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의) 고모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 ‘내가 대신 사과한다. 우리 누구(가해자) 한 번만  살려달라, 합의해줘라’ 한 번만 만나달라고 계속 얘기를 하더라고요.

김지영(가명) / 성폭행 피해자

처음에는 합의할 생각이 없었어요. 전혀 없었는데 본인(가해자)들이 먼저 저를 계속 찾아오고, 직접 가해자들이 찾아도 왔고 연락, 전화, 문자 이런 게 계속 왔었거든요.

이지은(가명) / 성폭행 피해자
▲ 가해자가 편리하게 더 강력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조, 성범죄 합의의 함정이다.

성범죄 고발 이후, 피해자들에게 되돌아오는 수많은 2차 피해, 이 가운데서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가해자 측으로부터 종용 받는 합의입니다. 가해자는 물론 가해자 측 가족까지 나섭니다. 결국 이런 식으로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제 주변에 있는 지인들도 지치고, 힘들고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만할 때 안 됐냐, 합의해줘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서 나도 지치고 내가 제 주변인들한테 미안하면서 (주변인들이) 지쳐하고 힘들어하는 게 너무 보이니까. (주변인들이) 나를 위해서 보호해주려고 그랬지만 결론적으로는 나도 힘들고 그 사람들도 힘드니까. 그냥 나만 힘들자.이 사람(가해자)들은 합의만 해주면 더 이상 연락을 안 하겠다고 하니까…

이지은(가명) / 성폭행 피해자

이 상처가 누그러진다든가 뭐가 개선될 게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유일하게 바랐던 것은 좀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 그게 다였던 것 같아요

김지영 (가명) / 성폭행 피해자

합의금을 받았는데 이 사람이 나한테 사과하는 의미로 내가 그동안에 피해 받은 걸 보상받는 느낌보다는 ‘옜다 먹고 떨어져라’ 이런 돈 받아서 되게 찝찝한 느낌, 받고서도 찝찝한 느낌…

박혜진(가명) / 성추행 피해자

성범죄는 분명 교통사고나 폭행 사건과는 다릅니다. 전혀 다른 피해의 정도와 차원이 다른 회복의 의미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같은 범주에서 합의가 진행된다는 데 큰 함정이 있습니다. 성범죄 합의, 과연 누구를 위한 걸까요?

‘합의했어? 그러면 걔(피해자)도 돈 받고 용서한 거네, 어떻게 그런 일을 돈 받고 용서할 수가 있어? 걔(피해자) 별로 안 힘들었나 보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게 두려웠어요.

김지영(가명) / 성폭행 피해자

성폭행 피해자가 신고를 하고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이른바 “꽃뱀” 프레임입니다. 가해자에게 합의란 마치 무죄의 증거인양 악용되고 있습니다.

유교적 정조관념에 뿌리를 둔 사회적 편견은 여지없이 피해자를 공격합니다. 합의를 안 해줘도 “젊은 남자 인생 망치려고 그러냐, 합의해줘라” 이런 식입니다. 또한 합의한다 해도 “ 돈 받았으면 꽃뱀이지 뭐 ” 세상의 시선은 늘 이렇습니다. 가해자가 강력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합의라는 이름으로.

‘저것 봐, 그냥 합의하에 (관계) 해놓고 돈 뜯으려고 고소했다가 합의했다‘라고 생각해버리니까. 그러니까 피해를 본 사람한테 ‘너 꽃뱀이냐’라고 하는 게 교통사고 당해서 아파 죽겠는 사람한테 ‘너 자해공갈단이냐’라고 환장하는 소리를 하는 거죠.

이지은(가명) / 성폭행 피해자

피해자의 담론이 전혀 없어요. 가해자는 할 이야기가 많아요. ‘피해자가 꽃뱀이라더라, 일부러 나에게 접근했다더라, 가해자는 되게 좋은 사람인데 술 먹고 한번 실수한 거야’ 이런 식으로 가해자들한테는 레퍼토리가 엄청 다양해요.

서혜진 / 변호사

‘거봐 걔 꽃뱀이잖아, 돈 받으려고 그런 거야’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까 피해자가 합의금이라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생길 수 있는 거죠. ‘나를 꽃뱀으로 몰아가려고 하는 건가? 나 이거(합의금) 안 받아’

박혜영 부소장 / 서울해바라기센터

지금까지의 (성범죄) 합의는 사실 가해자나 피해자 누구한테도 별로 도움이 안 돼요. 어떻게 보면 재판이나 수사의 편의성을 위한 제도적인, 실제로 운영되는 것은 그렇게 운영되는 것이지 가해자가 이렇게 했다고 해서 반성하면서 다시는 안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단순히 그 순간 모면해보자는 거고, 피해자 입장에서 내가 진정으로 피해 회복 비용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요

신중권 변호사 / 전 형사합의부 판사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진이 만난 피해 여성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원래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그 사건이 있고 난 후로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어요. 일반 사람처럼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게 제일 많이 바뀐 것 같아요 평소에는 그냥 하던 것들이 이제는 노력해야 하는 게 돼 버렸으니까

김지영(가명) / 성폭행 피해자
▲ 가해자의 처벌을 최소하고 피해자의 피해회복에 도움을 준다는 명목의 합의제도, 그러나 성범죄의 경우 현실은 다르다.

그동안 우리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본 것은 아닐까요? 처벌이든 합의든 그것의 중심에는 피해자가 있어야 합니다. 형량을 낮추기 위한 목적이나 피해자들 비난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번 주 <목격자들>은 성범죄 형사합의제도의 실상과 함정을 취재했습니다.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양 희
촬영 권오정
취재 연출 김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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