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면 우리는 강하다" #IJAsia18
2018년 10월 07일 11시 15분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타임즈의 보도로 미투 운동이 촉발된 사실 기억하시죠? 6일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열린 국제탐사저널리즘 아시아 총회에서는 ‘아시아의 미투 보도’(Reporting #MeToo in Asia)라는 주제의 세션이 열렸습니다.
미투 운동이 미국에서 촉발된 만큼 미국인 패널이 먼저 미투 운동이 미국 문화와 미디어에 끼친 영향에 대해 설명했는데요. 도린 와이젠하우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교수는 “오늘은 미투에 대해 얘기하기 매우 적절한 시기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꼭 1년 전인 2017년 10월 6일 뉴욕타임스가 할리우드 거물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이 수십년에 걸쳐 배우, 영화사 직원, 모델 등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확산됐기 때문이죠.
도린 교수 발표에 따르면 미국에서 미투 운동이 촉발된 후 전세계 85개국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미투 해시태그(#MeToo)가 가장 많이 사용된 국가는 역시 미국이었고 그 다음은 영국, 캐나다, 인도, 호주, 프랑스, 스웨덴, 독일, 남아프리카, 콜롬비아 순이었다고 하네요.
미투 운동 1년 후 지금 미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미국에서는 연예계뿐만 아니라 많은 산업군에서 400건 이상의 성추행 사건이 폭로됐다고 합니다. 하비 와인스타인은 현재 가택 연금 상태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데 종신형을 선고 받을 수도 있다고 하네요.
미국 노동부 산하 평등고용기회위원회(U.S.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에 따르면 미투 운동으로 인해 성희롱 신고 건수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했고, 사업주에 대한 소송도 50% 증가했다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법률이 개정되는 성과도 있었는데요.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스웨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은 폭력이나 협박이 있었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분명하게 언어나 신체적으로 동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모든 성관계는 강간으로 규정하는 새로운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성폭력과 관련해 법적으로는 거의 진전되는 것이 없는 한국의 상황과는 매우 대비된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도린 교수에 이어 잉찬(Ying Chan) 홍콩 대학 교수가 발표한 중국의 미투 운동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잉찬 교수는 뉴욕에서 기자로 23년을 일했고, 홍콩 대학의 언론학 센터 설립 이사이자 중국 샨토 대학의 언론대학원 설립 학장을 지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미투 해시태그를 달면 인터넷에 올린 글이 삭제되는 경우가 많아 네티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중국어 발음으로 ‘me’와 같은 ‘米(쌀 미)’, ‘too’와 같은 ‘Tu’(토끼) 그림을 이용해 새로운 ‘미투’ 형상을 만들어 냈다고 하네요.
잉찬 교수는 중국에서 진행된 몇 가지 조사 결과를 이날 소개했는데요. 그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광저우 성교육센터가 2017년 고등교육기관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6천592명의 응답자 가운데 69.3%가 다양한 형태의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4% 만이 당국에 신고를 했다고 하네요. 성폭력 피해자의 상당수가 당국에 신고도 하지 못한 채 피해를 감내해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죠. 또 다른 조사 결과 역시 충격적이었습니다. 중국 여기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였는데요. 1천762명의 응답자 가운데 416명의 유효 응답이 있었는데 이 중 무려 83.7%가 성희롱을 당한 적 있다고 답한 것이었습니다. 그 중 42.4%는 한 번 이상 피해를 당했고 18.2%는 다섯 번 이상이라고 답했습니다. 잉찬 교수는 “뉴스룸 안의 남성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인인 시오리 이토 기자는 성폭력 피해 당사자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 큰 울림을 주었는데요. 시오리 기자는 “피해자의 4% 정도만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경찰에 신고를 해도 남자와 여자의 문제로 치부해버리고 경찰이 제대로 조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 미디어의 보수적인 현실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요. 시오리 기자는 “일본의 미디어들은 성폭력 범죄에 대해 보도하는 것을 꺼려한다”며 “미디어가 이상적인 희생자 ‘상’을 만들고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에서는 ‘Me Too’라는 표현보다는 ‘We Too’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오리 기자의 피해 사실은 뉴욕타임즈에서 심층 취재해 보도했고 이후에서야 일본 언론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네요.
시오리 기자의 발표는 기자들이 성폭력 피해자를 취재할 때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 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줬습니다.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말할 때마다 트라우마가 계속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기자이기도 하지만 피해자로서 인터뷰를 당해보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당신을 신뢰하고 믿는다고 말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안의 이야기를 밖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시오리 기자는 미투 운동 1년을 즈음해 최근 있었던 두 가지 사건을 대비해 언급했는데요. 첫번째 사건은 어제(5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무퀘게와 무라드를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 두번째 사건은 최근 요시무라 일본 오사카 시장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위반부 기림비 유지 입장에 반발해 자매결연 파기를 선언한 것입니다. 무퀘게는 내전 과정에서 성폭행이나 신체 훼손을 당한 여성 피해자를 치료하고 재활을 돕는 데 평생을 보낸 콩고민주공화국의 산부인과 의사이고, 무라드는 IS가 자행한 성노예 피해자이자 이라크 소수민족 야지디족 여성인권운동가입니다. 시오리 기자는 “어제 노벨평화상 수상자들로 이들이 선정된 것은 매우 좋은 뉴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시오리 기자는 일본이 아닌 타국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날 세션에 참석한 한 일본인 기자는 시오리 기자가 일본으로 돌아와 기자로 활동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날 세션에 참석한 한 파키스탄 여성 기자는 세션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자로서 ‘me too’ 발언을 해 장내를 숙연하게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던 시오리 기자는 울음을 터뜨렸고 두 기자는 뜨거운 연대의 포옹을 했습니다. 홍콩에서 처음 미투 보도를 했다는 소피아 황 독립 기자는 세션에 참석한 아시아지역 기자들에게 연대를 위한 즉석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잉찬 교수는 “15분 발표로는 이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며 “미투 운동을 주제만 다루는 컨퍼런스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잉찬 교수는 미국의 미투 사례는 중국 내에서 ‘다른 문화’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의 사례, 한국의 사례 등이 번역돼서 중국에 알려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어찌보면 아시아에서 미투 운동의 시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백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동안 한국에서도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 운동이 있었고 많은 보도들이 있었습니다. 혹시 도쿄에서 미투 컨퍼런스가 열린다면 한국 사례도 함께 발표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한 세션이었습니다.
정리 : 뉴스타파 조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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