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하게도 항상 줄에 앉은 새처럼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아들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 예감은 적중했다.
10월 하순 어느 날이었다. 무슨 일인지 2~3일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던 아들이, 웬 낯모를 사람 둘을 데리고 집에 와서, 잠시 제 방에 들어가 무언지 뒤적이는가 싶더니 그대로 나갔다. 그러고는 또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이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며느리에게 물어봐도 신통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부턴가는 며느리도 데모를 한다고 밤늦게 들어왔다. 참으로 마음을 잡을 수가 없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들이 결국 서대문 구치소에 구속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안절부절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남들처럼 억세고 강한 기골도 못 되는 터수에 철창생활이라니.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머릿속이 뒤숭숭하고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잡고, 하나님께 위안을 받고자 기도했다. 너무도 기막힌 일이지만, 의(義)를 위해 싸우다 받는 형벌은 참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정의를 외치다 죄 없이 받는 고통은 결코 헛되지 않고 값진 희생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돌리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박종만 위원 어머니의 회고록 '나의 한 평생' 중
꺼져가는 언론자유의 불씨를 안고 그들은 감옥에 끌려들어 가기도 하고 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그 불씨를 끝내 지켜왔다. 이제 그들이 간직했던 언론자유의 불씨는 한국 언론의 심장에 옮겨 놓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복직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새삼스럽게 전개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고,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말을 더한다면, 한국 언론이 양심을 회복했다는 징표를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도 우리는 그들을 하루 빨리 복직시킬 것을 요구한다.기자협회보 1980.4.25
원고 | 박종만 동아투위 위원 |
디자인 | 이도현 |
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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