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먹는’ 섬 공항 사업...경제성도, 안전성도 의문

2015년 01월 09일 22시 34분

'2760억 원' 만성 적자의 늪에 빠진 전국 11개 지방공항이 최근 5년 간 '먹어 치운' 세금입니다.

정부는 6,400여억 원을 들여 울릉도와 흑산도에도 공항을 추가로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울릉도 공항의 총사업비는 4, 932억 원. 정부는 올해 공항 설계 예산으로 60억 원을 편성했고, 2020년까지 해마다 1000억 원 안팎의 세금을 부을 계획입니다.

천혜의 비경을 지닌 울릉도엔 한해 30만~40만 명의 관광객이 찾습니다. 그러나 겨울철에는 바람이 세고, 파도도 높아 유일한 교통수단인 뱃길이 끊길 때가 많습니다. 일주일 넘게 꼼짝없이 섬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공항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습니다.

지난 1969년 부산지방 항공관리국에서 현지 조사를 처음 벌인 이후 지금까지 여러차례 공항 건설 방안이 검토됐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산됐습니다. 한 때 헬기를 운행하기도 했으나 잦은 사고가 발생하면서 폐지됐습니다.

동해 바닷속에서 화산이 폭발해 만들어진 울릉도에 공항을 세우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단 공항이 들어서기 위해선 활주로로 이용할만한 평지가 필요한데 대부분이 가파른 산지로 이뤄진 울릉도에는 그럴만한 땅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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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유일한 평야 지대인 나리분지가 있기는 하지만 이 곳에 공항을 만들려면 이곳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 봉우리를 송두리째 깎아내야 합니다. 게다가 식수원인 나리분지가 오염될 수 있다는 주민들의 반대도 큰 걸림돌입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해안에 방파제를 만들고 그 위에 활주로를 놓는 방안도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난 상태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방파제 위에 활주로를 만드는 방식으로 울릉도에 공항을 짓겠다는 사업 계획을 확정해 지난해 국회에 예산을 요청했습니다. 비용편익비율 즉 B/C가 1.19이라는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를 첨부했습니다. 일반적으로 B/C가 1 이상이면 투자비용보다 수익이 커 경제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울릉도 공항의 B/C가 1이 넘은 것은 역대 타당성 조사와는 전혀 다른 결과입니다. 1998년 당시 건설교통부는 울릉도 공항개발 타당성을 조사했으나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고, 2009년 한국교통연구원은 B/C가 0.89, 2010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B/C가 0.77에 불과하다며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그동안 경제성 문제로 좌절됐던 울릉도 공항 사업이 갑자기 경제성이 있는 사업으로 바뀐 이유가 뭘까.

공항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경제적 효과는 부풀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실제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울릉도 공항 건설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정부가 활주로 크기를 줄여 건설 비용을 1600억 원 정도 축소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는 당초 1,200미터였던 활주로의 길이를 1100미터로 줄이고, 비행기 착륙대의 폭을 150미터에서 80미터로 축소했습니다. 이 결과 당초 6500억 원으로 추정됐던 총 사업비 규모가 4900억 원대로 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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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항공기 안전과 직결되는 활주로의 크기를 줄인 만큼 안전 사고의 위험성은 커졌습니다. 우선 활주로의 폭이 줄어들면서 첨단 레이더와 항법 장치를 이용하는 ‘계기 비행’ 방식의 이착륙은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울릉도 공항에 이착륙하기 위해서는 조종사의 시야에만 의존하는 ‘시계 비행’ 방식을 이용해야 합니다. 안개가 끼거나 구름이 낮게 깔리면 이착륙이 어려워 질 수 밖에 없습니다.

KDI 예비 타당성 조사 보고서 역시 활주로 길이 축소에 따른 안전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울릉도 공항에 취항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행기 ATR-42기와 DHC-8-300기의 이착륙 거리를 분석한 결과 활주로 길이가 짧아 위험하다고 경고했습니다.

50인승 비행기인 ATR-42기의 최대 이륙길이는 1165미터, 최대 착륙길이는 1126미터. DHC-8-300기의 경우 이륙할 때 1178미터, 착륙할 때 1052미터의 활주로가 필요합니다. 승객수와 화물의 중량을 10% 정도 줄이면 1100미터의 활주로에서 겨우 뜨고 내려 앉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비나 눈이 내려 활주로 노면이 젖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 경우 이착륙 거리는 15% 정도 늘어납니다. KDI 보고서는 착륙거리가 최대 1212미터가 돼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악천후를 피해 맑은 날만 골라 운행을 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울릉도에서 강수량이 10mm 이상인 날이 연간 50일이 넘습니다. 연간 70일 가량을 결항하는 배편과 마찬가지로 주민과 관광객들은 잦은 결항의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상황이 이렇지만 울릉도 공항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주체인 국토교통부는 공항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안전 관련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미 고려해 사업 계획을 세웠고, 앞으로 설계 단계에서 충분히 보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활주로 길이를 늘리지 않고 안전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정부는 또 예비 타당성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꼼수를 사용했습니다. 포항과 울릉도를 잇는 가상의 직선항로를 만들어 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겁니다.

현재 동해 상공은 군의 훈련 공역으로 민간 항공기의 운항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포항 공항에서 뜬 비행기가 울릉도에 가려면 우선 강릉 쪽으로 간 뒤 기수를 동쪽으로 돌려야 합니다. 직선으로 가면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이 우회 노선은 두 배 가까운 54분이나 걸립니다. 운항 경비가 배로 늘어나 경제성이 크게 줄어듭니다. KDI 분석 결과 직선항로가 개설되지 않으면 울릉도 공항의 B/C는 0.62로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토부는 사업 계획대로 직선항로가 개설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습니다. 해당 노선이 군의 작전 공역을 지나가고 있어 국방부와의 협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예비 타당성 조사 보고서는 이 문제를 푸는 것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국토부는 취재진에게 국방부와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 국방부에 확인해 본 결과 아직 공식적인 검토 요청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꼭 필요한 주민숙원 사업이라면 설사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더라도 정책적으로 추진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제적 타당성을 채우기 위해 안전을 포기하고, 꼼수를 쓰는 방식은 설득력을 얻기 힘듭니다.

또 다른 신규 공항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흑산도입니다. 흑산도는 한반도의 서남단, 목포로부터 100km 가량 떨어진 곳입니다.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홍도를 관광하기 위한 기점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흑산도 공항 사업의 총사업비는 1433억 원, 올해는 설계 예산으로 20억 원이 투입됩니다.

배 편의 잦은 결항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섬에 소형 공항을 세워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입니다. 하지만 주민이 4000여 명에 불과한 이 섬에 공항을 세우는 것이 어느 정도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취재진이 흑산도에서 직접 만난 주민들조차도 공항 보다는 현재 흑산도와 목포 사이를 운행하는 페리의 성능을 개선하는 것이 더 절실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배가 운항되지 못할 정도의 날씨라면 주요 관광 자원인 홍도 유람선 역시 다닐 수가 없는데 굳이 비행기까지 타고 와서 허탕치고 갈 관광객이 있겠느냐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실제 이 사업의 예비 타당성 조사 보고서는 이 사업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보고서가 도출한 흑산도 공항의 지역경제 활성화효과 지수는 0.1%, 2008년도에서 2010년까지 타당성 조사를 받은 135개 사업의 평균인 0.3%와 비교해도 크게 낮은 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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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공항을 만들어 놓아도 이 곳에 취항할 민간 항공사가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흑산도 공항에 취항할 수 있는 50인승 비행기의 대당 가격은 약 160억 원. 그것도 18대 이상이 있어야 비로소 공항답게 운영될 수 있습니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흑산도에 노선을 운영하기 위해 약 3000억 원의 막대한 초기 투자를 감행해야 하는 셈인데 이만한 액수를 감당할 사업자가 나타날지는 미지수입니다. 결국 민간 항공사에 대한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투입 없이는 도서 지역의 공항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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