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제목에서는 길게 쓸 수 없었지만 ‘한명숙 사건’이 아니라 한명숙 사건 과정에서 벌어진 '검사의 모해위증교사 의혹’이다. 이 의혹을 다룬 2020년 뉴스타파의 연속 보도(죄수와 검사Ⅱ: 한명숙)에 대한 반응은 극단적이었다. 한쪽에서는 “한명숙은 무죄”를 외쳤고, 다른 쪽에서는 “대법에서 유죄가 확정된 한명숙 구하기 프로젝트”라고 비난했다. 양쪽 모두 불편했다. 정치인 한명숙의 유무죄는 애초에 우리의 관심이 아니었다. 사건의 수사 기소 과정에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실에서 벌어진 '해괴한 일'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오늘(7월 14일) 열린 ‘한 전 총리 사건 법무부 대검 합동감찰 결과 브리핑’은 뉴스타파 보도의 공식적인 마무리다. 올해 초 검찰 내부에서 검사의 모해위증교사를 밝혀 기소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무산됐다. 3월 22일 사건 관련자에 대한 모든 공소시효가 완성되면서 수사나 기소는 불가능해졌다. 물론 검사에 대한 징계시효도 한참 지났다.
이후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법무부와 대검의 합동감찰을 지시했다. 수사가 아닌 감찰은 일정한 한계가 노정될 수밖에 없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박범계 장관도 오늘 브리핑에서 “누구를 벌주고 징계하려는 합동감찰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실 관계에 대한 규명보다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는 뜻이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절도 사건이 벌어져 조사를 벌였는데 누가 도둑질을 했는지 밝히지 않고 앞으로 무인경비장치를 달겠다고 발표를 하는 꼴이다.
예상대로 발표된 결과는 뉴스타파가 제기한 의혹 중 일부를 다시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가장 핵심적인 의혹에 대한 결론은 빠져있었다. 검사의 모해위증교사 의혹에 대한 명확한 결론이 합동감찰 결과에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 넉 달의 감찰 기간 동안 법무부와 대검은 4번의 회의를 거쳤다고 했다. 양쪽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실만 발표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발표의 행간에는 한명숙 사건 처리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불편한 사실들이 군데군데 숨어있었다.
▲ '한 전 총리 사건 법무부 검찰 합동감찰 결과 브리핑'을 진행하는 박범계 법무부장관.
검찰이 장기간 훈련시킨 한명숙 사건 증인들
합동감찰은 한명숙 사건 공판 과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재소자(혹은 재소자 출신)들이 검사실에서 강도 높은 증언 연습을 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적시했다. 4명의 증인들이 검사실에 불려간 횟수는 100여 차례였다. 증인 김 씨는 출소한 이후에도 기록을 남기지 않고 적어도 2회 이상 검사실을 몰래 드나들었다. 새벽까지 연습이 진행될 때도 있었다. 검찰은 이 같은 사전 증인 조사 내용을 기록으로 전혀 남기지 않았다. (관련기사 : <한명숙 사건, 검사실 '증언 연습' 확인됐다> 뉴스타파 2021.2.2.)
검사는 증인들에게 부적절한 편의를 제공했다. 검사실에서 외부인과 자유롭게 만났고, 전화 통화를 했다. 특히 증인의 가족 중 수감된 사람을 시설이 양호한 서울구치소로 이감해 주기도 했다는 발표 내용은 오늘 처음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 발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증인들이 검사실에서 고가의 외부 음식을 배달해 먹었다는 뉴스타파의 보도에 대해서는 검찰이 이미 인정한 바 있다.
▲ 검찰은 증인 김 씨와 최 씨, 그리고 죄수H를 증언을 앞두고 수십 차례 검사실에 부른다.
이 같은 훈련과 연습으로 실제 위증이 이뤄졌는지가 뉴스타파가 제기한 의혹의 핵심이었다. ‘죄수H’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을 포함한 3명의 예비 증인들이 검사가 써주는 대로 외우며 증언을 연습했다고 폭로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연습은 했지만 사실대로 간략하게 하는 연습을 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합동감찰은 이 같은 검사의 위증교사 의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증언 연습이 부적절했으며 이 때문에 증인의 기억이 오염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고만 밝혔다. (관련기사 : <검찰의 '삼인성호'작전...모해위증교사> 뉴스타파 2020.5.25.)
합동감찰은 향후 검사의 증인 사전 접촉을 최소화하고, 검사 증인을 사전에 만나면 면담 내용을 기록해 보존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합동감찰이 소개한 영국 왕립검찰청 증인 사전 면담 실행 지침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증인을 훈련, 연습 또는 코치하거나, 증인의 증거를 오염시킬 수 있는 질문을 해서는 안되며, 전체적인 음성녹음이 이뤄져야 한다”고 적혀 있다.
검찰은 '검사에 대한 수사'를 어떻게 방해했나
2020년 9월 임은정 검사(대검 감찰정책연구관)는 한명숙 사건 재판에 등장한 증인 김 모 씨가 모해위증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증인의 위증이 입증되면 검사가 위증을 교사했는지 여부를 수사할 수 있었다. 올해 2월 수사권을 부여 받은 임 검사는 김 씨를 입건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주임검사로 임 검사가 아닌 감찰3과장을 지정했다. 이후 대검은 공소시효를 3일 앞두고 김 씨를 무혐의 처리했다. 합동감찰은 이 같은 일련의 과정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라는 의혹을 자초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앞으로 사건 배당의 기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2010년 검찰은 한명숙 전 총리를 두 번 기소했다. 곽영욱 사건은 뇌물을 줬다고 진술 했던 증인 곽영욱이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으면서 실패했다. 한만호 사건도 마찬가지로 흘러갔다. 한만호가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은 뒤 검찰은 한만호의 동료 죄수들을 검사실에 불러 증언을 연습시켰다. 편의를 제공했다. 그럼에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하지만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혔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당시 검사실에서 증언 연습을 했던 죄수H는 2020년 뉴스타파를 통해 검사가 위증을 훈련시켰다고 폭로했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증인 최 모 씨는 법무부에 “사건이 날조됐다”고 진정했다. 과거 검사의 비위 의혹에 대해 다른 검사, 임은정이 수사를 개시했다. 더 힘이 센 검사 윤석열은 사건을 또 다른 검사에게 넘겼다. 그리고 사건은 종결됐다.
▲ 뉴스타파는 2018년부터 보도한 <죄수와 검사> 시리즈를 책으로 묶어 출판했다. 한명숙 사건은 이 책 4장에 자세히 기술돼 있다.
검찰청 하수구는 결국 열지 못했다
나는 뉴스타파의 보도를 정리한 책 <죄수와 검사>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2020년 뉴스타파 보도 이후 대검 감찰이 시작됐다. 정식 수사가 아니라 감찰이 진행된 이유와 과정은 앞에서 언급했다. 조사 주체를 놓고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이 충돌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검 감찰부가 감찰을 시작했지만 역시나 지지부진했다. 조사에 필요한 적정한 인력은 배치되지 않았다. 수사권도 없는 검사 한 명이 모든 것을 담당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한명숙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치도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검찰이 죽고 사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위증교사가 법적으로 확인된다면 검찰이 받게 될 타격은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검찰청에서 가장 악취가 심한 하수구를 여는 일이었다. 이 하수구에는 검찰이라는 신성가족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엘리트 특수통들의 발자국이 가득할 가능성이 컸다. 담당 검사 임은정은 자신이 맡은 일을 ‘검찰에서 저주 받을 조사’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결국 임은정도, 법무부 대검 합동 감찰도 검찰청의 가장 악취가 심한 하수구를 열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