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예산 주무르는 ‘숨은 권력 찾기’...1·2심 이겼지만 기재부 상고
2024년 12월 24일 16시 28분
의암댐 건설로 섬이 된 이곳은 춘천뿐 아니라 서울 시민들의 나들이 장소로 사랑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뱃길이 끊기고, 선착장의 유람선은 녹슬어 가고 있습니다. 강변가요제가 열릴 때면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이름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던 시절은 과거가 된 지 오랩니다.
이곳은 돌로 기둥을 쌓아 만든 지석묘 등 선사시대 유적지로도 유명하지만, 지금은 유물 이전 작업이 한창입니다. 이곳에 레고랜드 코리아가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멀린 그룹이 운영하는 레고랜드는 어린이 장난감 레고 블럭을 주제로 한 놀이공원입니다. 레고랜드는 현재 전 세계 6곳에 있는데, 내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2017년에는 우리나라와 일본 나고야에 추가로 개장할 예정입니다.
레고랜드 코리아의 총 사업비는 5000억 원. 영국의 멀린사가 1000억 원을, 나머지 4000억 원은 강원도와 현대건설, 외식업체인 엔티피아 등 8개 사가 엘엘개발이라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마련합니다.
민건홍 엘엘개발 개발총괄대표는 “레고랜드 코리아가 완공되면 관광객이 매년 200만 명, 향후 10년 간 생산유발 효과는 5조 원, 고용효과는 1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이같은 경제효과를 기대하면서 강원도가 레고랜드 코리아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강원도는 중도 일원 129만제곱미터 땅을 제공했습니다. 엘엘개발측은 이 땅을 담보로 210억 원 어치의 ABCP(자산유동화 기업어음)을 발행해 사업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여기에 정부는 중도를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해 각종 세금을 면제해주는 등 범 정부 차원의 지원을 보탰습니다. 이뿐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각종 기반 시설까지 조성해주기로 했습니다.
정부는 우선 춘천시 근화동과 중도를 잇는 레고랜드 진입교량을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900억 원이 들어갑니다.
앞서 정부는 168억 원을 들여 중도 전체를 감싸는 제방 공사를 벌였습니다. 원래 중도는 홍수가 날 경우 땅이 물에 잠기는 하천부지여서 법적으로 건축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제방을 쌓아 중도를 폐천부지로 지목을 변경, 레고랜드가 들어설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정부는 앞으로 레고랜드 진입 교량과 연결되는 진출입도로 건설에 160억 원, 하수처리시설 20억 원 등을 더 지원할 계획입니다.
정부와 강원도의 전체 지원 규모는 수백억 원대로 추정되는 세제감면 혜택을 제외하고도 1,250억 원. 영국의 멀린사가 투자하기로 약속한 1,000억 원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된 겁니다.
강원도 래고랜드추진단 송삼규 사무관은 “멀린사와 합의각서를 작성할 때 멀린측에서 경제성 분석을 했는데 교량을 짓는 건설비까지 사업비에 포함되면 경제성이 떨어진다”며 “투자 전제 조건으로 교량 건설을 요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레고랜드 코리아에서 나오는 매출액 분배구조가 멀린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연간 매출이 4,000만 달러 미만이면 멀린이 매출액의 100%를 가져가고, 엘엘개발측은 단 한푼도 분배받지 못합니다.
매출이 4,000만에서 6,000만 달러 사이면 멀린이 매출액의 92%를, 6,000만에서 8,000만 사이는 88%를, 8,000만달러가 넘어가면 90%를 가져갑니다. 멀린이 매출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조입니다.
전체 사업비의 20%를 투자한 멀린사가 총 매출의 88% 이상을 가져가는 불평등한 배분 구조 때문에 레고랜드 코리아 사업은 한동안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춘천시민연대 유성철 사무국장은 “협약 자체가 불공정하게 돼 있다”며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강원도가 다 책임을 져줘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유 국장은 또 “엘엘개발측이 1만명 고용 효과를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협약서에는 ‘지역주민을 고용하기 위해 노력한다’로 돼 있어 실제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레고랜드 사업은 박근혜 대통령의 이른바 창조경제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강원도가 만든 레고랜드 추진상황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이 교량 건설에 국비 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두 달 뒤 박 대통령이 주재한 제 3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이같은 지원 방침이 확정됐다”고 나와 있습니다. 강원도 레고랜드 송삼규 사무관은 “박 대통령이 당선이후 처음 강원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레고랜드 사업을 통해 관광사업 부흥과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고 말한 뒤 레고랜드 지원이 본격화됐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정부 각 부처는 레고랜드 코리아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지원실무협의체’를 꾸렸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사업 총괄과 레고랜드 진입 교량 설치 지원을 맡았고, 국토교통부는 제방공사비와 국유지를 제공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을 통해 세금을 감면해줬습니다.
물론 레고랜드 코리아 사업이 외국인 관광객 유치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국가 예산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레고랜드 코리아에 참여한 국내 투자가들의 속사정을 보면 이 사업이 과연 공익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내 투자자의 투자 규모는 4000억 원. 만약 레고랜드 코리아가 1,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면 배분 계약에 따라 국내투자자들은 그 중 10%인 100억 원을 시설 사용료 형태로 받습니다. 이 경우 연간 투자금 회수율은 2.5%. 은행 대출이자를 갚기에도 모자라는 금액입니다. 국내 투자자들이 이 정도 수익을 노리고 사업에 참여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들이 투자한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레고랜드 코리아 조성사업 자료에는 이같은 의문을 풀어줄 단서가 들어있습니다.
‘상가개발’과 ‘전문 사업자 유치’. 즉 호텔과 콘도, 워터파크, 빌리지, 스파 ,상가 등을 분양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겁니다. 놀이공원 운영 수익보다는 부동산 개발로 돈을 벌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외국 자본을 유치해 침체된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겠다는 정부의 의도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민간 기업의 속 보이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 1000억 원 넘는 국민 혈세를 퍼붓는 것을 반길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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