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실 총무는 노동자인가 장학생인가?

2019년 03월 25일 09시 25분

※이 기사는 2019년 1월 뉴스타파 탐사보도 연수에 참가한 연수생들(장수윤 박지현 민서영 나태연)이 실습 과제로 제출한 결과물입니다.

일주일에 7일 다 나오고 한 달에 2, 3일밖에 못 쉬었어요. 근무시간은 공식적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였고, 한 달 기준으로 50만 원 받았습니다.

독서실 총무 경험자 A씨

서울 도봉구의 한 독서실에서 일했던 A씨. 거의 쉬는 날 없이 하루 10시간 근무했지만 한 달에 50만 원밖에 받지 못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독서실에서 주5일 하루 9시간을 일했던 B씨는 한 달에 겨우 30만 원을 받았다. 두 곳 모두 법이 정한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

지난 1월, 실제로 독서실에서 최저임금이 제대로 지급되고 있는지 뉴스타파 탐사보도 연수생들이 직접 확인했다. 구인사이트를 통해 독서실 총무 아르바이트에 지원하고 면접도 보러 갔다. 채용 공고에는 최저임금을 지급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면접에서 알게 된 사실은 달랐다. 한 독서실 사장은 면접에서 “독서실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으니 35만 원에 열람실 자리를 하나 주겠다”며 “35만 원은 학습장려금”이라고 설명했다.

독서실 총무의 업무는 다음과 같다. 이용자들의 사용 만기·연장·예약, 신규등록을 관리한다. 수시로 내부 온도도 조절한다. 마감 때가 되면 분리수거와 청소를 한다. 매주 카드전표와 대조해서 매출을 확인한다. 노동 강도는 세지 않다. 그러나 대다수의 독서실에서는 총무를 한 명만 둔다. 총무는 독서실 사장을 대신해 모든 일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A씨는 “처음 생각과 달리 개인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시간은 적었다”고 토로했다.

연수생들이 면접에서 만난 독서실 사장들은 하나같이 “총무 자리는 공부하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독서실 총무로 근무했던 B씨는 “(공부를) 꾸준히 집중해서 할 수 없다”며 “학생들이 오면 해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있고, 실장(독서실 사장)이 해외를 가도 CCTV를 보면서 계속 지시한다”고 말했다. 업무 지시 메시지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거나 공부를 하지 못하고 사장의 연락을 기다려야 했다.

이수인 노무사는 “대기시간이라고 해도 총무가 자유롭게 밖에 나가서 개인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사업주의 지시하에 움직인다” 며 “정해진 장소 안에서 대기하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해도 사업주의 지시하에 있는 시간이므로 다 근로시간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독서실 총무가 ‘월급’을 받으려면 ‘근로자’임을 인정받아야

2017년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형사부는 항소심 재판에서 독서실 총무와 업무 성격이 비슷한 고시원 총무에 대해 “근로자성을 인정하라”는 판결(2017노922)을 냈다. 재판부는 “고시원 총무는 정해진 업무를 하지 않는 시간에 자유롭게 공부하거나 자신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이것은 감시·단속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볼 근거는 되겠지만, 근로자성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자'에 대해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규정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자'는  ‘사용종속관계’를 전제로 한다.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고용되어 근로를 제공한다는 것은 사용자의 지휘·명령을 받아 그가 원하는 내용의 일을 하는 것을 말하며, 이를 사용종속관계라 한다. 법원은 고시원 총무가 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는다고 보고 고시원 총무가 근로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고시원 총무는 수시로 사장의 업무 지시를 통해 지휘·감독을 받는다. 근무 시간과 근무 장소도 사업주의 지배를 받는다. 노무 제공을 통해 임금을 받는다는 점도 고시원 총무와 사업주의 ‘사용종속관계'가 인정된 이유다.

김유경 노무사는 “기존의 고시원 총무 판결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 독서실 총무에 대입할 수는 없지만, 예전보다는 독서실 총무에 대해서도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가야 된다”고 말했다. 또 이수인 노무사는 “근로자라면 문제가 달라진다"며 “법에서 정한 최저임금 이상을 반드시 줘야 하고, 근로기준법에 따른 시간당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미만에 해당하는 월급을 ‘학습 장려금’ 명목으로 주고, 노동의 대가를 독서실 자릿값으로 떼우는 일부 독서실의 행태는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법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같은 아르바이트라도 독서실 총무는 다르게 해석하는 고용노동부

법원의 판결과 달리 고용노동부는 독서실 총무의 근로자성 판단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독서실을 떠나서 모든 미지급 사례마다 일일이 ‘근로자’인지 따져야 한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유경 노무사는 “노동부는 자체적으로 만들었던 행정해석으로 판단해 노동자성(근로자성)을 상당히 보수적으로 해석한다”고 지적했다.

원칙대로 직종을 가리지 않고 각각의 사례마다 면밀히 근로자성을 판단해야 하지만, 실제 판단에는 직종에 대한 근로감독관의 선입견이 일부 작용한다는 것이다. 노동청에 독서실 사장을 신고했던 A씨는 독서실 총무가 정당한 구제를 받을 수 있을 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는 “고용노동부의 도움이 거의 없었다. 내가 제시한 물증을 바탕으로 판단하지 않았다”며 “신고 사례를 그들의 관습적인 판단에 맞춰 적용하는 게 보였다”고 말했다.

독서실 사장들은 구인 사이트에 아르바이트 공고를 올린다. 독서실 총무는 그 공고를 보고 지원한 사람이다. 이들은 총무로 일했음에도 노동자가 아닌 장학생으로 취급 받았다. 아르바이트생으로 인정하고 정당한 월급을 주는 곳도 있었지만 극소수였다. 총무를 노동자로 보지 않는 독서실의 관행은 오래도록 이어져 왔다. 여전히 다수의 독서실은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런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이수인 노무사는 “헤어 디자이너, 골프장 캐디, 학원 강사, 그리고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오래 전부터 문제를 제기하여 공론화했기에 정치권에서도 관심 가졌다” 며 “소송 역시 계속 진행하니 판결도 나오고 조금씩 정리가 되는 것 같다. 독서실 총무는 최근에 쟁점이 된 직종이다. 계속 이슈화하면 어느 순간 돌아봤을 때 독서실 총무 문제도 정리되어 있을 거 같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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