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가 2012년 변호사 시절, 친일 재산의 국가귀속을 반대하며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변호사로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친일 재산의 국가적 조사와 국고 환수를 규정하고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하 친일재산귀속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대법원에 낸 위헌법률심판제청의 신청에도 참여했던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로 확인됐다.
윤석열 새 정부 초대 내각의 구성원 중 한 명인 이 후보자가 친일 후손들의 개별적인 친일 재산 국가 귀속 취소 소송에 변호사로 참여한 것을 넘어서, 대한민국 헌법의 근간인 3·1운동 정신을 잇고 친일 청산을 통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운다는 의미가 담긴 '친일재산귀속법'의 제정 취지를 부정하는 사건에도 변호사로 참여한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고위 법관 출신 '전관'으로서 이름을 올린 것이고, 특히 해당 재판의 성격과 쟁점이 뭔지 전혀 알지 못 했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
이 후보자는 2007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끝으로 퇴임한 뒤 '법무법인 율촌'에 변호사로 재직했던 고위 법관 출신의 '전관'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중추원 참의를 지낸 친일파 방태영의 후손 9명이 친일 재산의 국가귀속에 반발하며 2012년 제기한 소송(대법원 2012두2566)에서 원고인 친일 후손의 변호를 맡았다. (관련 기사: 이상민, 친일 재산 국가귀속에 저항한 친일후손 변호)
첫 보도 당시, 고위 법관 '전관'으로만 이름 올렸을 뿐, 법률 검토 안 해
4월 27일 첫 보도 당시, 이 후보자 측은 "대법원 재판연구관 이상을 지낸 고위 법관 출신의 변호사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담당 변호사로 이름을 올리는 관행 때문에 변호인단에 참여하게 된 것일 뿐, 친일 재산의 국가 귀속과 관련한 법률 검토 등을 직접 맡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즉, 고위 법관 출신의 전관으로서 소송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려줬을 뿐, 친일 후손을 직접 변호하지는 않았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 후보자는 "일반적인 국민과 마찬가지로 친일 재산 환수 등을 통한 친일 청산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고위공직자의 필수 자질인 역사의식에 아무 문제가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이상민 후보자, '친일재산귀속법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참여 확인
그러나 뉴스타파가 이 후보자가 변호사 시절 수임한 사건 내역을 추가로 확인한 결과, 이 후보자의 역사의식을 의심할 만한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이 후보자가 친일파 방태영 후손의 변호사로 참여한 친일 재산 국가귀속 취소 소송(대법원 2012두2566)의 판결을 앞두고 있던 2012년 2월 21일, 이 후보자를 포함한 법무법인 율촌의 변호사들은 친일 후손들을 대리해 대법원에 친일재산귀속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친일 후손들이 1심과 2심에서 잇따라 패소하자, 친일재산귀속법의 위헌성을 제기하며 친일 후손들이 재산 피해를 입는다는 항변 논리를 추가로 내세운 것이다.
친일재산귀속법은 2005년에 제정됐다. 이 법률에 근거해 해방 이후 60년 만에 친일 재산을 환수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기회가 생겼다. 이 법률에 따르면, 친일 재산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 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를 받은 재산'을 포괄하고 있다. 시기적으로는 국권 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시작 시점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 때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축적한 재산이다.
친일 후손, '친일 재산의 국가 귀속은 헌법에 위배' 주장
그런데, 친일파 방태영의 후손들은 1904년 러·일전쟁 때부터 1945년 8월 15일 사이에 선대가 취득한 재산을 모두 친일 재산으로 추정해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사유재산제도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법무법인 율촌은 이러한 친일 후손들의 주장을 근거로 친일재산귀속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한 것이다. 어떻게든 친일 재산의 국가 환수를 막아보겠다는 속셈이었다. 그리고 이 후보자도 바로 이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대리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친일 재산의 국가귀속에 반대하는 개별 소송부터 위헌법률심판제청까지 대법원에 제기했던 법률 행위는 일제강점기 친일파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해 후손들에게 물려준 친일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 했던 친일재산귀속법 자체를 무효화하려는 시도로써 친일청산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 이 후보자는 친일 후손을 대리해 친일재산귀속법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이상민 후보자와 친일 후손들의 갖은 노력에도 친일 재산의 국가 귀속에는 어떤 문제도 없었다. 대법원은 친일 후손들의 상고는 물론,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모두 기각, 즉, 완전 패소 판결했다.
뉴스타파는 문제의 친일재산귀속법 위헌법률심판제청 사건(2012아23)의 판결문을 확인했다. 재판은 양창수, 박병대, 고영한, 김창석 등 4명의 대법관이 맡았고 <일치된 의견으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대법원은 먼저 국가가 귀속시킨 재산이 반민족행위를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 아니라는 사실만 입증하면 귀속 재산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에 친일재산귀속법에는 위헌성 문제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친일재산귀속법 제2조 2호'에 명시된 대로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 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어디까지나 '추정'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 즉, 친일반민족행위자 측에서 <친일 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 아니라는 점만 입증하면 언제든지 위 추정을 번복시키는 것이 가능>한데, 어떤 부분이 위헌이냐고 되물은 것이다.
대법원은 또 <설령 국가의 실수로 친일 재산이 아닌데도 환수가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행정 소송을 통한 구제의 방도가 마련되어 있으므로 사법적 교정의 여지 또한 충분히 보장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경우 <법률을 집행하는 처분청 또는 이를 심사하는 법원이 그와 같은 입법 취지를 충분히 실현하지 못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인데 <법률 자체를 위헌이라고 보는 것은 입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못 박았다.
친일 후손의 친일재산 환수 저항에 대형 로펌이 '조력자'로 나서
해방 이후 60년 만에 이뤄진 친일 재산의 국가귀속은 험난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친일 후손들의 저항도 거셌다. 2015년 뉴스타파가 확인한 소송 건수는 239건으로 202명의 친일 후손이 참여했다. 이런 후안무치한 소송은 대부분 대형 로펌의 법률 조력을 받아 진행됐다. 또 친일 후손들은 선대의 친일파 지정과 친일 재산의 국가귀속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도 제기했는데, 여기에도 친일 후손 42명이 참여했다.
특히 친일재산귀속법의 제정에 따라 2006년부터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가 활동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성과는 크지 않았다. 당시 조사 대상이 된 토지는 5천 필지, 2,181만㎡였다. 친일파가 일제로부터 받은 친일 재산의 추정치 4억 3,000만㎡의 5% 수준에 불과했다. 해방 이후 60여 년이 흐르는 사이, 친일의 대가로 얻는 이른바 알짜배기 땅은 이미 처분돼 버린 상태였다.
결국, 국가가 친일 재산으로 확정해 귀속한 토지는 1,322만㎡에 불과했다. 이 중에서도 독립운동가 후손을 위해 쓰겠다며 매각된 땅은 고작 135만㎡였다. 결국 4억 3,000만㎡로 추정되는 친일 재산 가운데 0.3%만이 매각 처리됐다. 이같이 친일 재산의 국가귀속이 미진했던 데에는 친일 후손들의 저항이 일차적 원인이었지만, 그들에게 개별 소송을 물론 위헌법률심판제청 등 법률적 조언을 하며 국가를 괴롭혔던 대형 로펌에도 적잖은 책임이 있다.
이상민, "친일재산귀속법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무슨 사건인지 모르고 이름만 올렸다"
뉴스타파는 이 후보자에게 독립과 항일에 뿌리를 두고 있는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친일재산귀속법 위헌법률심판제청의 신청 대리인으로 나섰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를 통해 변호사로서 취득한 수임료 등 금전적 이익의 규모를 공개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전관으로서 이름만 올렸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심지어 본인의 이름이 올라간 재판의 성격과 쟁점이 뭔지 잘 알지 못했다는 황당한 답변까지 내놨다.
이 후보자는 자신의 인사청문회 준비를 지원하는 행정안전부 대변인을 통해 "당시 로펌에서 사건 관여 여부와 상관없이 대법원 재판에 재판연구관 출신들을 담당 변호사로 포함시키는 관례에 따라 이름만 기재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사건의 수임 과정은 물론 변론 과정에 일체 관여하지 않아, 이 사건이 무슨 사건인지,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고, 사건의 수임료 액수도 전혀 알지 못하고 취득한 금전적 이익 또한 없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윤석열 당선자의 충암고, 서울대 법대 후배로 윤 당선자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이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다음 달인 5월 3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