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성>그후, "울산이 월성이다"

2020년 03월 12일 15시 15분

지난해 12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 뉴스타파와 독립감독과의 협업 1호 작품인 영화 <월성>이 개봉됐습니다. 황분희, 오순자 등 월성 핵발전소 옆에 살아가는 경주시 양남면 ‘월성 사람들’이 평생 겪어야 했던 고통과 희생을 다룬 다큐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개봉할 무렵, 월성 원전에 핵폐기물 저장소를 추가 증설하는 방안이 논의되면서 영화 <월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영화 <월성> 제작진은 ‘월성’ 주인공들이 영화 개봉 이후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또 핵 폐기물 저장소인 ‘맥스터’ 추가 건설 논의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월성을 다시 찾았습니다.

▲ 영화 <월성> 주인공 황분희, 오순자 할머니, 1월 22일, 청와대 앞에서 맥스터 반대 기자회견을 가졌다.

오순자 할머니, “월성 이후 한 달,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오순자 할머니는 월성 원전에서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산 속에서 염소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과 아들 등 가족 3명이 모두 갑상선암 환자입니다. 지난해 취재 당시, 오순자 할머니는 외로움과 생활의 어려움으로 얼굴이 어두웠고, 지병으로 힘든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난 2월, 제작진이 오순자 할머니를 다시 만났는데, 지난해보다 한결 밝아 보였습니다. 오 할머니는 영화 <월성> 출연 이후, 삶의 희망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말하지 못한채 수십년 동안 앓아왔던 고통을 관객들로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위로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오 할머니는 황분희 할머니와 함께 “월성원전 인접주민 이주대책위”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구나. 모든 일이 잘 되겠지. 그런 마음이 있어요, 항상 내 마음에 있어요. 어떻게든 내가 살아서 우리 손자를 키워줘야 되고, 내 자식들 억울한 것도 엄마로서 하소연도 하고, 내가 뛰어다니면서 어디라도 다니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겠다 싶은 생각을 가지고, 그런 용기를 가지고 있어요”

영화 ‘월성’ 주인공 오순자 할머니

▲ 오순자 할머니가 키우는 염소들. 최근 아기 염소 5마리가 새로 태어났다.

황분희 할머니가 받은 선물, 나아리 상인들의 맥스터 반대 동참

영화 ‘월성’의 또 다른 주인공 황분희 할머니의 일상은 한결 같습니다. 농부로, 할머니로, 또 탈핵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아침이면 손자의 아침식사를 챙긴 후, 곧바로 경주시내로 나가 맥스터(핵폐기물 저장시설) 추가 건설을 반대하는 전단지를 나눠줍니다. 지난해보다 호응해주는 경주 시민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최근 황분희 할머니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황 할머니가 살고 있는 양남면 나아리 상인들이 맥스터 반대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까지 나아리 상인들은 한수원의 눈치가 보였는지, 반대 활동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부터 한수원 월성본부 정문 앞에 새로 천막을 설치하고 맥스터 반대 집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이주대책위 사람들과 함께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이같은 나아리 상인들이 맥스터 반대에 나서는 데, 황분희 할머니가 애를 썼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지난해 여름부터 상인들을 여러차례 만나 핵폐기물의 위험성을 알리고 맥스터 반대에 함께 나서자고 설득했습니다. 영화 ‘월성’ 취재 당시, 이주대책위 주민 8명 정도만이 해왔던 집회는 이제는 나아리 상인들까지 합해 30명으로 늘었습니다.

“이제 맥스터를 끝까지 반대해봐야지. 반대해서 맥스터를 못짓게 되면, 월성원전 4기를 모두 정지시킬 것 아니에요. 1기만 세워도 좋은데, 4기를 다 세우면 주민들한테는 대단한 거지요. 방사능이 그만큼 덜 나오잖아요.”

영화 ‘월성’ 주인공 황분희 할머니

▲ 황분희 할머니가 나아리 상인들과 함께 맥스터 반대 행진을 하고 있다.

울산 북구, “주민투표로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겠다”

지난해 한수원이 월성 원전 맥스터 추가 건설 계획을 발표한 뒤, 울산 북구 주민들도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울산 북구는 월성 원전에서 반경 7~2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데다, 약 20만 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맥스터 추가 건설과 관련 여론수렴이나 공론장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원전관련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5월 핵 폐기물 관리정책을 공론화하고, 맥스터 추가 건설에 대한 지역 주민의 여론을 수렴할 목적으로 자문기구인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재검토위는 경주시가 구성한 지역실행기구와 여론수렴을 위한 협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행정 구역상 월성원전이 울산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울산 북구 주민들은 여론 수렴 대상에서 배제됐습니다.

울산 북구 주민들은 크게 반발 했습니다. 맥스터 추가 건설 여부를 결정하는 논의에 자신들도 참여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업통상자원부에 주민투표 청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1월부터 주민투표 청원에 동의하는 서명을 받기 시작했는데, 2주 만에 1만 1,483명이 서명했습니다.


지난 2월 19일, 울산북구 주민들은 산업부에 주민투표 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울산 북구 주민들의 여론이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통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산업부와 재검토위원회는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산업부는 제작진과의 통화에서 3월 말까지 울산 북구 주민투표를 수용할 지 여부를 통보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정부는 지역 주민들의 여론 수렴을 거쳐 올해 안에 월성원전 맥스터 추가 건설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이번 만큼은 과거와 달리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의 여론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까요?


취재, 촬영 : 남태제, 부성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