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청춘

Nov. 25, 2022, 04:05 PM.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와 뉴스타파함께재단은 더 나은 언론 생태계를 위해 독립PD, 감독과 연대와 협업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함께재단과 리영희재단이 주관한 ‘2021년 리영희 우수 다큐 공모전’에서 지원작으로 선정된 김상패 독립감독의 다큐멘터리 '민들레청춘'은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주민의 사드 반대 투쟁과 일상을 동시에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영화로도 제작 중입니다.-편집자 주-

소성리의 양지뜸

마을에서 가장 볕이 잘 들어오는 곳, 회관 마당 앞 길목인 양지뜸은 소성리 할매들의 쉼터다. 할매들은 여기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서로 살아 온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런데 양지뜸 할매들 이마의 주름이 선명해졌다. 세월 때문만은 아니다. 공권력의 횡포가 대추리, 강정마을을 거쳐 이번엔 소성리로 왔다. 해가 잘 드는 이곳에서 할매들의 사드 반대 투쟁이 6년째 이어지고 있다. 나는(김상패 감독) 이곳으로 예기치 못한 귀촌을 했다. 소성리의 고통은 이제 내가 살아갈 공간의 미래다.

귀촌

영화는 나의 오랜 꿈이었다. 마을의 일상을 촬영하고 싶었고 할매들은 공권력의 횡포에 맞서며 나의 카메라에 의지하곤 했다. 주민들은 카메라를 든 나를 감독님이라 불러 주었다. 기분은 괜찮았지만 심신은 피곤했다. 연일 계속되는 촬영과 무더위, 그리고 시골의 열악한 환경은 나를 힘들게 했다.
소성리 할매들은 인심이 후하고 친절했다. 그러나 때때로 문화적인 충돌이 일어났다. 나의 서투른 농사일은 할매들에게 우스갯감이 되기도 했고, 때론 근심거리가 되기도 했다. 내 몸을 써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고된 노동을 별로 힘들이지 않은 듯 끝내고 저녁에 난롯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아침 일찍 일을 나가는 주민들이 경이로웠다.

NO THAAD! NO NUKE!

성주댁 길남 할매 집 담벼락에 ‘NO THAAD! NO NUKE!’라는 구호가 적혀 있고, 앞에서 나락이 널려 있다. 소성리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곳, 주민들은 매일 그 앞 마을회관에 모인다. 길남 할매는 골프장이 생기며 이 도로가 넓어지고 마을이 흉흉해졌다고 말했다. 양지뜸을 지나는 경찰과 장비들을 보며 예전 담 옆 문간방에 첫차와 막차를 몰던 버스 기사의 잠을 재워 주고 밥을 해줬던 할매의 가슴은 타들어 간다. 빨래터에서 만난 할매는 퇴직한 큰아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면 함께 살 계획이었는데 사드 때문에 오지 말라 했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성리와 사드 장비

애초 사드 장비와 이를 운용하기 위한 x밴드레이더를 성주 성산포대로 배치한다는 결정은 성주 군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국무총리이었던 황교안은 달걀 세례 봉변을 당하는 등 극심한 저항을 받았다. 그러자 정부는 계획을 변경해 2016년 7월 13일 성주군과 김천시의 경계 지역인 초전면 소성리로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결정한다. 그곳은 불과 80여 명의 주민, 특히 노인들이 대부분인 산골 마을이다.
소성리 주민들에 대한 현 정부의 태도와 공권력의 침탈을 보면 2006년 5월 4일 대추리를 폭력으로 물들였던 평택기지 행정대집행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 연상된다. 이것은 그 뒤 제주 강정으로, 군산 하제마을로 이어진다.
사드 배치를 저지하려는 소성리 주민들의 끝없는 투쟁은 싸움이 아닌 평화의 울림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잊혀진 듯한 그들의 싸움을 기록하고 알리고 싶은 것이 이 영화를 만들고 완성한 이유이기도 하다.

평균 나이 80세의 '민들레 청춘'

6년이 지나고 이젠 점점 기력이 달린다. 69세의 대구댁 순분, 86세의 봉정댁 금연, 85세의 진기댁 상돌, 92세가 된 성주댁 길남, 83세의 수초댁 경임, 모두 베테랑 농사꾼들이다. 도토리를 한 짐 주워 오고, 가을이면 몇백 근의 고춧가루를 수확해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주위에 판매도 한다.
할매들은 돋보기를 끼고 ‘함께 가자’, ‘동지가’ 등의 '뻘갱이'(할매들의 초기 표현) 노래를 배우지만 도무지 외울 수가 없다. 그러나 유행가를 개사한 노래는 술술 외워진다. '민들레 청춘', "내 나이가 어때서, 이 세상에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 투쟁하기 딱 좋은 나인데~”, 어설프게 시작한 그 노래들이 투쟁의 원동력이 되고 할매들의 일상이 된다.

현재의 나, 그리고 소성리 그 곳에는

코로나19로 인해, 그리고 다른 영화 편집을 위해 소성리를 떠났다. 소성리는 아직도 전쟁이다. 보고 싶은 사람들 때문에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불법 임시기지에 공사를 위하여 또다시 공권력의 침탈이 예고됐다. 밤늦게 소성리로 향했다. 2017년 9월 7일의 상황처럼 반경 10킬로 이내를 경찰이 통제하고 있었다. 빼곡히 들어찬 병력, 코로나 방역은 뒷전이었다. 2020년 코로나19로 세상과의 단절된 사이 공권력은 더 자주 더 강하게 마을을 밀어붙였다. 
2021년 5월부터는 일주일에 두 차례 매일 공권력의 침탈이 계속되고 주민들은 완전히 패닉에 빠진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2022년 6월 9일부터 주5일 작전을 전개한다. 2022년 9월 14일 기습적으로 미군 차량과 사드 운용을 위한 유류가 반입된다. 그리고 사드 장비의 성능개량을 위한 장비 교체를 위해 다시 소성리를 침탈한다. 할매들은 양지뜸 도로에 누워 실려 나간다. 순분은 할매들을 지키기 위하여 결사적이다. 

마을회관과 양지뜸

마을회관은 할매(주민)들의 집과 동일한 공간이다. 회관은 서로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상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공동체로서 인식한다. 마을회관에서 지난 3년을 함께한 사건과 인물들의 모습을 지켜본 나의 시선이 카메라를 통해 투영된다.
마을 회관에 걸린 1960년 소성리의 흑백 전경 사진은 할매들의 모습과 동일한 무게이다. 할매들의 방, 마루의 시계와 밥통, 부엌, 조금 젊은 엄니들이 해내는 비빔국수, 수제비와 고구마를 넣은 이 지방의 별미 갱시기, 떡국 등이 할매들의 일상과 함께 자리한다.
회관 앞 길남 할매 집과 그 앞도로가 양지뜸이다. 마을에서 제일 햇볕이 잘 드는 곳, 그곳은 할매들의 일상 공간이다. 양지쯤이 미군 차량이 지나가고 경찰이 오가는 곳이 되는 것을 할매들은 용납할 수 없다.

할배와 할매들은 마을의 움직이는 장승이다

처음 소성리를 찾았을 때 나의 눈엔 달마산과 그 아래 버티고 선 오래된 나무가 들어왔다. 소성리를 떠난 지금도 그 당산나무는 나의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다.
수백년 된 당산나무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계속 지켜봐 왔고, 주민들의 휴식처가 돼 그들을 응원한다. 당산나무는 소성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흐름 속에 여느 시골의 동구 밖에 서 있는 장승과 같은 느낌이다. 그 나무는 내게 마치 카메라로 이곳의 사정을 알리라는 듯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버티고 있다.
소성리엔 멧돼지가 나타나야 경찰이 오곤 했다. 사드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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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김상패 독립감독
촬영/편집김상패, 나단아
프로듀서장광연
웹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