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세계를 뒤흔들었던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는 모색 폰세카라는 파나마 법률회사에서 유출된 데이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의 모색 폰세카에서 또다시 대량의 데이터가 유출됐다. 이번에 유출된 데이터는 2016년 1차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 이후에 모색 폰세카 내부에서 생산된 2년치 문건들이다.

뉴스타파는 이번에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와 전세계 수십 개 저명 언론사와 함께 국제 협업 취재를 진행했으며 이 언론사들과 동시 다발적으로 (한국시간 2018년 6월 21일 새벽 2시 / 워싱턴 시간 6월 20일 오후 1시) 취재 결과를 공개한다.

기사 목록
1. 파나마 페이퍼스 그 후.. "역외 유령회사 서둘러 없애달라"(링크)
2. 끊임없이 조세도피처로 가는 한국인들(링크)
3. 세계는 적극적인 수사와 세법 손질 중 ... 한국은?(링크)

귀사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조속히 두 회사를 해산하는 데 드는 비용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매우 급한 일입니다.

역외 탈세와 돈세탁, 검은 돈 은닉 등을 주요 서비스로 제공하던 파나마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 지난 2016년, 이 파나마 법률회사에서 유출된 자료를 토대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주도하고 뉴스타파가 참여한 ‘파나마 페이퍼스(Panama Papers)' 프로젝트는 세계 각국의 정치인과 유명인사들의 역외탈세를 폭로했다. 이 여파로 모색 폰세카는 결국 2018년 3월 문을 닫았지만, 문제의 법률회사에서 이번에 또 내부 문건이 무더기로 유출됐다.

총 1,237,849건에 이르는 유출 데이터는 2016년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 이후 모색 폰세카 내부에서 생산된 문건들이다. 여기에는 모색 폰세카를 통해 조세도피처에 유령회사를 세웠던 한국 고객들의 이메일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에는 뉴스타파의 보도 이후 고객들이 모색 폰세카에 조세도피처의 회사에 대해 문의하거나 서둘러 없애달라고 한 정황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모색 폰세카에 직접 연락한 파라다이스 그룹 직원들

뉴스타파는 지난 2016년, 국내 최대 카지노 기업인 파라다이스 그룹의 박병룡 대표이사의 이름을 모색 폰세카 유출 자료에서 확인해 보도했다. 박 대표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 ‘엔젤 캐피털 리미티드(Angel Capital Limited)’의 이사로 등재되어 있었다. 당시 박 대표는 파라다이스 입사 이전에 근무한 전 직장에서 펀드 운용 목적으로 만든 페이퍼 컴퍼니에 이름만 빌려준 것일 뿐, 파라다이스 그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뉴스타파는 이번에 유출된 데이터에서 파라다이스 그룹 소속 직원들이 이 페이퍼 컴퍼니와 관련하여 모색 폰세카에 수차례 직접 이메일을 보낸 사실을 확인했다.

뉴스타파 보도 얼마 뒤인 2016년 6월 23일, 파라다이스 그룹의 한 직원이 모색 폰세카에 이메일을 보냈다. 박 대표가 엔젤 캐피털과 관련해 한국 정부당국의 조사를 받았는데, 기억을 못해 정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며 해당 회사에 대한 정보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박 대표를 대신해 이메일을 쓴다고 밝힌 이 직원의 소속은 체어맨스 오피스(Chairman’s Office), 즉 회장실로 되어 있었다.

파라다이스 그룹 회장실에서 일한 것으로 보이는 직원이 박 대표의 개인적인 일에 왜 나섰는지 묻자, 해당 직원은 “다른 업무와 섞여 있어서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다"며 정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소속에 대해서는, 현재는 회장실에서 근무하지만, 2017년 1월 이전에는 박 대표의 비서로 근무했다고 주장했다.

이 직원이 메일을 보낸 바로 다음 날인 2016년 6월 24일, 이번에는 파라다이스 그룹의 한 사내변호사가 모색 폰세카에 같은 내용의 질문을 보냈다. 자신을 박 대표의 변호사라고 소개하며 엔젤 캐피털이 여전히 살아있는지, 연결된 은행계좌가 있는지 물어보며 회사 등기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에도 이 변호사는 자신의 의뢰인인 박 대표가 한국 정부기관으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다며 답변을 독촉하며, 답변이 어렵다면 본인이 직접 파나마에 있는 모색 폰세카에 방문하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두 차례나 더 보냈다.

파라다이스 그룹과는 무관하다는 유령회사에 대해 파라다이스 사내변호사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해당 변호사는 당시 뉴스타파 보도 이후 여러 정부기관에서 들어온 질의에 대응하기 위해 모색 폰세카 측에 연락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뉴스타파는 박 대표 본인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를 하고 이메일도 보냈으나, 박 대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뉴스타파는 2016년에도 조세도피처의 유령회사가 파라다이스 입사 전 직장과 연관된 것이라는 박 대표 해명의 모순을 지적한 바 있다. 박 대표의 전 직장인 뱅커스 트러스트가 문을 닫은 지 16년 뒤인 2015년까지 문제의 페이퍼 컴퍼니가 존속했다는 것, 또 이직한 지 10년이나 지난 2006년까지도 박 대표가 직접 여권 사본을 보낸 점으로 볼 때 그의 해명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드러난 유출 문서를 통해 파라다이스 그룹의 직원과 사내변호사가 페이퍼 컴퍼니 문제에 직접 개입한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박 대표의 기존 해명은 더욱 설득력을 잃게 됐다.

박수열 네오스타 대표, 가족 명의 페이퍼 컴퍼니 서둘러 청산

▲ 박수열 네오스타 코퍼레이션 대표

뉴스타파가 지난 2016년 공개한 파나마 페이퍼스 한국인 명단에는 중견 해운중개업체 네오스타 코퍼레이션의 박수열 대표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뉴스타파는 박 대표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네오스타 쉬핑 컴퍼니 리미티드(Neostar Shipping Company Limited)’와 ‘월드 탱커스 리미티드(World Tankers Co., Ltd)’라는 두 회사를 설립한 뒤, 부인 박정아 씨에게 이사직을 넘겨줬고 2011년 6월 두 회사의 지분을 딸 세리아 박에게 양도했다고 보도했다.

박 대표의 이름이 포함된 한국인 명단이 공개된 날짜는 2016년 5월 9일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이틀 뒤인 5월 11일, 박 대표와 모색 폰세카 사이의 연락을 담당했던 홍콩의 중개회사가 모색 폰세카에 이메일을 보냈다. 박 대표의 가족들이 이름을 올린 두 유령회사를 해산하는 데 얼마가 드는지 문의하는 내용이었다. 모색 폰세카가 비용을 안내해 주자, 홍콩 중개회사는 곧바로 두 회사의 해산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서 보내면서 서류가 제대로 갖춰졌는지 최대한 빨리 알려달라고 재촉했다. ‘우리 고객이 두 회사가 청산됐는지 이미 여러 차례 문의했다'며 두 회사의 해산을 증빙하는 서류를 최대한 빨리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수차례 두 회사의 해산 상황에 대해 문의하던 홍콩 업체는, 모색 폰세카가 추가 자료를 요구하자 급기야 모색 폰세카 측에 화를 내는 이메일을 보냈다. ‘우리 고객이 두 회사가 청산됐는지 이미 여러 차례 문의했다'며 두 회사의 해산을 증빙하는 서류를 최대한 빨리 보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두 페이퍼 컴퍼니의 해산을 서두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박 대표는 뉴스타파 취재진에 “가만히 있으면 없어지는 회사들인데, 뉴스에 나오니까 여기저기서 질문이 들어오고 복잡해져서 결국 돈을 들여 없앴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해당 유령회사들이 자신이 운영하는 네오스타 코퍼레이션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지만, 가족들에 대한 증여를 목적으로 만든 것이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거부했다.

이번에 유출된 자료에서는 박수열 대표가 관련된 기존의 두 회사와 별개로, ‘시노빔 트레이딩 리미티드(Sinobeam Trading Limited)’라는 회사 문서도 발견됐다. 모두 박 대표의 가족들이 이사 및 주주를 거친 것으로 확인됐다. 새로 나온 회사 역시 가족들만 관계된 것으로 볼 때 재산 은닉과 편법 상속에 사용된 회사일 가능성이 있다.

포스코, 천 8백억 손해 본 해외기업인수 관련 기록 삭제 시도

이번 유출자료에는 포스코가 인수했다가 무려 1,800억 원을 날린 해외기업도 다시 등장했다. 지난 2016년, 뉴스타파는 모색 폰세카 유출 자료를 토대로 포스코의 수상한 해외기업 인수 실태를 폭로했다. 포스코 건설과 엔지니어링이 500여억 원에 인수한 영국 페이퍼컴퍼니 EPC Equities(이피씨)가 4년 만에 자본 전액을 감액하고 껍데기만 남았다는 것.

뉴스타파는 당시 포스코가 이피씨와 함께 그 계열사인 산토스 CMI까지 천 억 원에 인수한 사실과, 유상증자 명목으로 포스코가 이 유령회사들에 800억 원을 추가 투입한 뒤 60여억 원에 매각한 사실도 함께 보도했다.

포스코 측은 그동안 정상적인 기업 인수였다고 계속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새롭게 유출된 모색 폰세카 내부 자료에서는, 포스코가 인수 관련 기록 등의 흔적을 최대한 지우려고 한 정황이 새롭게 드러났다.

뉴스타파의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가 이어지던 2016년 6월 27일, 포스코의 해외 자회사 격인 산토스CMI의 직원이 모색 폰세카 파나마 본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모색 폰세카를 더 이상 법률 대리인으로 쓰지 않겠다, 그러니 이피씨와 산토스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다른 로펌으로 넘기라는 내용이었다. 산토스 측이 기록을 보내라고 한 곳은 역시 조세도피처 비즈니스를 다루는 런던의 한 법률회사였다. 모색 폰세카 내부 유출 자료를 근거로 한 뉴스타파 보도가 이어지자, 심각한 보안상의 위험을 느끼고 대응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률 대리인을 바꾸는 과정에서 포스코가 수년간 영국 조세당국으로부터 벌금을 부과받은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벌금 부과를 두고 산토스CMI와 모색 폰세카가 서로의 책임이라며 다투는 내용의 이메일이 이번 유출 자료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뉴스타파는 영국에 등록된 유령회사인 이피씨와 산토스 CMI와 관련해 영국 조세당국으로부터 벌금 처분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 포스코 측에 물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SK해운, 파나마 페이퍼 컴퍼니 청산절차 서둘러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가 나간 뒤 모색 폰세카에 급히 연락을 한 기업 중에는 SK해운도 있었다. SK해운은 지난 1991년, 대표적인 조세도피처로 꼽히는 파나마에 ‘K C Leasing’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2016년 파나마 페이퍼스 1차 보도로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자 SK해운은 K C Leasing이 “합법적으로 운영한 회사”라며 “조세 회피 목적은 없었고 이미 청산한 상태"라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유출 자료에서는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 직후인 2016년 5월 말부터 SK해운이 모색 폰세카에 여러 차례 연락해 K C Leasing의 청산 절차를 급히 서두른 정황이 확인됐다. SK 해운은 5월 말 K C Leasing의 청산절차를 모색 폰세카에 확인한 후, 필요한 서류를 보낸 뒤에도 ‘우리에게 매우 급한 일'이라며 서둘러 달라고 독촉했다.

당시 모색 폰세카와 연락을 담당했던 SK해운 직원은 “페이퍼 컴퍼니 자체는 정상적인 것이고 청산이 늦는다고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기존 담당자가 제 때 청산을 하지 않았고 담당자들이 계속 바뀌다 보니 서둘렀던 것 같다"며, K C Leasing의 청산절차를 서두른 이유에 대해 해명했다.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개인과 기업들은 하나같이 페이퍼 컴퍼니를 정상적으로 운영했고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뉴스타파의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 이후 굳이 서둘러 페이퍼 컴퍼니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취재 : 임보영, 심인보, 김지윤
촬영 : 김기철, 신영철
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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