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비정규직]故 이재학 PD 1주기⋯청주방송 이사회, 사실상 합의 파기

2021년 02월 04일 16시 38분

CJB 청주방송에서 14년간 일하다 비정규직 동료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던 고 이재학 PD가 세상을 떠난 지 오늘(2월 4일)로 1년이 됐다. CJB 청주방송은 지난해 7월 23일 '故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제시한 이행요구안을 성실히 이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합의 내용은 얼마나 이행됐을까. 
생전 이재학 PD가 일하는 모습. (사진 유족 제공) 

청주방송 대표이사, 의사회 의장 유족에게 사과는 했지만⋯ 

지난해 7월 청주방송과 이재학 PD의 유족, 언론노조와 'CJB 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대책위원회' 등  4자가 합의한 이후 이성덕 청주방송 대표이사와 이두영 청주방송 이사회 의장(대주주)은 유족을 만나 사과했다. 고 이재학 PD는 정규직으로 명예복직됐다. 2주 동안 기획제작국에 고인의 책상과 정규직 명패가 비치됐고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고 이재학 PD를 추모하는 편집실도 생겼다. 
하지만 4자 합의 후 2개월이 채 안 된 시점부터 합의 이행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강제 조정 절차로 종결하기로 했던 고 이재학 PD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청주방송 측이 애초 합의사항을 번복하고 강제 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고 이재학 PD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은, 2018년 4월 해고된 이재학 PD가 그해 9월 청주방송을 상대로 제기한 것이다. 1심은 청주방송 동료들이 회사측 압박으로 진술을 번복하는 등 일방적인 주장 속에 진행됐고, 결국 이재학 PD의 패소로 끝났다. 이재학 PD는 항소장을 접수한 다음 날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항소심에서 이재학 PD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 여부를 재판부로부터 판단받기를 원했다. “판결을 남기겠다”는 고 이재학 PD의 유지에 따른 것이었다. 진상조사 과정에서도 이재학 PD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를 입증하는 사실들이 밝혀져 항소심에서는 승소의 가능성이 있었다.
지난해 7월 4자 합의 당시 청주방송 측은 항소심을 강제 조정 절차로 마무리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청주방송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합의를 하고 사인을 하면 법률적인 것들이 진행 안 되는 게 맞지만 유족께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하시니까 강제 조정을 제안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청주방송은 "항소심 재판을 계속 진행하는 것에 대해 이사회가 부담스러워한다"며 항소심을 강제 조정 절차로 마무리하자고 유족들을 설득했다. 청주방송은 "항소심 강제 조정을 받아줘야 비정규직 처우개선이나 가해자 처벌 문제를 이사회에 얘기할 수 있다"는 걸 명분으로 내세웠고, 유족은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렇게 유족들을 설득해 합의문에 도장을 찍게 했던 청주방송 측이 지난해 9월 법원의 강제 조정에 대한 이의신청 기한 마지막날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청주방송 이사회 "노동자성과 부당해고 인정하면 다른 소송에 영향 우려"   

청주방송이 입장을 바꾼 이유는 강제 조정 합의문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7월 4자 합의서에 덧붙여진 이행안에 포함된 합의문의 내용은 이렇다. “고인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 사실, 청주방송의 사망 책임에 대한 인정과 사과표명, 해고기간 동안의 임금 지급, 위 내용에 반하는 주장 금지 등을 담은 강제 조정 절차로 종결한다” 당시 이 문안은 협상에 참여한 4자가 세부 내용까지 합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고 이재학 PD의 동생 이대로 씨는 “문장 하나뿐만 아니라 단어 하나하나까지 협의하느라 하루에 회의를 끝내지 못하고 다음날까지 이어서 회의를 진행했다”며 “청주방송 측은 휴식시간에 이두영 의장에게 실시간으로 보고하고 이렇게 저렇게 바꾸겠다고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합의 문안에 뒤늦게 딴지를 건 것은 청주방송 이사회였다. 합의 문안 가운데 “노동자성과 부당해고 사실을 인정한다”는 부분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청주방송 이사회는 고 이재학 PD의 항소심 판결로 인해 청주방송의 비정규직들이 회사를 상대로 비슷한 소송을 잇따라 제기할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고 이재학 PD의 강제 조정 결정문에 “노동자성과 부당해고 사실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길 경우 다른 재판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청주방송 관계자는 “이사회 이사 중에 두 분이 법률가”라며 “강제 조정 결정문 문항을 약간 수정하거나 추후에 줄 소송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안장치가 필요하다고 얘기를 하셔서 이의신청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주방송 이사회에 사외이사로 있는 유 모 변호사는 불법파견을 주장하며 청주방송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또다른 청주방송 노동자의 사건에서 청주방송 측을 대리하고 있다. 그런데 유 모 변호사는 지난해 재판부에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을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내는가 하면, 변론 과정에서 4자 합의서에 대해 “단체들이 데모해서 작성된 것이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항소심 강제 조정은 무산됐지만 청주방송 측은 합의를 파기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청주방송 관계자는 “최종 합의안에 강제 조정이 성립 안될 경우 본안 소송으로 가고 청주방송이 협조한다고 돼 있다”며 “(대책위와 유족은) 합의를 깼다고 얘기를 하시는데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7월 23일 故 이재학 PD 유족과 CJB 청주방송, 언론노조, 대책위는 합의서에 최종 서명했다. 왼쪽부터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 이용관 대책위 공동대표(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故 이재학 PD의 동생 이대로 씨, 이성덕 청주방송 대표이사. 

책임자 징계도 일부만 진행  

고 이재학 PD의 죽음과 관련된 책임자 징계 처리도 이행 기한을 넘기고 있다. 지난해 7월 4자는 책임자들에 대한 조치의 일환으로 진상조사위원회가 고인의 사망에 대한 책임자와 일터괴롭힘 가해자 명단과 징계사유, 징계수위를 청주방송에 별도 통보하고 청주방송은 징계 절차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행기간은 합의 후 1개월 이내였지만, 청주방송은 2개월이 지난 10월에서야 이재학 PD를 해고한 당사자인 하 모 전 기획제작국장을 해고했다. 하 전 국장은 충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3일 기각됐다. 또 다른 1명은 지난해 11월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나머지 2명에 대해서는 아직 징계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아직 징계를 받지 않은 직원 중 한 명은 이두영 의장의 조카다.    
비정규직 고용구조 개선 합의와 관련해서는 일부 진전이 있었다. 4자 합의 당시 노동자성과 불법파견이 인정되는 9명에 대해서는 2022년 12월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는데, 청주방송은 지난해 7월 31일 이들과 정규직 전환 확약서를 작성했다. 이들 중 3명은 올해 1월 1일자로 정규직으로 전환됐고, 3명은 올해, 나머지 3명은 내년 12월까지 정규직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청주방송에서 일하는 작가 직군에 대해서는 TF를 구성해 직접고용⋅고용안정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는데, 일부는 진행되고 일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편성제작국 작가들과는 집필표준계약서를 체결했고 기획제작국 작가와는 기본급 지급 관련 협의가 지연되고 있다. 작가 직접고용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노사협의회에 비정규직 대표의 참여를 보장하기로 한 합의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청주방송측은 파견, 도급직, 프리랜서는 노사협의회에 들어올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노사협의회 개최 시 사안에 따라 프리랜서가 특별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노사가 함께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유족 측 "합의 이행 걸림돌은 청주방송 이사회와 이두영 의장" 

고 이재학 PD의 1주기를 맞은 상황에서 유족과 대책위는 결과적으로 청주방송 측이 합의를 파기했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합의 이행을 방해하는 최대 걸림돌로 청주방송 이사회와 이두영 의장을 지목했다. 이두영 의장은 지난해 2월까지 청주방송 대표이사를 겸임하다 사퇴한 바 있다. 
지난해 7월 1일 뉴스타파 취재진을 만난 이두영 청주방송 이사회 의장. 
특히 지난해 12월 청주방송 이사회와 이두영 의장이 유족측에 추가 합의서 작성을 요구한 사실이 유족의 분노를 사고 있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과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합의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청주방송 이사회를 찾아 이두영 의장과 이사진들을 만나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이두영 의장과 이사진들은 유족 측에 향후 이 사안과 관련해 더 이상의 집회, 시위 등 추가행동을 하지 말 것과 고 이재학 PD의 사건을 다른 소송에 이용하지 않을 것 등에 대한 확약을 담은 추가 합의서 작성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이두영 의장은 “기존 합의서에도 고인의 명예회복 방안의 세부내용과 항소심 조정 결정문에 담길 구체적인 문안은 유족과 청주방송이 별도로 합의해 정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합의서를 쓰고 상호 공증하는 건 사회통념상으로 당연히 있어야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고 이재학 PD 동생 이대로 씨는 "합의는 이미 다 끝난 것"이라며 "상세합의서와 부속합의서까지 이미 다 있는 상태에서 추가합의서를 작성하자는 건 지난 합의에 대한 서명을 다시 지우고 수정하자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이대로 씨는 또 “이두영 이사회 의장이 의장으로서 합의를 인정 못한다면 그건 청주방송 경영진과 부딪쳐야 될 문제지 저희한테 책임전가할 문제가 아니다”며 “경영진과 이성덕 대표도 거기에 대해 나몰라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은 진짜 언론사라고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성덕 대표는 뉴스타파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故 이재학 PD 관련 뉴스타파 보도 
제작진
취재조현미
디자인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