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동네’를 기획하게 된 배경에는 개인적인 몇 가지 경험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당시 권력은 전 사회적 구조조정에 나섰는데 그중 공기업 민영화는 사활이 걸린 일처럼 매우 열심이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로 충청북도 옥천에 있던 조폐공사 공장을 경상북도 경산에 있는 공장으로 통폐합시키는 일이 있었는데요. 노동조합은 저항했고 싸움은 졌습니다. 옥천에서 일하고 있던 노동자들은 순식간에 생소한 곳으로 이주해 일해야 했습니다. 훗날 이 일은 구조조정을 빌미로 노동조합을 순치시키기 위한 공격의 일환이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어느 검사가 낮술 한 후에 기자들에게 치적을 자랑하다 들통이 났었지요. 이른바 ‘조폐공사 노동조합 파업유도 사건’. 저는 이 사건을 다루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옥천에 처음 가봤습니다. 모든 사람이 떠난 후, 4년이 지났는데도 팔리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던 빈 공장을 촬영했었습니다. 젊은 시절, 하나의 공동체가 삭제된 후에 보여줄 수 있는 ‘적막함’의 대표적 풍경으로 저의 기억에 남아 있던 곳. 옥천이었습니다.
1998년 12월. 조폐공사 옥천창을 폐쇄하기 위해 기계를 반출하고 있다.
그리고 대략 십 년 후, 저는 장편 다큐멘터리 ‘슬기로운 해법’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언론에 관한 다큐멘터리였고 나름 대안을 찾는 고민을 하던 중 대표적 지역 언론으로서 ‘옥천신문’에 대해 취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언론의 ‘불편부당하게’라는 신화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편이 되어줄 미디어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구현하고 접촉할 수 있게 하는 현재의 미디어는 ‘지역 언론’이라고 봤습니다. 옥천신문은 거기에 맞게 자신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사정과 무능력에 옥천신문, 지역 언론에 대한 단락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능력과 열정이 소진되는 그 나이대에 걸맞게, 체념과 포기가 늘었고 그 흔적이 남아 있던 곳이었습니다. 옥천은….
'슬기로운 해법'(2014)
또다시 거의 십 년이 흘렀습니다. 옥천의 ‘옥천신문’은 흔들리지 않고 그 동네에서 원을 점점 크게 그려갔습니다. 단지 좋은 미디어, 착한 언론으로만 부를 수 없는 느리지만 끊임없이 재생하고 성장하는 지역 운동의 화수분 같은 곳이 되어 있었습니다. 20년 전, 사라지고 떠난 빈 곳의 풍경으로 가득 찼던 옥천. 지역 언론으로서 옥천에서 강력한 힘을 구축했던 10년 전의 옥천신문. 이 옥천과 옥천신문은 켜켜이 쌓인 시간의 힘으로 옥천 주민들의 든든한 툇마루가 되어 있었습니다. 주민 모두에게 언제나 열려 있으며 서로를 연결하고 잠시 쉬게 하는 그런 공간으로 말입니다.
물론 옥천신문도 대한민국 지역의 변화 앞에 힘든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인구는 멈추지 않고 감소하여 5만 명이 무너졌고 한때 4,000명대의 구독자는 지금 2,900명대로 떨어졌습니다. 구독자가 돌아가실 때마다 옥천신문의 식구들은 매우 힘들다고 합니다. 왜 안 그럴까요. 향우회, 동창회 사소한 행사 하나도 주민이 원하면 정성스레 지면을 내주었던 옥천신문이었으니까요. 우리 사회는 또 이런 현상을 ‘소멸’이라는 폭력적인 딱지를 붙여 놓고는 누군가 해결해 줘야 하는 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일반화, 획일화에 젖어 든 대한민국의 습성은 쉽게 고쳐지지 않네요. 작은 지역의 언론이 담당하기에는 벅찬 현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 진행하는 옥천신문 편집회의
하지만 옥천은 고등학생이든 동네 이장이든 누구나 쉽고 당연하게 ‘민주주의’를 말하고 이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동네입니다. 거침없이 지역 권력자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말할 수 있고 어려운 곳이 없는지 심심치 않게 돌아보는 성숙한 시민들이 사는 참 괜찮은 동네가 되었습니다. 1989년부터. 지역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듯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 왔던 옥천신문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요? 묻게 됩니다.
이번 작업은 ‘지역언론’인 ‘옥천신문’의 성과를 매끄럽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의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어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옥천신문 만이 아니라 옥천이라는 공간도 주인공이 되길 바랐습니다. 또한 ‘옥천신문’ 젊은 기자들이 자신의 노동을 조금 떨어져 바라보길 원했습니다. ‘신문’을 만들기 위해 옥천신문 식구들만이 아니라 많은 분의 수고로운 노동이 함께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느끼길 바랐습니다. 아름다운 옥천의 일부가 되어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이 작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시민들에게도 당부드리고 싶은 부분입니다. 열정 가득 선명한 다큐멘터리도 좋지만 가끔은 자기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다큐멘터리도 필요할 텐데... 이 다큐멘터리가 그 역할을 조금은 수행했기를 바랍니다. ‘참 괜찮은 동네’가 여러분의 동네도 괜찮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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