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호반 주주총회,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Apr. 26, 2024, 10:00 AM.

지난 4월 초, 뉴스타파 대표 앞으로 한 통의 내용증명이 왔다. 
발신인은 호반건설의 재무관리실장을 맡고 있는 김철희 전무.
김 전무는 "뉴스타파 취재진이 진보 언론의 기자라는 신분을 악용해 기업과 기업의 창업자에게 위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뉴스타파 취재진이 적법한 권리를 위임받지 못한 상태에서 (호반건설) 주주 총회에 대리인으로 참석해 취재하려 한 것이 바로 위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진은 호반건설과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 측에 어떠한 위력도 가할 의사가 없었을 뿐더러, 정작 호반건설의 주주 총회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호반건설이 지난 3월 29일 열겠다고 한 주주총회를 실제로는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과 정관에 명시된 주주총회를 열지 않은 호반건설

주식회사는 상법 제 449조에 따라 회사의 재무제표를 정기 주주총회에 제출해 승인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호반건설도 지난 3월 14일, 주주들에게 주주총회 소집통지서를 보냈다. 2023 회계연도의 재무제표와 임원 보수 한도 등을 보고하고, 승인받기 위해 3월 29일 주주총회를 연다는 내용이다. 
20년 넘게 호반건설의 주식을 보유한 김삼영 씨는 올해 처음 주총 소집통지서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의 친동생이다. 그는 지난 2018년 호반건설이 주식회사 호반과 합병하기 전에는 호반건설의 주식을 1.3% 갖고 있었다. 합병 이후 그의 현재 지분은 0.47%다. 
김삼영 씨는 '과거 주주총회에 참석한 적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 번도 없다. 오라는 소리를, 통지를 안 해줬기 때문에. (주주총회 소집 통지가) 올해 처음으로 왔는데, 대리인을 보낸 게 최초"라고 주장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김 씨로부터 주총 의결권을 위임받아 3월 29일 호반건설을 찾아갔다. 뉴스타파가 연속 보도했던 '호반문화재단에 대한 900억 원대의 수상한 기부'와 '불법 리베이트 수수 의혹' 등에 대해 당사자인 김상열, 우현희 회장 부부에게 직접 해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같은 취재 시도는 무산됐다. 
호반건설이 주총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반건설 김철희 전무는 주총을 열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기자 : 10시에 주주총회가 시작된 것 아닌가요?
■김철희 전무 : 아니요. 저희들이 주총을 저기 보내서 다른 주주들은 서류로, 저희들이 의견서를 다 받았어요.
□기자 : 그럼 오늘 주주총회를 안 엽니까?
■김철희 전무 : 그렇죠. 예. 답을 다 주셨어요. 서류를, 동의를 다 한다고 해서 받아서. 저희도 아무 연락도 못 받아서 다른 분들한테는 여기서는 못 받아 가지고 한 분 때문에 주총을 열 수는 없잖아요.      

호반건설 김철희 전무와 뉴스타파 취재진의 대화 중 
다른 주주들이 서면으로 안건에 동의했기 때문에 주총을 열지 않기로 했다는 답변이다. 
이에 대해 김삼영 씨의 법률대리인인 선재성 변호사(전 호반건설 법무실장)는 "주주총회는 주주 한 명이라도 출석해 의안에 대해 질의하고, 토론을 통해 의사결정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인데, 그 절차를 생략한 것은 상법이 보장하는 주주의 권리를 크게 침해한 것"이라며 "상법상 허용될 수 없는 위법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호반건설은 서면결의로 주주총회를 대체할 수 없는 대기업이다. 상법 제363조는 서면결의로 주주총회를 대신할 수 있는 회사를 '자본금 총액 10억 원 미만'인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호반건설의 자본금은 지난해 말 기준 2,765억 원이다.
또 상법은 자본금 10억 원 미만인 회사라도 서면결의로 주주총회를 대체하려면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철희 전무는 '주총에 상정된 의안에 대해 주주로부터 동의를 다 받았냐?'는 뉴스타파 취재진의 질의에 "예'라며 "통지서를 보냈다"고 답했다.
그런데 김 전무가 보냈다는 통지서는 다름아닌 '주주총회 소집 통지서'였다. 
주주총회 소집통지서에는 주총 일시와 의안, 주총 참석 시 준비물에 대한 안내만 있을 뿐, 서면 결의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문구는 없었다. 호반건설 주주 중 한 명인 김삼영 씨는 "서면 동의를 묻는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가 호반건설의 정관을 살펴본 결과, 정관에는 서면 결의로 주주총회를 대신할 수 있다는 규정도 없었다.
이 때문에 김 전무의 '서면 결의를 받았다'는 답변은 주주총회를 열지 않은 이유를 둘러대기 위해 '거짓 해명'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호반건설의 정관은 전년도 회계 결산을 마치고 3월 안에 주주총회를 소집하고, 주총이 열리기 2주 전에 주주들에게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호반건설 주주총회는 열리지 않았다. 
법은 물론, 회사 정관이 명시한 규정까지 따르지 않는 토건 기업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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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김기철, 오준식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