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의 북한 기사 '참고서'...美 선전매체

2021년 07월 26일 16시 17분

2021년 7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68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포성은 멎었으나 전쟁은 아직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고, 남북한 평화 프로세스는 여전히 교착 상태다. 상호 신뢰 회복이 중요하지만 한국언론의 무분별한 북한 보도는 종종 대화의 걸림돌이 됐다. 걸핏하면 북한 최고지도자를 ‘죽였다가 살렸고’, 고위 인사 처형설과 같은 대형 오보를 내놨다. 핵 관련 소식, 북한 내부 동향 뉴스에서도 ‘묻지 마’식 보도행태를 끝없이 이어가고 있다. 북한 관련 뉴스는 과연 누가 만들고,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뉴스타파는 국내 22개 언론사의 북한 관련 기사 1년치, 8만여 건을 전수 분석해 북한 뉴스 ‘소스’를 추적하는 <북한 뉴스 해부 - 누가 북한 뉴스를 만드는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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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미국의소리(VOA)’와 ‘자유아시아방송(RFA)’, 두 매체가 국내 언론이 북한 관련 기사를 생산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매체인 것으로 확인됐다. 
두 매체는 미 정부 산하 독립 기관인 ‘미 국제방송처(USAGM)’ 소속으로,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국외(미국 외) 방송’을 하는 매체다. 미국의소리와 자유아시아방송이 운영하는 한국어 방송은 주로 미국과 북한 소식을 다룬다. 미 국제방송처는 이 매체들의 사명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며, 이는 “미국 국익에 필수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최근 1년간 국내 언론사가 다른 매체를 인용해 보도한 북한 관련 기사를 전수 분석한 결과, 한국언론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매체는 북한 매체를 제외하면 1위가 미국의소리, 2위가 자유아시아방송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간 북한을 다룬 전체 기사에서 북한 매체(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방송 등·8,779건)를 인용한 기사를 제외하면, 이 두 미국 매체를 인용한 북한 관련 기사는 전체의 약 10%를 차지한다. 한국 언론사가 두 매체의 기사 중 주로 인용하는 건 북한 체제와 식량난·경제난 등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한국 언론사가 북한 관련 소식을 다룰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이 두 매체의 정체는 뭘까?

전쟁과 두 선전매체

미 국제방송처(US Agency for Global Media)는 미국을 기준으로 ‘국외 방송’을 주관하는 미 정부 기관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CNN·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 매체나 AP, 로이터 등 국제통신사와는 성격이 판이하다. ‘미국의소리’나 ‘자유아시아’의 타깃은 미국 국민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이다. 
미국식 ‘자유와 민주주의’를 알릴 필요가 있는 국가’들이 이 국제 방송의 대상이 된다. 미 국제방송처는 미국의소리(VOA)와 자유유럽방송(RFL/RL), 쿠바 방송(OCB), 중동 방송(MBN), 자유아시아방송(RFA) 등 5개의 방송국을 두고 있다. 미국의소리는 한국어를 포함해 47개국의 언어로 방송하는데 동아시아권(중국, 인도, 태국, 티베트 등), 유라시아권, 라틴아메리카 등이 대상이다. 미국의소리와 자유아시아방송의 한국어 방송은 북한을 겨냥한다고 돼 있지만 유튜브 등 인터넷 방송이 보편화되면서 이 매체의 콘텐츠는 미국이나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노출돼 있다. 
미 국제방송처를 잘 이해하기 위한 단어는 바로 ‘전쟁’이다. 이 기관의 모태는 미 국무부 산하의 방송위원회(BBG·Broadcasting Board of Governors)로, 산하 방송국인 미국의소리가 처음 방송을 시작한 건 제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이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도래하자 미국은 1950년도에 동유럽권을 상대로, 또 1953년에는 소련을 상대로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원거리까지 송출이 가능한 단파 라디오 등을 사용했다. 방송은 미 정부의 선전 전략 수행에 한 축을 맡았다. 
한국전쟁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미국은 ‘미국의소리’와 ‘유엔군총사령부의 소리(VUNC)’를 운영하며 대북 심리전을 폈다. 1949년부터 미국의소리 한국어 방송의 아나운서로 활동했던 황재경이 “미국의소리의 전성기는 6.25때였다”고 평가했다는 기록(‘한국전쟁 기간 미국의 대한 방송 활동’ 논문)도 있다. 
“미 국제방송처는 미국 정부의 프로파간다, 즉 선전 매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미 국제방송처는 “그렇지 않다. 미 국제방송처와 소속 방송 매체의 임무는 정확하고 균형 잡힌 뉴스와 정보를 국외의 청중에게 방송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북한 비판’, ‘미 국익 대변’이 가장 많아

그러나 한국 언론사가 미국의소리와 자유아시아방송 기사를 인용해 보도한 북한 관련 기사들을 들여다보면, 두 매체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드러난다. 뉴스타파는 국내 언론사가 최근 1년간(2020.4~2021.3) 생산한 북한 기사 2만여 건 가운데 미국의소리와 자유아시아방송을 인용한 기사 1518건을 수집, 내용에 따라 유형을 구분했다. 
미국의소리와 자유아시아방송의 한국어 방송은 지난해 12월 대한민국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을 겨냥해 비판 기사를 쏟아냈다. 대북전단을 금지하려고 하는 한국 정부가 “민주주의 국가 맞는지 의문”이라거나 “미 의회가 대북전단금지법과 관련해 청문회를 연다”는 등의 내용을 여러 화자의 입을 통해 보도했다. 이런 내용은 한국 언론사들이 다시 이 두 매체를 인용해 쓰면서 재생산됐다. 

북한 동향 역시 국내 언론이 두 매체를 인용해 많이 보도하는 내용이다. 주로 북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 유형을 구분한 결과 북한의 ‘의료·식량·경제난·체제 비판형’ 기사가 전체의 약 25%로 가장 많이 재생산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 비핵화를 촉구하거나 북한이 핵 관련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 같다는 등의 ‘북한 군사 정책 비판’ 기사가 그 뒤를 이었다.
사진 설명 : 파이형 그래픽. ▲북한 인권 비판, ▲북한 의료·식량·경제난·체제 비판, ▲북한 군사 정책 비판, ▲대북제재 강화·유지,▲대북전단금지법 비판, ▲한미·한미일 동맹 강화, ▲남북 독자노선(경협 등) 비판, ▲북미대화·남북대화 지지, ▲중국·러시아 견제 등으로 항목 구분. 두번째로 많이 재생산된 기사 유형은 북한의 군사정책 비판 기사다. 국내 22개 언론사의 미국의 소리와 자유아시아방송 인용 보도 1518건 기준
이를 다시 ‘북한 비판’, ‘미국 국익 대변’, ‘중립 혹은 단순 보도’, ‘북한 긍정형(북미 대화·협상, 종전선언 지지 등)’으로 유형을 구분한 결과 ‘북한 비판형’ 유형이 전체의 66.3%, ‘미국 국익 대변’ 유형이 전체의 16.9%, 중립·단순 보도가 15%, ‘북한 긍정형’ 보도가 1.6%인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 설명 : 파이형 그래픽. 북한 비판형’ 유형이 전체의 66.3%, ‘미 국익 대변’ 유형이 전체의 16.9%, 중립·단순 보도가 15%, ‘북한 긍정형’ 보도가 1.6%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22개 언론사의 미국의 소리와 자유아시아방송 인용 보도 1518건 기준)
이 두 매체는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과거사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을 당시 “한일간의 긴장이 유감스럽다”는 등의 미국 입장을 전파하기도 했다. 

두 매체 인용 빈도, 전체의 10%...국내 공론장에서 큰 영향

문제는 미국 국익을 대변하는 미국의소리와 자유아시아방송을 한국언론이 상당히 높은 수준에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공론장에서 두 매체의 영향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될까?
뉴스타파는 최근 1년간 생산된 북한 기사의 취재원 등 출처를 ▲매체 ▲인물 ▲기관 별로 구분해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했다. 예컨대 ‘매체별 통계’를 보면 국내 언론사가 북한 관련 기사를 쓸 때 어떤 매체를 가장 많이 인용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조사 결과 북한 매체(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방송 등)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인용된 매체가 미국의소리, 그 다음으로 자유아시아방송이었다. 북한 매체를 인용하는 경우는 단순형 보도가 주를 이룬다. 로이터 통신, CNN, 38노스, 워싱턴 포스트, 요미우리 신문이 차례로 그 뒤를 이었다. 북한 매체를 인용한 기사(약 8천 건)를 제외하면, 전체 북한 관련 기사 중 약 10%를 차지한다.
 사진 설명 : 보도 화면 갈무리. 국내 매체가 북한 기사를 생산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매체는 북한 관영 매체를 제외하면 1위가 미국의소리, 2위가 자유아시아방송이다. 국내 22개 언론사의 북한 관련 기사 23,235건 기준.
김성해 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북한 관련 뉴스 생산 관행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한국 언론이 미국의 심리전을 대신해 주고 있는 것”이라며 “A라는 정보원이 무언가를 이야기하면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게 언론이 취해야 할 건전한 비판정신이라면, 북한에 대해서나 미국에 대해서는 어느 순간 그 비판적인 거리를 아예 없애버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의소리나 자유아시아방송은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매체임을 알고 뉴스를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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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입력황다예 이준엽 김이향 이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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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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