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감독과 탐사기자, '두 독립'의 만남

2019년 04월 05일 13시 13분

문정현 독립다큐감독님께

KBS를 거쳐 뉴스타파까지 19년 째 기자로만 일해 온 저에게 독립다큐는 어색한 미지의 영역입니다.  4년 전부터 뉴스타파에서 <목격자들> 협업 에디터 업무를 맡고 있지만 독립다큐의 문법에는 좀처럼 익숙하지 않습니다. 건조한 스트레이트 기사를 작성하는 습성이 몸에 배인 탓도 있을 겁니다.

지난해 감독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감독님은 1년 넘게 성수동 수제화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현실을 기록 중이었습니다. 공모(公募)라는 인연(因緣)을 통해 감독님의 영상기록은 <목격자들>에 방송할 수 있었습니다. <성수동 족쟁이들>이었습니다.

▲ 지난해 9월 방송된 <성수동 족쟁이들>의 한 장면
  • 박중석 기자 : 지난 해 뉴스타파와 <성수동 ‘족쟁이들’>편을 협업했는데 어땠나요?
  • 문정현 감독 :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들은 소수가 보기 때문에 모자이크나 음성변조를 잘 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큰 의미를 훼손하는 것들이거든요. 무조건 원본으로 제작해야 하는데 뉴스타파에서 구두업체 사장의 얼굴이나 이런 모습들이 그대로 방송돼서 좋았습니다.
  • 기자 : 뉴스타파와 협의 과정에서 사측 얼굴 가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익명성을 고발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얼굴을 드러냈죠.
  • 감독 : 처음 들어 봤어요. 촬영하면 소송 걸겠다고 나오면 사실은 저도 위축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선뜻 얼굴이 먼저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무지 힘이 됐던 것 같아요.

방송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감독님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죠. 성수동 수제화 노동자들이 자신을 “촬영하는 노동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다큐감독”으로 대접받고 있다고요.  또 우스갯소리였겠지만 이런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지금까지 영화 10편 정도를 만들었지만, 제 영화 보신 관객수보다 뉴스타파 유튜브 조회수가 더 많이 나와 놀랐다”고요. 감독님은 <김종태의 꿈>(2003), <할매꽃>(2007), <용산>(2010), <강(江) 원래, 허벌란 이야기>(2011), <경계>(2014) 등을 제작했습니다.

▲ 문정현 독립다큐감독의 <경계>

영상으로 오롯이 드러나는 노동자들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곰삭은 김장김치로 끓인 찌개의 맛이 영상에서 느껴졌습니다. 노동자들은 멀리서 찾아온 이를 버선 발로 뛰어가 반겨주는 사람처럼 감독님을 대했고, 카메라 인터뷰는 편안하고 자연스런 일상 대화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구차한 자신들의 삶이 영상에 담기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하루 이틀 현장을 취재해 가지고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조금씩 그리고 모자람 없이 노동자들의 마음을 얻은 후에야 가능했을 촬영이었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취재했을까?”, “지금까지 인스턴트 취재는 아니었나?” 묻게 됩니다.

“아이템”이라는 단어가 싫다.

감독님의 시선은 늘 이런가 봅니다. 감독님은 특히 ‘아이템’ 이란 문구를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익숙한 단어이고 하루에도 몇번 씩 내뱉는 말이기도 합니다. 싫어하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 감독 : 현장에 누구를 찍고 있어요. 찍고 있을 때 찍고 있는 사람이든 상황이든 아이템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일단 아이템이라고 하는 순간, 그 분하고 이야기를 아예 벽을 쳐요. 물론 언어의 차이이기는 하겠지만, 내가 지금 찍는 어떤 상황의 사람들을 아이템으로 보는 이 시선은 제 카메라의 시선과 좀 많이 다른 거 같아요.
  • 기자 : (아이템이라는 단어가) 대상화를 하는 것 같아요.
  • 감독 : 네 조금 대상화 되어 있고, 뭔가 규격화 돼있단 생각이 조금 순위를 매기는 거 같은 생각이 좀 들어서 그런 말들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전부를 공감한 것은 아니지만, 어렴풋하게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현장의 취재 대상을 ‘대상화’하려 말고, 수평적으로 만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감독님이 “다큐감독”보다는 “촬영 노동자”라는 호칭을 더 반겨하는 이유도 조금은 깨닫게 됩니다.  

“다큐감독”보다는 “촬영 노동자”로 불리는 게 더 좋다

독립다큐 문외한인 저에게도 기억하는 독립다큐 몇 편이 있습니다. 먼저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입니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독재정권은 올림픽 행사를 정권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혈안이 됐죠. 주류 언론들도 정권의 나팔수가 돼 전세계인을 위한 ‘축제의 장’이라며 적극 동조했죠. 하지만 ‘축제의 장’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도 엄연히 존재했습니다. 가난한 모습을 외국 손님들에게 보여주기 싫다는 이유로 국가공권력은 상계동 등 수많은 달동네를 철거했고 주민을 쫓아냈습니다. 기성 언론이 침묵하고 있을 때 다큐는 정권의 위선을 폭로해냈습니다.

▲ 독립다큐영화 <상계동 올림픽>
▲ 독립다큐영화 <레드 헌트>

엊그제 제주 4.3항쟁 71주기였네요. 그래서 생각나는 독립다큐가 조성봉 감독의 <레드 헌트>입니다. 빨갱이 사냥. 국가폭력 앞에 수많은 제주사람들이 무고한 죽임을 당했고 그 후에도 ‘반공국가 대한민국’의 시민권을 온전하게 얻지 못한 채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독립다큐가 검열을 거부한 채 인권영화제에 무단 상영했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검찰에 기소됐고 고초를 겪어야했습니다. 검열 반대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할 겁니다.

최근에는 제작해줄 테니 로고 박아달라 협찬으로 해서 써 달라. 그러면서 제작하는 작업의 내용까지도 사전에 검토 정도로 얘기한다고 하는데 그런 유혹들이 많죠. 투자나 지원이 창작의 한계들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 있는 것  같고요. (독립다큐의 핵심은) 자본과 검열로부터의 독립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문정현 독립다큐감독

요즘 먹고 사는 문제가 잘 해결되냐는 질문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감독님은 조금은 미안한 표정으로 “가끔 홍보영상도 제작해야 하고 개인 알바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라고 답했습니다. 2011년 제작한 영화 <강(江) 원래, 허벌란 이야기>이야기를 할 때는 먹먹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감독님은 4대강 사업이 벌어지던 영산강을 취재했는데, 그 때 영산강 주민들로부터 받은 제작비 지원이 20만 원이었다고 하더군요. 독립다큐감독 앞에 놓인 현실이 그리 녹녹하지는 않은 듯 합니다. 거대 상업 영화 자본에 맞선 독립다큐의 길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신산하고 고단해보였습니다.

자본과 검열의 반대라는 독립다큐의 정신, 그리고 ‘화이부동(和而不同)’

저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각자 해석하는 마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겉으로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되 지향을 이뤄 조화를 만들어내자는 뜻으로 읽고 싶습니다. 자본과 검열으로부터 독립이라는 독립다큐의 지향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이라는 뉴스타파의 정신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탐사기자와 독립다큐감독, 비록 제작방식과 스타일이 다르더라도 조화롭게 ‘독립의 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쉽지는 않으실텐데 (뉴스타파가) 잘 버티셔서 어찌 됐건 서로가 하는 일들이 어떤 협업이 될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문정현 독립다큐감독

감독님은 <목격자들> 방송을 통해 ‘족쟁이’라 불리는 성수동 수제화 노동자들의 가감없는 현실을 “바깥 세상에 알릴 수 있게 돼 보람 있었다”는 말씀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제가 더 고맙습니다. 오랜 천착과 깊은 공감으로 만들어 낸, 그래서 울림이 큰 영상을 뉴스타파 회원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어 기뻤습니다.

다음달 5월 끝자락쯤, 다시 한번 감독님의 작품을 볼 수 있겠군요. 현재 레어테크코리아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갑질과 폭력의 현장을 취재 제작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의미있는 작품으로 만들어져 뉴스타파 회원들과 공감하는 자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뉴스타파가 독립다큐감독과의 더 많은 인연을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9년 4월 5일 <세상을 바꾸는 공간 ‘짓다’> 제작진 드림

촬영 정형민, 오준식
출연 문정현 독립다큐감독
영상 구성 박종화
글 박중석, 박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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