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헛도는 참사 대책

2022년 12월 01일 20시 00분

이태원 참사 발생 11시간 뒤인 2022년 10월 30일 오전 9시 49분.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과 참사가 발생했다”며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어 “사고의 원인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향후 동일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 10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대통령실)
윤 대통령의 공언과는 반대로 정부의 참사의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은 꼬이고 있다. 발단은 대통령의 입이었다.
대국민 담화 다음 날인 10월 31일, 윤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을 용산 대통령실로 불러 확대 주례회동을 열었다. 
이날 대통령이 먼저 지적한 참사 원인은 ‘제도의 부재’였다.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인파사고 예방 안전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는 정부가 미처 손 쓸 수 있는 범위 밖에서 일어났다는 뜻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대한민국 법 규정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가 있다(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4조)고 명시돼 있다. 

내부 책임론에 선 그은 윤석열 대통령... 이후 정부는 ‘제도의 부재’만 거론

그럼에도 대통령의 발언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됐다. 주최자 없는 행사의 안전을 책임질 제도적 기반이 실제로 없었던 것이 아닌데도 정부가 ‘다중밀집 인파 사고 안전관리 지침’을 새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대표적이다.
참사의 원인이 ‘제도의 부재’로 지목되자 기존의 안전 시스템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즉, ‘제도의 오작동’에 대한 규명 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 11월 11일, 윤석열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길에 오르기 전, 성남 공항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사진 출처: 뉴시스)
이 국면에서 이득을 본 이가 있다. 이상민 장관이다. 11월 8일, 국회에 출석한 이 장관은 여전히 직을 지키고 있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의 표명을 안 한 이유는 어떻게 됩니까?) 
지금 더 중요한 것은 현재 위치에서 제가 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것은 사고 뒷수습, 그리고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이 정말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라는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 2022. 11. 8.)
대통령이 나서서 참사의 원인을 ‘정부 밖’으로 돌려준 상황 아래, 이상민 장관과 행정안전부는 어떤 대책을 추진하고 있을까.

행정안전부 전국 지자체에 시달한 대책 문건 확인 

참사 발생 닷새째인 11월 3일, 이상민 장관은 ‘다중밀집 인파 사고 예방 안전관리 대책 회의’를 주재했다. 이 장관은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관계 부처, 전문가와 함께 만들어 다시는 안타까운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인 11월 4일, 행정안전부가 회의 결과를 정리한 공문을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보냈다. 여기에는 모두 세 가지의 대책이 들어 있었다. 
▲ 이상민 장관이 주재한 대책 회의 이후 행정안전부가 11월 4일 자로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하달한 공문

대책 ① ‘필요시 경찰의 협조를 받아라’

첫 번째는 ‘필요시 초기에는 경찰의 협조를 받으라’는 것이다.
지하철 환승역 등과 같이 주기적으로 인파가 밀집하는 장소에 대하여 안전취약 시간대(예, 출·퇴시간 등)의 인파사고에 대비한 지속적인 예방체계를 구축하되 필요시 초기에는 경찰의 협조받도록 함

행정안전부 공문 (2022. 11. 4.)
그런데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 열린 정부의 첫 대국민 브리핑 당시 이상민 장관은 “통상과 달리 경찰과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다”며 경찰 배치 여부와 참사는 상관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 장관의 발언은 참사 원인 규명에 혼선을 초래한 것은 물론, 희생자 유족에게 큰 상처를 줬다. 그런 이 장관이 ‘경찰의 협조’를 첫 번째 대책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그의 발언에 대해서는 정부 내 그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우리 유가족들은 묻습니다. 거짓말이나 일삼고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고 떠벌린 이상민 행안부 장관.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운명의 10월 29일 저녁 10시 15분 이태원 도로 한복판 차디찬 죽음의 현장에는 국가는 없었습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송은지 씨 아버지 (2022. 11. 22.)

대책 ② ‘더 꼼꼼히 챙겨라’

두 번째는 민·관 협력체계 구축 운영인데, 대책보다는 당부에 가깝다.
한국시리즈와 같이 대규모 다중 밀집행사가 예상되는 경우 소관 중앙부처-지자체- 주최 측 등과 민관 협력체계 구축 운영

행정안전부 공문 (2022. 11. 4.)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처럼 주최자가 있는 행사의 경우, 이미 ‘재난안전법 제66조의11(지역축제 개최 시 안전관리조치)’‘동법 시행령 제73조의9(지역축제 개최 시 안전관리조치)’ 등에 따라 ‘안전관리계획’을 세우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정부가 마땅히 수행해야 하는 의무 사항을 ‘더 꼼꼼하게 챙기라’고 주문하는 모양새다. 제대로 된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책 ③ ‘크라우드 매니지먼트(crowd management)’ 기술 개발

참사 발생 사흘째인 11월 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크라우드 매니지먼트(crowd management)’라는 용어를 꺼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인파 관리 또는 군중 관리라고 하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개발이 많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드론 등 첨단 디지털 역량을 적극 활용해서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기술을 개발하고 필요한 제도적 보완도 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제48회 국무회의, 2022. 11. 1.)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즉, ‘군중(인파) 관리’ 기술을 개발하라는 대통령의 말은 곧 행정안전부의 세 번째 대책으로 이어졌다.   
행정안전부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지하철 역사, 야외 공연장, 축제·행사장 등에 다중이 밀집해 인파 사고가 우려되는 경우 사전에 경보하는 장치를 도입하라’고 지시했다.
▲ 이상민 장관이 주재한 대책 회의 이후 11월 4일 행정안전부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하달한 공문

일선 지방자치단체도 대책의 구체성, 실효성에 의문 제기

일선에서 시민 안전 대책을 시행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번 대책의 구체성과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CCTV 설치 및 위험 예상 시 자동 경보음 송출. 이런 게 지시 사항으로 나와 있던데요?) 그거는 ‘개발한다’라는 내용 아니었습니까? 저희가 작성한 부분이 아니어서. 그걸 내려준 데다가 문의를 하셔야 될 것 같은데. (그럼 이런 시스템은 아직 없는 거네요?)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A 구청 공무원
(지하철 역사, 야외 공연장, 축제 행사장 등 다중이 밀집하여 인파 사고가 우려되는 거의 모든 장소에 이거를 도입하겠다는 건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하고요. 그거를 전부 다 도입한다는 거는 전 지역을 그걸로 다 교체를 해야 되는 부분이라서 아마 회의상에는 ‘그렇게 해야지 잘 되지 않겠느냐’라고 의논할 수는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저희 현실에서는 바로바로 적용하기는 어려운 면이 좀 있습니다.

B 시청 공무원
앞서 지적한 대로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인파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른 ‘혼잡 경비’가 바로 그것이다. 정부는 경찰을 통해 ‘미조직된 군중의 무질서를 사전에 예방하고 정리’할 수 있다. 
이번처럼 주최 측이 없는 행사 같은 경우는 첩보에 의해서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행사가 있다. 그러면 어느 정도 모일 것이다.’ 인터넷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서 첩보를 입수해서 인원이 어느 정도 모일 것이라고 예상이 되면 그 예상 인원에 맞춰 경비계에서 경비 계획을 세워서 경력을 투입을 하는 거죠.

경찰 고위 관계자
참사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인파 관리 시스템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제도의 오작동’부터 점검해야 했다. ‘혼잡 경비’에 근거해 왜 이태원에 경찰 기동대를 사전 배치하지 않았는지부터 밝히는 것이 먼저다. 그런 다음 이 같은 시스템을 제대로 운용하지 않은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경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개발을 대책으로 삼는 것, 이 또한 참사의 원인을 ‘정부 밖’으로 돌리려는 시도로 읽힌다.

책임은 권한의 또 다른 이름

참사 발생 한 달이 지나도록 정부의 대책이 헛도는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정부 밖’에서 참사 원인을 구하고 여기에 대책을 끼워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제도의 부재’, ‘기술 부족’을 탓하며 내부 책임론에 선을 그어준 대통령이 있다.
그 사이, 이상민 장관을 포함한 어떤 고위 공직자도 법적, 행정적, 정무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책임은 권한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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