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를 줄여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세계적인 금융회사들도 석탄화력 발전에 대한 신규 투자를 중단한지 오래다.
그러나 한국은 이같은 세계적 추세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강원도 강릉과 삼척, 충남 서천, 경남 고성에 7기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새로 짓고 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그린피스, 국회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실이 공동으로 발간한 ‘2020 한국 석탄금융 백서’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올해 6월까지 한국 금융기관이 국내외 석탄화력 발전에 제공한 금융 규모는 60조 원에 육박했다.
전체의 63%인 37.4조 원은 민간 금융회사가 조달했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공적 금융기관은 22.2조 원을 지원했다. 프로젝트 담보대출이 16조 원, 회사채 인수 25.3조 원, 보험 제공이 18.2조 원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양이원영 의원은 “그동안 석탄화력발전 투자는 손해보지 않는 시장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라고 말했다.
삼척석탄화력발전소, 발전소 가동률 85% 과다예측… 손실 불가피
그러나 석탄 금융의 앞날은 결코 장밋빛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올해 3분기 기준 공정률이 35%대인 삼척석탄화력발전소는 예정대로라면 2025년부터 정상가동을 시작한다.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지금이라도 발전소 공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한다. 석탄화력발전소가 내뿜는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때문이다.
환경문제를 떠나 삼척석탄화력발전소는 경제성에도 중대한 문제가 있다. 산업은행은 5조 원에 육박하는 건설비 중 3조9천억 원에 대한 금융을 주선했다. 산업은행은 2025년부터 2044년까지 투자 원금에 연 4.2%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며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문제는 산업은행이 예측한 발전소 가동률이 지나치게 장밋빛이라는 점이다. 산은은 2025년부터 2044년까지 삼척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률이 평균 85%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석탄화력발전소의 평균 가동률은 71%에 불과했다.
앞으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계획대로 이행된다면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률은 더 떨어질 전망이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이행계획에 따르면 2019년 6.5%이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30년에 20%까지 늘어난다.
에너지정책 연구기관인 넥스트가 국가정책보고서를 기반으로 석탄화력 발전소의 가동률을 분석한 결과, 석탄화력 발전소 상위 30%의 가동률이 2035년 60%, 2040년 36.6%, 2050년 22.5% 로 축소될 것으로 예측했다.
에너지정책 연구기관인 넥스트가 2030 온실가스 감축로드맵과 2050 장기저탄소 발전전략 등 국가정책 보고서를 기반으로 가동률을 예측한 결과, 석탄화력 발전소 상위 30%의 가동률이 2030년 79.4%, 2035년에는 60%로 낮아질 것으로 분석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에 온실가스의 순배출량을 0으로 맞추는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에따라 앞으로 석탄화력발전소의 인위적인 감축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경우 삼척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률은 넥스트가 분석한 결과보다 더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발전소 가동율이 줄어들면 수익은 당연히 악화된다. 넥스트는 삼척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율 하락에 따른 손실을 입지 않으려면 전력 시장가격이 2030년에는 1킬로와트시당 81.5원, 2040년에는 127.3원 이상 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전력 시장가격이 이만큼 올라갈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송용현 넥스트 이사는 “유가 변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요인들은 전력 시장가격이 하락하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어 1킬로와트시당 100원을 넘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임에도 금융회사들이 석탄발전 투자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총괄원가보상제도라는 안전판 때문이다. 총괄원가보상제도는 한 마디로 발전소의 건설비와 운영비, 투자이익까지 모두 보전해 주는 제도다. 즉 투자자 입장에서는 절대 손해나지 않는 장사나 마찬가지지만 과잉 설비와 운영부실 등에 따른 손실은 전기를 소비하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미 석탄화력발전소가 발전소를 짓기만 하면 무조건 돈을 버는 상황은 바뀌고 있다. 석탄화력발전소의 마진은 유가하락의 영향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한국동서발전을 포함한 5개 발전 공기업들은 지난달 9일 전력거래소에 전력시장운영규칙 개정을 제안했다. 전력거래소는 발전소의 총괄원가에 맞춰 정산조정계수를 조정해 전력 판매대금을 정산하는 방식으로 발전사업자에게 이득을 챙겨줘왔다. 정산조정계수의 범위는 0에서 1이고, 최대값은 1을 넘을 수 없다. 그러나 올해 6월 이후 석탄화력발전소의 평균 정산조정계수는 최대값인 1에 도달해 석탄화력발전소가 손실이 날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발전 공기업들은 올해 상반기에 적용했던 정산조정계수를 상향해 소급 적용하는 방식으로 전력 판매대금을 인상해 줄 것을 요구했다. 전력거래소는 지난달 27일 발전 공기업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KB증권은 올해 상반기 발전 공기업에게 적용한 평균 0.75의 정산조정계수를 1로 상향해 소급 적용할 경우 올해 별도 기준 한국전력의 연간 영업이익은 7717억 원, 당기순이익은 5595억 원이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산조정계수를 상향한다는 뜻은 결국 한전이 발전 자회사에게 지불하는 전력대금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이다. 비단 한전의 수익이 줄어드는데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전기 요금 상승으로 이어진다.
다시말하면 석탄화력발전사들이 총괄원가보상으로 손실을 보전받는 만큼 국민의 전기료 부담은 커진다는 뜻이다.
국내외 경제전문가… 석탄화력발전소 투자 계속될 경우 ‘전환리스크’에 직면 위험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은 석탄화력발전소에 지금이라도 투자를 멈추지 않으면 미래에 노출될 전환 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루이즈 아와즈 페레이라 다실바 국제결제은행 부행장은 뉴스타파와의 화상인터뷰에서 “기후위기 시대에는 석탄 비용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에너지 수요를 친환경으로 변화시켜나가야 한다”면서 “금융도 환경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활동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탈탄소 사회로 바뀌는 과정에서 정책 변화와 기술변화, 소비자 인식의 변화 등을 겪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석탄에 자산을 많이 갖고 있는 기업들은 견딜 수가 없고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북유럽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인 노르디아자산운용은 지난 10월 한전과 삼성물산에 석탄 투자 금지를 권유하는 서한을 보냈다. 에릭 페데르센 노르디아자산운용 책임투자부문장은 뉴스타파와의 화상인터뷰에서 “베트남 붕앙2호기 프로젝트가 재정적으로 재앙 수준이 될 확률이 높다”며 “전세계가 지금과 같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고수한다면 석탄화력발전소는 투자 원금을 회수하는 시점까지 운영하도록 두지 않을것”이라고 경고했다.
민간 금융회사에도 석탄발전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9월 KB금융그룹을 시작으로 신한금융그룹과 NH농협은행이 잇따라 탈석탄 금융을 선언했다. 석탄화력발전에 투자한 금액이 가장 많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도 최근 탈석탄 대열에 동참했다.
하지만 공적금융기관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뉴스타파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공적금융 기관의 석탄화력발전소 프로젝트담보대출 내역을 입수해 살펴본 결과 대출 약정액수는 4조4천억 원에 육박했다. 회사채와 보험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은 투자금이 전환리스크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솔루션 윤세종 변호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해외 석탄 사업에 투자하는 공적금융기관을 운영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면서 “한국이 외국에서 석탄 사업에 투자를 하는 것이 굉장히 이례적인 투자로 평가를 받고 있고, 이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은 "정부가 밝힌 기준에 따라 필요한 경우 석탄화력 발전에 여신지원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이 발전소에 투자하지 않으면 산업은행도 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석탄투자의 늪에서 공적금융기관을 건져내기 위해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이유다.
박형건 UN 녹색기후기금 금융제도 스페셜리스트는 “공적금융의 석탄 투자는 정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달렸다. 석탄사업이 돈이 되지 않도록 하면 금융사들에게 투자를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생태계를 바꿔주는 게 중요하다”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