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동, 규격 미달…공항 대테러 장비 '엉망진창'

2018년 05월 29일 19시 29분

지난 1월 31일 밤 11시 무렵 제주국제공항에 긴급 대피 방송이 울려 퍼졌다. 3층 여자 화장실에서 폭발물로 의심되는 여행용 가방이 발견된 것.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 폭발물처리반(EOD)이 출동해 X-ray 장비로 가방을 판독한 결과 폭발물 뇌관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됐다. 경찰과 국정원, 소방당국, 군 기무사 등 150여명의 인력이 긴급 출동했고 곧바로 합동조사반이 꾸려졌다.

하지만 가방 해체 결과 폭발물 뇌관은 들어 있지 않았다. 조사 결과 가방 주인은 20대 관광객들로 밝혀졌다. 이들은 근처 시내에 나가기 위해 가방을 잠시 화장실에 두고 갔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제주 공항 폭발물 소동은 단순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제주지방경찰청은 이튿날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대테러 활동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소동에 신속하게 대응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하지만 뉴스타파 취재결과 제주공항 폭발물 소동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X-ray에 찍혔던 폭발물 뇌관의 정체는?

당시 현장에서 찍은 X-ray 사진이다. 경찰은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을 폭발물 뇌관으로 추정해 해체 작업에 나섰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체 결과 뇌관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해당 물체는 머리 모양을 내는 고데기였다고 설명했다.

뉴스타파는 과거 EOD가 촬영한 모의 폭발물 X-ray 사진을 입수해 해당 사진과 비교해봤다. 그 결과 경찰이 고데기라고 말했던 부분은 6~8cm의 실제 모형 뇌관이었다.

아래 사진은 고데기를 다른 X-ray 장비로 촬영한 사진이다. 열을 내는 판이 검은색으로 나온다. 어댑터도 선명하게 찍힌다. 경찰의 설명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이 말은 제주공항 폭발물 소동 당시 찍힌 사진이 실제 사진이 아닌, 과거 연습용으로 찍은 사진이었다는 뜻이다. 누군가 사진을 조작했거나 혹은 장비에 이상이 있었다는 얘기다.

취재가 시작되자 경찰과 공항은 사진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제주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자체 조사에서 “기존에 촬영돼 있던 폭발물 사진이 지워지지 않은 채로 촬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 EOD 관계자는 폭발물 소동 이후 “직원이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고, 장비 업체에 조사를 의뢰한 결과 사진 삭제 시간 때문에 과거 사진이 겹쳐서 나온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장비 업체 관계자는 사진 오류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직 공항 EOD 요원 또한 “사진이 겹쳐지면 저렇게 선명하게 나올 수 없다”며 “EOD가 중복 여부를 판독하지 못했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폭발물이었다면 판독이 안 돼 해체 과정에서 큰 사고가 날 수 있었던 상황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된 X-ray 장비는 미국산으로 한 대 가격이 1억 3천만 원에 달한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 장비는 김해공항에서 겨울철 작동이 안 돼 최근 전수조사를 받은 것으로도 드러났다. 전 김해공항 EOD 요원이었던 김윤건 씨는 “긴급 출동 차량에 실려있던 X-ray 장비가 겨울철에 작동하지 않았다”며 “당시 회사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대책은 사무실에 장비를 두고 다니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X-ray 장비는 긴급 출동을 위해 차량에 탑재해야 한다. 김씨는 “이후 후속 조치가 5톤 출동 차량에 온풍기를 설치하는 것이었다”며 “작동이 안 되면 대테러 장비에 적합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해당 장비는 규격 미달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장비 구매 당시 한국공항공사가 올린 입찰 공통규격서를 보면, X-ray 장비(CR 방식) 스캐닝 속도가 ‘40~70초 이내에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입수한 해당 장비의 스캐닝 영상을 분석한 결과, 최저 해상도로 스캐닝을 진행했을 때 80초 가까이 걸렸다. 장비 제작사인 미국 업체의 사양서에도 최저 해상도 150일 때 70초, 300일 때 140초, 600일 때 280초가 걸린다고 나와 있다.

통상 장비를 구매하면 발주부서 담당자와 계약부서 담당자 등이 장비를 검수한다. 취재진은 담당자인 한국공항공사 테러대응팀 A씨에게 규격 미달 의혹과 검수 과정에 대해 수 차례에 걸쳐 해명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납품 업체 관계자는 규격 미달 의혹에 대해 “(한국공항공사)검수 과정에서 스캐닝 속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실제 상황에서 연습용 사진이 출력되고 겨울엔 오작동이 빈번하며 규격 미달 의혹까지 있는 장비가 납품된 상황. 한국공항공사는 지난 2016년 이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고 X-ray 장비 13대를 전국 공항에 배포했다. 계약 금액은 16억 7천만 원이다.

“김포공항 폭발물 운반 트레일러도 성능 미달”

지난 2015년 구매한 김포공항 폭발물 운반 트레일러도 성능 미달 의혹이 제기됐다. 트레일러는 공항에서 발견된 폭발물을 안전지대로 이동시키는 장치다. 이동 중 물체가 폭발할 수 있기 때문에 방호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토교통부 예규에 따르면 트레일러 방호 능력은 TNT(폭약) 5kg 이상. 하지만 전직 공항 EOD 요원은 뉴스타파에 “김포공항에 배치된 트레일러가 저가 제품이며, TNT 1.5kg 밖에 버티지 못한다”고 증언했다.

이 관계자는 “물품 담당자 A씨가 이를 알고 있었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트레일러가 약해 보여 양쪽에 장식을 달고 검은색으로 도색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해 공항공사 자체 감사 결과에서도 적발됐다. 당시 감사실은 ‘납품된 트레일러 제품이 예정된 것과 다른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계약상의 문제는 없었다며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담당자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취재진은 A씨에게 수 차례 연락했지만 답변을 거부했다. 공항공사에 불량 트레일러에 대한 입회도 요청했지만 공항공사 측은 응하지 않았다.

업자에게 차량 싸게 구매한 뒤 되팔아 시세차익?

A씨는 또 지난 2011년 폭발물 장비 업자에게 차량(모하비)을 싸게 구매한 뒤 다시 팔아 시세차익을 남긴 의혹도 받고 있다. 한국공항공사는 이에 대해 지난해 감사를 벌였지만 ‘업자가 차량 판매자를 소개해준 것이며, 판매자가 직무 관련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임직원 행동강령 위반을 적용하지 않았다.

전 EOD 요원은 “차량을 사고 팔아 차익을 남긴 것은 분명하며, 이 과정에 직무 관련자가 개입됐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며 감사에 문제를 제기했다. 취재진은 당시 모하비 차량이 누구의 명의로 돼 있었는지, 업자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 A씨에게 문의했지만 이 또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군 출신이 장악한 EOD... ‘빗나간 전우애’

지난 2006년부터 최근까지 한국공항공사 정규직 EOD 요원은 6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전국 공항에 배치된 20~30명의 요원은 용역업체 소속이었다.

당시 정직원 6명 가운데 육군특수전사령부 707 특수임무대대 출신은 5명. 모두 군 선후배 사이였다. 하지만 이들의 끈끈한 전우애는 잘못된 방향으로 발전했다. 지난 2016년 공항공사에서 대규모 납품 비리가 터진 것.

지난 2010년 같은 군 출신이던 납품 업자는 X-ray 장비 3대를 판매하며 공항공사로부터 3억2천4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하지만 납품된 장비는 실제 계약과는 전혀 다른 제품이었다. 원가도 6천만 원에 불과했다.

EOD 요원은 이를 알면서도 묵인해준 뒤 업자에게 뇌물을 받았고, 나머지 EOD 요원 4명도 부품업자에게 허위견적서를 낸 뒤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허술한 장비 검수 절차와 군 선후배들의 이해관계가 만들어낸 대규모 납품비리였다. 이 비리에 연루되지 않은 EOD 정직원은 단 한 명. 이번에 문제가 된 장비 구매 담당자 A씨다.

이른바 전문 분야라는 이유로 폐쇄적인 조직을 만든 뒤 허술한 내부 시스템을 파고든 그들만의 리그. 전 공항 EOD 요원은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유사시에 실제로 테러 폭발물이 발견됐을 때, 그걸 들고 나가서 안전하게 처리하든지 만에 하나 처리를 못 할 것 같으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EOD가 있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써야 할 장비입니다. 검수, 성능 점검, 테스트... 허술하게 흘러오면 실제 사건이 터졌을 때 대응을 못 해요.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항 전체가 초토화되겠죠. 그러면 해마다 승객이 늘어난다고 자랑하는 공항에서 그런 일 터지면, 국민들 생명, 공항건설 할 때 들어가는 재산, 엄청난 피해를 발생시키겠죠. 잘못 써먹으면 오로지 피해는 국민들이 안을 수밖에 없어요.”

*8월 21일 반론 추가

지난 5월 위 기사에 등장하는 ‘폭발물 운반 트레일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전직 폭발물 처리반 요원은 뉴스타파에 “김포공항에 배치된 트레일러가 저가 제품이며, TNT 1.5kg밖에 버티지 못한다”고 증언했다. 또 “물품 담당자 A씨가 이를 알고 있었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공항공사 물품 담당자 A씨에게 수 차례 연락해 관련 사실에 대해서 질의했다. 하지만 A씨는 답변을 거부했고 해당 트레일러를 납품한 업체가 어디인지도 대답하지 않았다.

기사가 출고된 뒤 3달이 지난 8월 10일 트레일러 수입업체 T사는 뒤늦게 뉴스타파에 반론을 전달했다. 당시 한국공항공사에 트레일러를 납품한 업체는 G사로, G사는 T사로부터 트레일러를 받아 공항공사에 납품했다. 아래는 T사가 전달한 반론을 요약한 내용이다.

“해당 폭발물 트레일러를 구매하기 전 제조회사에서 실시한 2015년 9월 30일자 제조사 검사보고서에서 TNT 5kg에 합격했다는 보고서를 확인했으며, 유럽 등 다른 선진국에서 제조한 제품들과 비교했을 때 품질 저하는 발견할 수 없다. 전 공항 EOD 요원들의 인터뷰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고, 개인적인 편견’에 불과하다.” - T사의 반론

취재 : 문준영
촬영 : 최형석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정정보도 및 반론보도> '오작동 규격 미달, 공항 대테러장비 엉망진창' 관련

본 매체는 지난 5월 29일 "오작동 규격 미달, 공항 대테러장비 엉망진창"이라는 제목으로 한국공항공사 내 업무담당자 및 EOD 요원 비리, 김포공항 내 폭발물 운반 트레일러 승능 미달 등의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트레일러 장비들은 공항공사 측이 공개한 '장비 시험성적서'에 따르면 TNT 5kg 이상을 충족한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 잡습니다.

한편 공사 측은 보도 화면에 나온 두 대의 트레일러 중 흰색 트레일러는 사용 연한이 경과하여 이미 불용 처리된 장비라고 밝혀왔습니다.

또한 공사 측은 "제주공항 대테러 장비에 대한 오류는 자체 조사 결과 잔류 영상이 일시적으로 보인 것일 뿐이고, 김해공항과 김포공항의 장비들도 국토교통부 등의 규격 기준을 충족한다"고 밝혀왔습니다.

그리고 공사 측은 "공항공사 내 비위행위와 관련된 일부 내용은 자체 감사결과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해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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