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회사’, 학생 통장으로 돈 세탁 의혹
2015년 03월 06일 22시 50분
대학원에 들어와서 니가 원한다고만 하면 내가 하던 공부를 이어서 할 수 있게 해줄게. 내가 잘 키워줄게
2004년 상명대 환경조경학과에 입학했던 이영이(30)씨. 그는 학부 졸업을 앞두고 조경학계 원로교수로 알려진 이 모 교수로부터 석박사 통합과정 진학 제안을 받았다. 학과에서 유일하게 조경기사 자격증을 따는 등 공부 욕심이 많았던 이 씨는 이 교수의 제안에 취업에서 대학원 진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대학원 입학 첫해, 이 교수는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 중 하나를 이 씨에게 강의를 맡기기도 했다. 한때는 연구실에 이 교수가 이 씨만 편애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는 이 교수 밑에서 수많은 국가 연구용역을 수행했고, 연구실 보고서 대부분을 작성했다. 대학원 생활 4년 동안 10건이 넘는 국가 연구용역에 참여했고, 그렇게 그는 이 교수 밑에서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다.
이 씨는 연구실 서열 순위에 따라 정해진다는 연구실 총무도 맡았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1년 반 넘게 총무를 맡으면서 연구실비를 관리했다. 그리고, 그동안 존경했던 지도교수의 이면을 보게 됐다. 수많은 연구원들의 인건비, 여비 등이 교수 개인이 관리하는 통장으로 모두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씨가 속한 전통조경연구실은 대학원에 입학하면 가장 먼저 학생들의 연구비 통장과 도장을 받아서 총무가 통합 관리하도록 했다. 수많은 학생들 통장의 비밀번호는 똑같이 5302. 이 모 교수의 교수실 방 번호 뒷자리다.
이 모 교수는 연구실 총무들에게 ‘산업과학 01’, ‘산업과학 02’ 통장으로 연구들의 인건비와 여비를 모두 입금하라고 했다. 이 통장들은 마치 연구비 공금통장으로 보이지만 교수 개인통장이다. 설계회사를 운영하다 부도를 내고 신용불량자가 된 이 모 교수는 연구비 차압을 막기위해서라며 다른 총무들 명의로 차명통장을 개설해 자신의 연구 인건비 통장으로 활용했다.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할 국가 연구비가 차명통장으로 들어간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학생들에게 지급해야 할 국가연구비, 학회 연구비 등이 학생들도 모르는 사이 교수의 차명통장으로 입금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그가 쉽게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총무들은 때때로 교수 부인에게 인건비를 입금하기도 했다. 교수가 연구를 하지 않고 미국에 방문교수로 나가있던 2005년 8월에도 1700만 원을 해외로 송금했다. 이렇게 이 교수가 자신과 부인 명의로 가져간 돈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2억 8000만 원에 달했다. 이렇게 거금을 가져갔지만 이 교수가 연구비로 지출한 돈은 한 달 평균 58만 원에 불과했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연구실 내부 정산 자료 57개월 치를 분석한 결과이다.)
교수가 학생들의 연구비를 모두 가져간 만큼, 연구원들의 등록금을 보태주거나 기숙사비를 지원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그동안 교수에게 입금한 인건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이 씨는 2000만 원 상당의 인건비를 교수에게 입금했고, 360만 원, 280만 원의 등록금을 두 번 받았다. 인건비 2300만 원을 입금하고도 등록금 한 푼 지원 받지 못한 연구원도 있었다. 그 연구원은 자신의 인건비는 교수에게 바치고 생활 유지를 위해 때때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체 이 많은 학생들의 인건비들은 어디로 가서, 어떻게 쓰여지는지 이 씨는 의문스러웠다.
이 씨는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지만 지도교수에게 밉보이기 싫어 참았다. 지도교수에게 한 번 잘 못 보이면 교수의 꿈도 접어야 할 만큼 남은 대학원 생활이 힘들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2011년 8월 대학에 감사원 감사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당시 부총장을 지냈던 지도교수의 지시로 감사에 대비해 마치 학생인건비를 제대로 지급한 것처럼 인건비 자료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학내엔 오히려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연구실 총무가 연구비를 허투로 쓰고 다닌다는 등 이 씨를 둘러싼 소문이 무성했다. 연구비를 꿰뚫고 있는 이 모 교수는 해명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연구용역에서 배제하는 등 이 씨에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 점점 이 교수와 이 씨의 관계는 틀어지고 있었다.
이 씨는 2012년 이 교수에게 문제제기를 했다. 자신에 대해 해명해주지 않는 점과 연구용역에서 배제하는 점 등을 문제 삼았다. 그리고 연구비의 불투명한 사용에 대해서도 떳떳하게 밝히라고 요구했다. 그런 문제제기에 이 씨와 이 교수의 관계는 더 틀어졌다. 그리고 점점 연구실에서 내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 씨는 다른 총무와 공식적으로 학교에 문제제기를 했다. 2014년 이사장실에 연구비 착복 의혹 등을 제기했고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2014년 8월 20일 공식적으로 총장실에 진상조사위원회를 열어줄 것을 요구했다. 총장실에서도 바로 진상조사위원회를 열어주겠다고 답했다. 이 교수도 다음날 이 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학교에서 나를 직위해제 하고 진상조사위를 연다고 했다”고 알려왔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교수는 학교에 사표를 제출했고 학교는 즉각 수리했다. 졸업식이 있던 날 이 교수의 사표는 수리됐고, 그 뒤로 모습을 감췄다.
결국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학교는 교수가 사퇴한 뒤에서야 자체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해당 교수가 없다는 이유로 반쪽 조사에 그쳤다. 교수가 없어 진실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사이 이 씨는 학내에서 스승의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제자가 되어버렸다. 이상한 학생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학생들이 빠져나가 지난해, 3년 째 수업하던 강의에서도 물러나게 됐다.
아무도 나서주지 않았다. “이 모 교수가 직위를 이용해 재산을 챙긴 것”이라는 지적을 한 교수도 있었지만 겉으론 조용했다. 함께 연구용역을 했던 다른 교수들도 등을 돌렸다. 교수들은 통상 연구실에서 일어나는 연구비 관행을 혼자만 문제 삼는다고 나무랐다. 그리고 다른 총무에게는 오히려 차명통장의 명의가 총무이니 오히려 연구비를 총무가 쓴 게 아니냐고 몰기도 했다.
결국 총무들은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7개월 째 상명대에서, 교육부에서, 국회에서 시위를 벌이며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 교수에 대해 진상조사를 벌이겠다더니 돌연 사표를 받은 학교가 제대로 진실을 가려줄 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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