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성향 분석... 6명 중 5명이 '긴급조치는 위헌'

Dec. 17, 2024, 05:49 PM.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을 맡게 될 헌법재판관 6명 중 5명이 ‘유신정권의 긴급조치는 위헌’이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긴급조치는 유신정권 시절, 대통령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 조치로 이번 12·3 내란의 ‘계엄사령부 포고령’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뉴스타파는 오는 27일로 예정된 ‘윤석열 탄핵 심판’ 심리에 앞서 헌법재판관들이 내린 주요 판결을 찾아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긴급조치 등 국가 폭력에 대한 재심 및 배상 판결과 공무원에 대한 징계 처분을 다툰 판결, 국회의원 등 고위 공직자가 연루된 불법 행위에 대한 판결이었다.
분석 결과, 재판관 6명 중 5명이 긴급조치에 대한 정부 잘못을 인정하는 내용의 판결을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긴급조치를 위헌으로 규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2011초기689 등)과 헌법재판소 결정(2010헌바132 등)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대법원은 긴급조치에 대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봤고,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제한에 있어 준수해야 할 목적의 정당성과 방법의 적절성조차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이번 탄핵 심판처럼 공무원의 탄핵 요건을 따지는 재판에선 사안마다 엇갈린 판단이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현 ‘6인 체제’가 일치된 의견으로 탄핵안을 인용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헌법재판관, 성향과 무관하게 ‘긴급조치 위헌’ 판단

헌법재판관 정원은 9명이지만 현재는 ‘6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명한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명한 김형두·정정미·김복형 재판관,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정형식 재판관이 이번 탄핵 심판을 맡는다.
흔히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진보 성향, 김형두·정정미·김복형 재판관은 중도보수 성향, 정형식 재판관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근무 경력과 판례, 지명권자와 소속 연구모임 등이 그 근거다. 판사를 이념 성향에 따라 나눌 수 없다는 반론이 있지만, 이번 탄핵 심판에 전국민적 이목이 집중된만큼 이들 재판관들에 대한 성향 분석은 더 잦아지는 추세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을 맡은 헌법재판관은 현재까지 총 6명이다.
재판관 성향을 진보, 중도보수, 보수로 나눴을 때 가장 눈에 띈 사실은 긴급조치에 관한 사건을 배당받은 모든 재판관이 위헌·위법성을 확고히 인정했다는 것이다. 긴급조치에 관한 한 이념 성향이 판결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보수 성향으로 평가받는 정형식 재판관, 중도보수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형두·김복형 재판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 모두 긴급조치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정형식 재판관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할 당시인 2013년 7월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기소돼 복역한 ‘시국사범’들에게 잇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정형식 재판관이 무죄를 선고한 '시국사범' 중 한 명이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이었다.(서울고법 2011재노1, 서울고법 2011재노60 등)
판결문에는 당시 재판장인 정형식 재판관의 ‘직권 판단’이 적혀 있다. 그는 긴급조치에 대해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며 “국가긴급권은 국가가 중대한 위기에 처했을 때 필수불가결한 최소의 한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하는데, 긴급조치가 발령될 당시의 상황이 비상사태로서 국가의 중대한 위기상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헌법이 규정한 요건 자체를 결여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김형두·김복형 재판관도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인정한 판결을 남겼다. 김형두 재판관은 지난 2020년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국가배상권을 부정한 판결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서울고법 2019나2038473)
판결문을 보면, 김형두 재판관은 “(긴급조치가)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였고, 죄형법정주의와 영장주의에도 반하여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극도로 침해하는 등 그 침해의 정도가 매우 심각하였다”고 판단했다. 또 “긴급조치의 선포와 그에 따른 수사 및 재판, 형의 집행 등 일련의 국가작용에 있어 불법성의 핵심은 긴급조치 자체에 있다”고도 밝혔다. 아울러 “유신헌법에 기초하더라도 명백히 위헌적인 내용의 긴급조치 발령과 그에 따른 공무집행행위가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위법하다는 판단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김복형 재판관도 지난 2018년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에 대해 재심을 개시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문에는 “긴급조치가 당초부터 위헌·무효”라는 판단과 “현행 헌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헌·무효임이 분명하다”는 판결 이유가 적혀 있다. (서울고법 춘천 2017재노9)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하던 지난 2020년 ‘국가배상법 위헌 소송’에서 긴급조치의 위헌성과 불법성을 명시한 판결을 남겼다. 해당 소송은 ‘공무원의 고의·과실에 의한 불법행위가 있을 경우’에만 국가배상권을 인정하도록 한 현행 국가배상법이 위헌인지 여부가 쟁점이었는데 재판관 8명 중 5명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 2016헌바55)
반면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합헌 결정에 대한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이들은 “긴급조치를 통한 국가의 의도적·적극적 불법행위는 일반적인 국가의 불법행위에 비하여 그 위법성의 정도나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이는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는 존재인 국가가 자신의 존재론적 의미를 망각한 채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국가의 본질을 거스르는 행위이자 헌법가치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긴급조치는 “국가의 본질에 배반하는 성격을 가진 불법행위”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위와 같이 6명의 헌법재판관 중 5명은 관련 판결에서 모두 긴급조치를 위헌이라고 봤다. 5명을 제외한 마지막 1명, 즉 정정미 재판관은 판결에서 긴급조치를 다룬 적이 없다. 
헌법재판관 6명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심판 2회 변론을 위해 자리에 착석해 있다.
이렇듯 긴급조치를 다룬 적이 있는 헌법재판관 전원이 모든 판결에서 위헌성을 거듭 인정한 사실은 이번 탄핵 심판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비상계엄을 긴급조치와 같은 ‘국가긴급권’ 행사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이런 전망에 힘을 싣는다.

정형식 재판관 "국회 표결 방해 행위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어"

윤 대통령은 자신의 비상계엄 선포를 ‘합법적 통치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 계엄군을 투입해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한 행위는 법치주의 원칙을 훼손한 것이란 평가가 훨씬 우세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지난 13일 “통치행위도 사법심사를 받는다”며 “비상계엄은 기본권과 법치주의를 침해한 위헌·위법 행위”라는 법률 해석을 내놨다.
심지어 윤 대통령이 지명한 정형식 재판관도 국회 표결을 방해한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되거나 합리화될 수 없다”는 판결을 남겼다. 지난 2013년 ‘국회 최루탄 투척 사건’의 2심 재판에서다. (서울고법 2013노1028)
당시 정형식 재판관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김선동 의원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국회의원이 폭력을 행사하여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국민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라고 질책했다. 또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다수결의 원칙이 폭력적인 방법에 의해 손쉽게 무력화된다면 대의제 민주주의는 그 존재 기반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무장계엄군을 투입해 국회 활동을 마비시킨 윤 대통령에겐 더욱 무거운 법 적용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형식 재판관은 이번 탄핵 심판의 주심 재판관으로 지정됐다.

‘유우성 보복 기소’ 안동완 검사 탄핵 심판서는 엇갈린 판단

헌법재판소 판례에 의하면 공무원에 대한 탄핵은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반이 있는 경우’에 결정할 수 있다. 탄핵은 헌법질서를 회복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제도이기도 하다. (2023헌나1)
헌법재판관 정원은 9명이지만 현재는 ‘6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앞선 긴급조치 판례에서 보듯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반헙법적인 위법 행위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물론 극히 낮은 확률로 탄핵소추가 기각될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이때 일부 재판관이 ‘법 위반은 맞지만 파면을 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지난 5월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 씨에 대한 ‘보복 기소’ 의혹으로 탄핵소추된 안동완 검사의 탄핵 심판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일부 재판관(이종석 헌재소장·이은애 재판관, 현재 퇴임)은 “안동완 검사가 불합리한 공소 제기로 검찰청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면서도 “공소권을 남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탄핵 기각 결정을 내렸다. 중대한 법 위반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 사건에서 정형식 재판관과 김형두 재판관은 한 발 더 나아가 안 검사가 어떤 법률도 위반하지 않았다고 봤다. 안 검사의 기소는 형사소송법이 부여한 재량권 범위 내에 있으며, 더 경미한 범행을 저지른 다른 피의자도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으므로 검찰청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였다. 나아가 이 사건 공소 제기 당시엔 ‘보복 기소’로 처벌된 다른 선례가 없었기 때문에 검사가 나름대로 신중을 다하여 공소 제기한 것이란 판결 내용을 덧붙였다.
반면 중도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정정미 재판관은 문형배·이미선 재판관과 함께 탄핵 찬성 의견을 냈다. 안 검사가 자의적으로 공소권을 행사해 유 씨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을 가한 건 증거 위조 사건과 단절해서 생각할 수 없고, 형사소추의 공정성을 해치는 등 공익실현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본 것이다. 또한 “유 씨에 대한 공소제기로 침해된 헌법질서를 회복하고, 더는 검사에 의한 헌법 위반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엄중히 경고할 필요가 있다”고도 역설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재판관 5(기각) 대 4(인용) 의견으로 기각이 확정됐다. 현재 재직 중인 재판관을 중심으로 다시 정리하면 정형식·김형두 재판관은 기각, 정정미·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인용이었다. 

이상민 장관, 이정섭 검사 탄핵 심판에서는 모두 '기각'

안 검사에 대한 탄핵 심판과 달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이정섭 검사에 대한 탄핵 심판에선 재판관 모두 일치된 의견을 보였다. 이상민 전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에선 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 재판관이 기각 의견을, 이정섭 검사에 대한 탄핵 심판에서도 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정형식 재판관이 모두 기각 의견을 냈다. 김복형 재판관은 지난 9월 헌법재판관에 임명됐으므로 이들 심판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김복형 재판관의 경우 지난 2020년 서울고등법원에서 맡은 공무원 해임 처분 취소 소송이 단서가 될 수 있다.  당시 김복형 재판관은 공립학교 교원이 제기한 해임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 즉 ‘해임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춘천 2020누89)
판결문을 보면, 원고인 교원은 ‘알콜 의존증후군’ 진단을 받은 환자로 주취 상태로 출근하여 동료 교직원들의 업무를 방해하거나 학생들의 성적 순위를 뒤바꿔 해임 처분됐다. 이에 대해 원고는 징계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며 해임이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김복형 재판관은 “교원사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 제고 및 학생들의 교육을 받을 권리 강화 등 공익에 비하여 원고가 입게 될 불이익이 더 크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따라서 이번 탄핵 심판 때도 대통령 파면으로 얻게 될 공익이 윤석열 개인의 불이익보다 더 크다면, 탄핵소추안 인용에 찬성할 가능성이 있다.

국힘과 윤석열의 '법기술', 얼마나 통할까

변수는 역시 현 6인 체제라는 헌법재판소 구성의 한계와 법률가 출신인 ‘윤석열’의 ‘법기술’을 활용한 재판 대응이다. 이미 국민의힘은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며 국회 몫으로 추천된 헌법재판관이 탄핵 심판에 참여할 수 없도록 사실상 ‘방해 전략’을 펴고 있다. 만약, 국회 몫으로 추천된 헌법재판관 3인이 탄핵 심판에 합류할 경우, 헌법재판소는 ‘9인 체제’를 갖춰 안정적인 심리와 함께 탄핵 인용에 더 용이한 구성을 갖게 된다.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헌법재판소를 활용한 적이 있다. 그는 검찰총장 재직 당시 판사 사찰 등의 이유로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자 “법무부가 징계위원을 선정한 게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헌법소원은 사실이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많은 언론에 의해 사실인 것처럼 보도됐다.
그러나 이 소송은 ‘원고 윤석열이 기본권을 침해당했다고 볼 수 없으며,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이때 유일하게 “원고 윤석열이 기본권을 침해당했다”고 소수 의견을 낸 재판관이 이선애 재판관(현재 퇴임)이다. 이선애 재판관은 지난 2017년 황교안 국무총리가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인사권을 행사해 임명했다. 이 같은 전례에 비춰 한덕수 국무총리도 헌법재판관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할 사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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