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 프로젝트] 헌법재판관 사건 뭉개기를 막아라 ③

2022년 12월 21일 14시 00분

정치가 토론하고 타협하는 과정인 것과 달리, 사법은 분석하고 평가해서 나오는 결론이다. 공동체 의사를 정하는 정치가 사법화하는 것이 최선일 수 없는 이유다. 문제는 ‘정치의 사법화’가 21세기 현대 국가의 보편적인 현상이란 데 있다. 거부할 수 없는 현상이라면 정의로운 제도가 되도록 해야 한다. 사법은 우리 공동체의 운명과 개인의 행복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한국 사법제도에 박힌 반헌법적이고 비민주적인 제도를 밝혀내어 바로잡는 <사법개혁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헌법재판관의 사건 미루기와 이를 가능케 하는 주심 재판관 비공개는, 대법원이 모든 주심 대법관을 공개하는 것과 비교하면 금세 부당함을 알 수 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은 1년 동안 4만여 건을 처리하지만,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한 헌법재판관 9명은 1년에 2500건 남짓 처리한다. 이처럼 대법원이 엄청난 업무 부담 속에서도 주심 대법관을 공개하는 이유에는 사건 변질을 막기 위한 노력이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것이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 헌법재판소가 주심을 공개하지 않아 생기는 더 큰 문제는 주심 재판관의 정치적인 노림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는 것이다.

불법‧위법 사건 뭉개기 헌재 주심 재판관 확인

내년 있을 차기 헌법재판소장 임명을 앞두고, 일부 헌법재판관들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미루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차기 헌법재판소장을 노리고 자기가 주심을 맡은 사건을 재판관 평의에 부치지 않고 미룬다는 의혹이다. 이런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뉴스타파는 법정시한을 초과해서도 처리되지 않은 사건의 주심 재판관이 누구인지 헌법재판소에 문의했지만 거부됐다. 그래서 가령 어떤 사건들이 문제가 되는지 ‘헌법재판관 사건 뭉개기를 막아라 ②’에서 소개했다. 국내 거주 재외국민 자녀 보육료 배제 사건은 헌재가 뭉개는 동안 정부가 해결하고 헌재는 800일을 넘겨서야 뒤늦게 선고했다. 정당 가입 경력자 법관 배제 법률 사건은 법정시한인 180일의 3.5배에 이르는 600일을 지나서도 선고되지 않고 있다. 보도 이후 사법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두 사건의 주심 재판관을 확인했다. 보육료 사건의 주심은 2018년 9월 퇴임한 안창호 전 재판관이고, 법관 배제 법률 사건 주심은 2023년 3월 퇴임하는 이선애 재판관이다. 이들 사건의 불법‧위법 처리 이유에 관해 헌법재판소에 문의했지만, 헌법재판소는 답변하지 않았다.
언론에 주로 공개되는 대법원 법정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모두 참여한 사건을 선고하는 대법정(오른쪽)이다. 하지만 99.9% 사건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되는 소부에서 처리하고 소법정(왼쪽)에서 선고한다. 대부분 사건이 처리되는 소부에서 주심 대법관의 영향력은 매우 큰데도, 어쩌면 역할이 크기에 대법원은 주심 대법관을 공개한다. (출처: 대법원)

대법원도 공개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비공개

주심 재판관을 감추는 헌법재판소와 달리 대법원은 주심 대법관을 공개한다. 미제 사건 목록도 공개한다. 따라서 어느 대법관이 사건을 처리하고 있지 않은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앞서 2013년 기자는 대법원에 3년 이상 미제 사건 목록과 주심 대법관을 청구해 받았다. 그 결과 2013년 1월 31일 기준으로 3년 이상 미제는 민사 44건, 형사 19건, 특별 13건 등 모두 76건이었고, 대법관 12명 가운데 양창수 대법관이 34건으로 가장 많았다. 헌법재판소는 주심 재판관 비공개 이유로 재판의 독립성이 침해될 우려를 든다. 하지만 모든 헌법재판 사건은 재판관 9명이 참여해 결론 낸다. 주심 1명이 결과를 좌우하기 어렵다. 대신 주심 재판관은 사건을 평의에 붙이지 않는 방법으로 선고를 미룰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주심 재판관 공개가 필요하다는 게 사법분야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헌법재판소의 비공개 구실은 대법원과 비교해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법원은 1년 동안 4만여 건을 다룬다. 이 가운데 특별히 중요한 20~30건만 대법관 12명 전원과 대법원장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결론낸다. 나머지 대부분 사건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되는 소부(小部)에서 해결한다. 소부가 다루는 사건이 워낙 많다 보니, 주심 대법관의 주장이 많이 반영되는 편이라고 한다. 이렇게 주심 대법관 역할이 큰데도, 어쩌면 역할이 크기에 대법원은 주심 대법관을 공개한다.

뉴스타파, 헌법재판소 상대 행정소송 검토

뉴스타파가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것은, 모든 사건의 주심 재판관 목록도 아니고 헌법재판소법을 어긴 사건과 주심 재판관 목록이다. 헌법재판소법 제38조는 ‘헌법재판소는 심판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종국결정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을 두고 헌법재판소는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훈시조항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효원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재판소법은 심판기간에 대해 ‘선고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를 훈시규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헌법재판소는 헌법과 법률을 준수해야 하며, 헌법재판소법을 위반하는 것은 법치국가의 원리를 위반한 것이다”라고 저서에서 비판했다. 이처럼 180일 심판기간 조항이 훈시규정이 아니라는 견해는 한국을 대표하는 헌법학 원로인 허영 교수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뉴스타파가 헌법재판관 사건 뭉개기를 취재해 보니, 몇몇 재판관의 불법‧위법 사건 미루기가 눈에 띄었다. 이에 뉴스타파는 헌법재판소에 주심 재판관 공개를 다시 청구하고, 그래도 거부된다면 시민들과 함께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검토할 계획이다.
제작진
취재이범준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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