신 이러이러한 부분에서 문제가 있으니 물러나시오, 한다던지. 뒤로 검찰총장이란 개인이 사생활을 파헤치고 그것도 공식화하지 않고 일부 언론을 통해 흘려내고 순간적인 여론재판을 하게 만들고 검찰총장을 물러나게 만드는 전형적인 공작정치의 모습을 보여줬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채동욱 검찰총장 사태는 박근혜 정부 초기 공직사회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한상희 건국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국의 모든 공무원에게 법관이든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든 9급 공무원이든 모든 공무원에게 당신들의 사생활은 우리가 다 지켜보고 있다. 과거의 잘못은 우리가 다 알기 때문에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그런 암시를 주는 것이 아닌가. 모든 공무원들이 관료로서의 전문성, 독립성을 가지고 일하기보다는 정치권력의 요구에 순종하게 만들고.”

또 당장 국정원의 국기문란 의혹사건이 재판과정에서 엄정한 사법적 판단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남아있는 굵직한 공안사건에 대해 검찰이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철저하게 수사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박영수 변호사 전 서울고검장]
“검찰이 큰 어마어마한 사건 두 개가 지금 있잖아요? 하나가 이석기라는 사람 사건이고, 이것은 앞으로 대한민국 사상논쟁에, 이념논쟁에 큰 획을 그을 수 있는 사건이란 말이에요. 그죠? 하나는 NLL 국가 안보와 관련된 그걸 앞에다 두고 검찰이 지금 이것(총장건)을 하루아침에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닌데 검찰이란 배가 흔들리고 있으면 국가가 불안해지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뉴스타파 최기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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