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재무부 첩보 유출] ②삼성전자 수상한 외환거래, 美 금융감시당국에 포착

2020년 09월 21일 08시 00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등 전세계 110개 매체, 언론인 400여 명과 함께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국(FinCEN)에서 유출된 수상한 금융거래첩보, 즉 ‘의심거래보고서’(SAR) 2100여 건을 입수해 분석했습니다. 2013년 <조세도피처 프로젝트>, 2016년 <파나마 페이퍼스>, 2017년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이은 네 번째 역외금융범죄 관련 국제공조 취재 프로젝트 <美 재무부 첩보 유출(FinCEN Files)>을 9월 21일부터 차례로 보도합니다.

①'김O삼'과 '강O희', 수백개 돈세탁 유령회사 임원 등재
②삼성전자 수상한 외환거래, 美 금융감시당국에 포착

미국 금융감시당국에서 유출된 자금세탁 첩보 자료에서 삼성전자 해외법인의 수상한 자금 흐름이 또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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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은행 영국 런던지점에 개설된 법인 계좌번호. 뉴스타파가 이 계좌의 존재를 확인한 건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계좌의 주인은 삼성전자 CIS판매법인, SEO(Samsung Electronics Overseas B.V.)입니다.

네덜란드에 설립된 삼성전자 자회사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구 소련 독립국가 권역을 겨냥한 해외판매법인이라고 합니다. 이 SEO의 런던 계좌로 2000년대 중반부터 십여년에 걸쳐 거액의 달러가 꼬리를 물고 송금됩니다. 적게는 한 번에 수만에서, 수십만 달러에 이르는 돈이 꽂혔습니다. 송금자는 페이퍼컴퍼니, 유령회사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수상한 돈의 흐름은 음지의 자금세탁을 돕는 양지의 파트너, 동유럽권 은행들에서 대거 유출된 금융거래기록 덕분에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2013년 돈세탁 혐의로 폐쇄된 리투아니아 유키오 은행(Ūkio bankas)의 입출금 내역이 대표적입니다.

이 자료를 입수한 뉴스타파의 취재는 해를 거듭했습니다. 취재가 나아가는 만큼 SEO 런던 계좌에 입금된 것으로 확인되는 달러의 자릿수도 늘어 갔습니다.

● 유령회사 → 총 2400만 달러(약 270억 원) → SEO 계좌 (2017. 3. 보도 다시보기)
● 유령회사 → 총 9300만 달러(약 1천억 원) → SEO 계좌 (2019. 3. 보도 다시보기)

하지만 삼성전자는 침묵했습니다. 사건은 잊혀 가는 듯했습니다.

▲ 출처:버즈피드(BuzzFeed News), ICIJ

그사이 뜻밖의 문서더미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에 흘러 들어왔습니다. 미국 연방정부의 대외비 자료였습니다. 미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국(FinCEN)이 전세계 금융권을 제 손바닥처럼 들여다 보고 ‘의심거래보고서’(SAR, Suspicious Activity Report)를 축적한 데이터입니다. 이 은밀한 자료가 지난해, 뉴스타파 취재진에도 전해진 겁니다.

전세계 외환 이체 은행들이 미 당국에 날려보낸 첩보에서 또 다시 SEO의 수상한 거래 기록이 나왔습니다. 취재진은 유출된 자료 구석구석에서 2005~2016년 SEO 계좌로 총 334만여 달러가 입금된 기록 12건을 수집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39억 원 정도 됩니다. 돈의 출처는 또 유령업체들입니다.

▲ 출처: 버즈피드(BuzzFeed News), ICIJ

2017년, 2019년 보도와 비교하면 찾아낸 돈의 규모가 작긴 합니다. 그러나 의미는 더 크다고 봅니다. 이번에는 뉴스타파가 수년간 삼성전자에 던진 의문의 근거가 미 연방정부라는 공신력 있는 출처에서 재확인됐기 때문입니다.

다시 물음표가 떠오릅니다. 러시아 자금세탁 조직과 직결된 유령업체가 왜 삼성의 거래처로 등장하는가? 삼성 해외 자회사의 금융거래 내역이 도대체 왜 미국 당국에 보고되고 있는가?

기자들은 컴퓨터 폴더 속 폴더에 밀어넣었던 자료를 다시 꺼냈습니다. 과거 SEO와 유령업체들이 주고 받은 대금 청구서들을 다시 훑었습니다. SEO의 거래처인 유령업체들이 무역대금 명목의 돈을 이체하려 실제로 은행에 제출했던 서류들입니다.


SEO 명의로 된 청구서들 곳곳에서 이상한 흔적이 눈에 띄었습니다. 문서들이 제기하는 여러 가능성 하나 하나를 전문가들에게 들려줬습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빨라졌습니다. 삼성전자 얘기인지는 모른 채 말이지요.

“한 번이라면 실수라고 할 수 있는데 여러 번 그랬다면, 수년간, 수십회 그랬다면 그건 업무상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어, 이건 수출, 수입 자체가 될 수 없는 것 같은데?”
- 역외 금융거래분야 전문 변호사

취재진이 자문을 구한 다른 전문가들은 확신을 피했습니다. 역외탈세분야 전문 세무사, 무역업계 저명컨설턴트들조차 ‘의심스럽긴 하다’며 조심스러워 했습니다.

이번 ICIJ 국제협업팀 공동 인터뷰에 응한 자금세탁방지 전문가, 그레이엄 배로는 잘라 말합니다.

“역외 유령업체들 대부분은 실제로 아무 사업도 하지 않습니다. 단스케 은행 에스토니아지점에서 나온 입출금 내역서 더미를 본 적이 있는데요. 이른바 무역 관련 서류 수백 건이 있었죠. 근데 그게 결정적이었습니다. 모든 게 허위 계약에 따른 것이었거든요. 실제 물류는 일어나지 않았거나, 극히 미미했죠. 서류에 불과합니다. 그걸로 뭘 할 수 있냐고요? 돈을 옮길 수 있게 해주죠. 즉, 자금의 출처를 알 수 없는 아주 복잡한 수법으로요.”
- 그레이엄 배로 / 자금세탁방지·기업윤리 컨설턴트 (국제협업팀 공동 인터뷰)

뉴스타파는 위조 서명과 정체 불명의 제품명까지, 엉터리 무역 서류의 실상과 수상한 외환거래의 고리를 <美 재무부 첩보 유출> 두 번째 시리즈, 영상 리포트에서 추적해 갑니다. 삼성전자가 국제 금융감시망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를 여러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작진
취재김용진 홍우람 김지윤 이명주
촬영최형석
편집윤석민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