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해병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통신기록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찍부터 있었다. 지난 5월 21대 국회 막바지에 굳이 특검법을 통과시켜 특검이 빨리 수사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 통신기록 삭제 전 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건 발생 전후, 특히 대통령 격노 전후의 통신기록 확보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하다. 채해병 사건은 지난해 7월 19일 발생했다. 통신기록의 보존이 1년이기 때문에 다음 달이면 해당 기록이 없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 기간이 지나기 전 관련 기록을 확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미 일부 기록이 확보돼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통화가 확인되기도 했다.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공수처가 추가로 통화 증거 기록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 대통령실, 국방부, 해병대 등에서 채해병 사건과 관련해 오간 여러 기록(특히 통신기록)의 확보가 완전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는지 찾아볼 필요가 있다. 공공기록물제도에 ‘폐기금지제도’라는 게 있다. 공공기록물법 제27조의 3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국가기록원장은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으로서 조사기관 또는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거나 국민의 권익보호를 위하여 긴급히 필요한 경우에는 기록물의 폐기 금지를 결정하고 해당 공공기관 및 영구기록물관리기관에 통보할 수 있다.
폐기 금지를 통보받은 공공기관 및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의 장은 해당 기록물이 폐기되지 아니하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국가기록원장은 기록물의 폐기 금지 조치 및 관리실태 등을 확인하기 위하여 해당 공공기관 및 영구기록물관리기관에 대한 기록물관리 현황조사 또는 점검 등을 실시하고 필요한 경우 시정 조치를 할 수 있다.
즉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으로서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국가기록원장이 해당 기록의 폐기를 금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채해병 사건과 관련해 사건의 진상에 다가갈 수 있는 기록을 현재 수사를 하는 공수처가 요청하거나 국가기록원장이 관련 기관에 기록의 폐기를 금지하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공공기록물법 시행령 제54조의 2에는 공수처장의 요청으로 폐기 금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확히 규정돼 있다. 따라서 공수처장이 즉시 폐기금지를 요청하면 된다.
문제는 통신기록이 민간 회사의 기록일 수 있고, 공공기관의 기록이라 해도 관리 대상 기록이 아니므로 폐기금지 조치를 할 수 없다고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민간 회사의 기록이라면 공공기록물법으로 강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공공과 민간 영역의 엄밀한 구분이 필요하다. 또 공공기관에서 생산한 기록이라고 해도 보존가치가 없다느니 관리대상이 아니라느니, 심지어는 공공기록물법상 기록에 해당하지 않는다느니 등의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폐기금지제도를 도입한 의의와 취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폐기금지 제도는 채해병 사건과 같은 국가적 사안이 기록을 확보할 수 없어서 진상규명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막기위해 도입된 제도다. 따라서 이번 채해병 사건은 폐기금지제도를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사안이다.
결국 어떤 기록에 대해 폐기금지 제도를 적용할 것인가는 직무관련성 여부가 관건인데 대통령, 대통령실, 국방부, 해병대 사이에 오간 문서 등 통신기록은 채해병 사건과 관련한 통화이므로 직무 관련 기록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적어도 공공영역에 있는 기록이라면 폐기금지를 선언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사실 수사(압수수색)나 재판 과정에서 기록이 확보되기도 하지만 여태껏 우리가 수없이 경험했듯이 기록이 없어서 사건의 진상을 온전히 밝혀내지 못한 일이 너무 많았다. 세월호 참사는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록 확보 투쟁 중이다. 따라서 기왕 공공기록물법에 폐기금지라는 적절한 제도가 있으니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공수처와 국가기록원이 적극적으로 폐기금지 제도 행사를 검토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