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소송, 검찰 예산의 '빗장'을 풀어라
2021년 04월 27일 13시 55분
수십 년 동안 굳게 잠겨 있던 검찰 예산 정보의 '빗장'이 풀렸다. 대한민국 검찰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뉴스타파가 <세금도둑잡아라> 등 시민단체 3곳과 함께 예산 자료를 공개하라며 검찰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낸 정보공개 행정소송에서 최초로 이겼다. 소송을 제기한 지 2년 2개월 만이다.
이번 행정법원의 판결에 따라, 검찰이 공개하게 된 예산은 ①특수활동비, ②특정업무경비, ③업무추진비의 세부집행내역(집행 일자, 장소, 명목, 금액 포함)과 지출 증빙자료(지출결의서, 신용카드영수증, 세금계산서, 현금수령증 포함)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보지 못한 자료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는다면, 기밀이 요구되는 수사에 쓰라는 특수활동비가 검찰총장, 검찰 간부들의 용돈, 회식비 등 쌈짓돈으로 유용되지는 않는지, 세금을 내는 시민들이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검찰 개혁의 새로운 전기를 가져올 일대 사건이다.
뉴스타파는 시민단체와 함께 2019년 11월 18일부터 2022년 1월 11일까지 786일 동안 수행했던 행정소송 1심 재판 과정을 정리했다.
2019년 가을, 검찰 개혁의 목소리가 서초동을 휘감았다. 뉴스타파는 <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등 시민단체 3곳과 함께 검찰 조직의 민주적 통제를 위한 '검찰 개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먼저 검찰이 쓰는 예산의 투명한 공개에서부터 감시 활동을 시작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국회마저도 이미 특수활동비를 공개했고, 모든 정부 부처 장·차관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업무추진비를 공개하는데 검찰만 예외여야 할 이유가 없었다.
●2019년 10월 18일 : 대검찰청·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정보공개청구
2019년 10월 18일, <세금도둑잡아라>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하승수 변호사 (뉴스타파 자문위원)가 협업 단체를 대표해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의 세부 집행내역과 지출 증빙자료를 공개하라고 요청했다. 며칠 뒤, 검찰은 관련 정보를 비공개한다고 통보했다. 해당 정보가 공개되면, '범죄의 수사 등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한다'는 사유를 붙였다.
이 전가보도(傳家寶刀)의 비공개 논리를 앞세워 검찰은 매번 예산 공개를 회피해왔다. 지금까지 어떤 기관도 건드리지 못했다. 검찰의 상부 기관인 법무부도, 국정감사를 하는 국회도 검찰의 내밀한 예산 자료는 볼 수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검찰 예산은 그야말로 '1급 성역'이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는 이 성역에 도전장을 내기로 했다.
●2019년 11월 18일 : 검찰총장·서울중앙지검장 상대 정보공개 행정소송 제기
검찰이 정보 비공개 결정을 내리고 2주가량 지난 2019년 11월 18일, 하승수 대표는 서울행정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소장 말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집행내역과 지출증빙서류는 반드시 공개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의 알권리와 행정의 투명성이 확보될 수 있습니다.' '수사에 방해된다'는 명분을 핑계로 삼아 주권자의 정보 접근을 차단하는 검찰의 행태를 이제 멈추게 해달라는 상식적인 요구였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가 내세운 피고는 두 명이었다.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 이들이 수장으로 있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2017년 1월 1일부터 2019년 9월 30일까지 쓴 세 가지 예산, 즉,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의 세부 집행내역과 지출 증빙자료가 소송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검찰 예산의 공개를 둘러싼 우리나라 최초의 행정 소송이 시작됐다. 원고 측에서는 하승수 대표가 법정에 나갔고, 피고인 검찰 측에서는 대검 공판송무부 소속 검사 등이 맞섰다. 소장이 접수되고 두 달 뒤인 2020년 1월 16일, 대검찰청 공판송무부가 행정법원에 이번 소송에 대한 '답변서'를 냈다. 모두 8쪽 분량인데 간단히 줄이면 이렇다. '수사에 방해돼서 공개할 수 없다.' 검찰은 줄곧 이 주장을 반복했다.
●2020년 7월 9일 : 정보공개 행정소송 1차 변론 (재판 개시)
소송 제기 8개월 만인 2020년 7월 9일, 1차 변론기일이 잡혔다. 검찰 측에서는 4명의 소송 수행자가 법정에 출석했다. 첫 번째 재판에서부터 재판장은 '공개를 거부한 정보를 재판부에 제출하라'고 검찰에 요구했다. 재판부가 직접 보고 검찰의 비공개 주장이 타당한지 판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날 검찰 측은 정보 제출 여부에 대해 즉답을 피한 채 '검토 후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첫 재판은 이렇게 20여 분 만에 끝났다.
●2020년 10월 27일 : 검찰, 특수활동비 관련 정보의 '부존재' 주장
이후 재판의 양상은 특수활동비와 그 집행 내역의 존재 여부를 놓고 진실 공방이 이어졌다. 대검찰청이 쓰는 특수활동비의 규모는 상당한데, 2017년 160억, 2018년 127억, 2019년 10월까지 83억 원에 이른다. 검찰은 이 특수활동비 변론 과정에서 '치명적인 거짓말'을 저지르게 된다.
두 번째 재판을 이틀 앞두고 있던 2020년 10월 27일, 검찰은 행정법원에 '준비서면'을 냈다. 준비서면은 재판에서 자신이 주장하려는 내용을 정리해서 법원에 미리 제출하는 문서다. 역시 내용의 대부분이 '수사에 방해돼 공개할 수 없다'는 주장을 길게 풀어 쓴 것이었는데, 특히 특수활동비와 관련해서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검찰에서 특수활동비를 쓰기는 하는데, 검찰에는 집행과 관련한 정보는 없다. 없는 정보를 어떻게 공개하냐'는 것이다.
이 같은 '정보 부존재' 주장은 9개월 전인 2020년 1월 16일, 검찰이 행정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도 일부 반복된 바 있었다. 그런데 이번 준비서면에서는 한 발 더 나가 '특수활동비 집행내역 정보가 검찰이 아닌 감사원에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전개했다. 검찰은 감사원에 '검찰의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 정보를 보내 달라'며 '문서송부촉탁'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2020년 11월 9일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특수활동비 관련 자료 일부 열람
2주 뒤 검찰은 '특수활동비 정보의 부존재' 주장을 스스로 뒤집는다. 2020년 11월 5일, 국회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특수활동비를 정치자금으로 쓴다.', '측근이 있는 검찰청에 더 많은 특수활동비를 준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2020년 11월 9일, 사실 여부를 확인하겠다며 대검찰청을 방문했고, 검찰은 '자신에게 없다'던 특수활동비 관련해 극히 일부 자료를 열람 형식으로 의원들에게 보여줬다.
●2020년 11월 10일 : 감사원, 검찰의 문서송부촉탁에 회신
검찰의 '정보 부존재' 주장은 감사원의 회신 문서를 통해서도 여지없이 깨진다. 2020년 11월 10일, 감사원이 법원에 보낸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감사원에 해당 사항은 존재하지 않으며, 해당 자료는 소관 기관 (법무부 및 검찰청)에 요청하여야 함을 알려드립니다.'
검찰이 법정에서 거짓 변론을 편 것이다. 결국, 재판부는 상급 기관인 법무부에 '정말 검찰에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 정보가 없는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한 달 뒤, 회신이 왔다. 법무부 검찰과가 작성한 '사실조회에 대한 회신' 문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대검과 산하 검찰청 및 사업부서에 배정된 특수활동비의 세부 집행은 감사원 특수활동비 계산증명지침에 따라 이를 배정받은 기관장·사업부서장의 책임 하에 이루어지고 있음.' 즉, 특수활동비 예산 집행 내역이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2021년 1월 28일 : 정보공개 행정소송 3차 변론기일
검찰의 변론이 잇따라 거짓으로 드러나며 상황이 불리해지자, 검찰은 재판장에게 말장난하듯 다음과 같은 궤변을 내놓았다. '(검찰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이 없다는 것이지, 사용 내역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3차 변론기일인 2021년 1월 28일, 재판부는 검찰에 또다시 자료 제출을 명령한다. 앞서 언급했듯, 재판장은 6개월 전에 열린 첫 번째 재판에서도 똑같은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정확히 204일이 지나도록 검찰은 재판장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있었다.
●2021년 3월 4일 :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
이번 행정소송의 피고였던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도 소송에 영향을 줬다. 4차 변론기일을 사흘 앞둔 2021년 3월 15일, 검찰은 정해진 일자에 재판을 진행하기가 곤란하다며 날짜를 미뤄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퇴해서 재판과 관련한 검찰 내부의 의사결정에 차질이 있다'는 사유를 댔다.
검찰의 '기일변경신청'은 이때 한 차례가 아니었다. 검찰 내부 사정 등을 핑계 삼아 네 차례 재판을 연기했다. 각 사유를 살펴보면, '재판 날짜가 대검찰청 국정감사 일정과 겹쳐서(2020년 10월 15일)', '검찰 내부 인사이동 때문에(2021년 7월 5일)', '다른 재판 때문에 바빠서(2021년 8월 12일)'라며 재판을 미뤘다. 이렇게 봄에 열렸어야 할 재판은 가을이 되어서야 재개됐다.
●2021년 9월 9일 : 정보공개 행정소송 4차 변론기일
한없이 늘어지던 재판이 8개월 만에 다시 열렸다. 이날 검찰은 예산 관련 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428일 만에 재판장의 자료 제출 명령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마지못한 검찰의 자료 제출은 성의가 없었다. 전체 자료가 아닌 극히 일부의 자료를, 게다가 제대로 정리하지 않은 채 제출했다. 검찰은 끝까지 자료 제출에 비협조적이었다. 재판부가 마뜩할 리 없었다. 당시 판사와 검찰 측 소송 수행자인 검사 사이에 오간 대화를 정리하면 이렇다.
■ 재판장 : 지금 자료 취합에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신 게 벌써 1년 전이거든요. 그러면 (전체 자료) 600권 중에 그냥 2권을 무작위로 가지고 오셨다는 거네요.
□ 검찰 측 소송수행자 : 저희가 600권에 있는 업무추진비하고 특정업무경비 관련 자료를 다 뽑는 건 사실상 거의 불가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재판장 : 지금 이거 2권을 제출을 하시는 것도 이 중에서 이 사건의 정보에 해당되는 것만 제출을 하셔야죠. 그 전체를 제출하시면서 (판사가) 알아서 찾아보라고 이렇게 하시는 게 아니라...
●2021년 11월 11일 : 정보공개 행정소송 5차 변론기일 (변론 종결)
마지막 변론기일이다. 재판장은 검찰이 제출한 자료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곧이어 짧게 말했다. "(2022년) 1월 11일 오후 2시에 선고하겠습니다."
●2022년 1월 11일 : 정보공개 행정소송 1심 선고
연일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맹추위가 찾아왔다. 소송을 제기하고 786일 동안 이날을 기다렸다. 오후 2시, 서울행정법원 B219호 법정. 3명의 판사가 입장했다. 긴장감으로 사위가 조용하다. 잠시 뒤 재판장이 주문을 낭독했다.
피고 검찰총장이 2019년 10월 30일 원고에 대하여 한 '별지 1' 목록 기재 정보에 관한 정보공개거부처분을 취소한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이 2019년 10월 21일 원고에 대하여 한 '별지 1' 목록 기재 정보에 관한 정보공개거부처분 중 '별지 2' 목록 기재 공개대상정보에 관한 부분을 취소한다.
간단히 말해 '예산 정보를 모두 공개하라'는 것. 당연한 결과였다. 선고 다음 날, 17쪽 분량의 판결문을 받아보니, 뉴스타파와 시민단체의 '완전한 승소'였다. 검찰이 국민이 낸 세금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시민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처음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 곳곳에서 '예산을 공개해도 수사 기밀이 드러나거나 수사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수십 년 동안 국민의 알권리를 막아온 검찰의 비공개 논리가 단박에 허물어진 것이다. 막강한 권력 기관인 검찰도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하는 '보통의 행정기관'임을 확인해 주는 판결이다.
수사 과정에서 소요되는 경비를 공개한다고 해서 곧바로 구체적인 수사활동의 기밀이 유출된다고 보기 어렵고 정보가 공개된다고 해서 향후 수사 업무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수행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장애를 줄 고도의 개연성이 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우선, 대검찰청은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를 '언제, 어디서, 몇 명이, 얼마나, 왜 썼는지' 등이 담겨 있는 세부 집행내역은 물론이고, 이를 증빙할 지출결의서, 내부 결재 서류, 영수증, 세금계산서 등까지 모두 공개해야 한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도 마찬가지다. 다만 재판부가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시한 부분이 있는데, 계좌번호·카드번호·승인번호 같은 개인식별 정보였다. 그 외에 국민의 세금으로 쓴 예산 내역을 모두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 1심 판결문 전문 보기 (https://www.documentcloud.org/documents/21179322-2019guhab86648_jeongbogonggaegeobuceobuncwiso?responsive=1&title=1)
소송을 맡은 하승수 공동대표는 "검찰이 특권적인 권력 집단에서 ‘보통의 행정기관’으로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압축해 이번 판결을 평가했다.
검찰을 특별한 권력 기관이 아니라 보통의 행정기관으로 만드는 데에, 검찰을 민주화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판결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된다면 특수활동비를 포함해서 대검찰청이 쓰는 돈, 각 지방검찰청, 고등검찰청이 쓰는 돈까지 투명하게 만드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판결이 검찰을 개혁하는 데에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검찰이 과연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고 순순히 예산 정보를 공개하겠냐는 점이다. 검찰은 1심 재판 과정에서 '자신들에게는 특수활동비 자료가 아예 없다'는 등의 거짓 주장을 펴는가 하면, 재판장의 자료 제출 요구마저도 제대로 따르지 않으며 어떻게 해서든 정보를 감추려 했다.
이번에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공개해야 하는 예산 정보는 2017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2년 9개월 치다. 공교롭게도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서울중앙지검장(2017년 5월 22일~2019년 7월 24일), 검찰총장(2019년 7월 25일~2021년 3월 4일)으로 있던 시기와 겹친다.
이번 검찰 예산의 공개가 검찰 개혁의 일환인 동시에 윤석열 후보의 검증의 의미를 담게 됐다. 때문에 검찰은 정치적 판단을 앞세워 공개를 거부하고 항소해 국민의 알권리를 묵살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4월, 뉴스타파는 이번 행정소송을 보도 (최초 소송, 검찰 예산의 '빗장'을 풀어라)하면서 '시간은 조금 더 걸리겠지만, 검찰 예산의 투명한 공개는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시민들과 약속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항소해도 시간이 걸릴 뿐 검찰 예산의 투명한 공개는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검찰을 '특별한 권력 기관'이 아닌 '보통의 행정 기관'으로 바꾸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법원의 공개 판결에 검찰이 어떻게 나오는지 뉴스타파는 시민단체와 함께 끝까지 취재하고 보도할 것이다.
공동기획 | 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시민행동,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
영상취재 | 신영철, 오준식, 이상찬, 최형석 |
편집 | 윤석민 |
CG | 정동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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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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