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제로의 한반도, 김정은의 '파병 베팅'은 무엇을 노리나
2024년 11월 20일 18시 45분
지난해 2017년 11월, 일본 ‘안전보장간화회’라는 단체의 임원 8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모두 일본 자위대 고위 간부 출신이다. 한국 퇴역장성 모임인 성우회가 이들을 초청했다. 그러나 성우회나 안전보장간화회 웹사이트 게시물 등 공개 자료에서는 이들의 한국 방문 일정이나 활동 내역을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왜 한국에 왔고 무엇을 했을까?
예기치 않게 일본 자위대 퇴역 간부 조직의 한국 방문 일정은 두 단체와 무관해보이는 일본 극우단체의 내부 비공개 사업보고서에서 나왔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입수한 일본 ‘사사카와평화재단’의 연도별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일한 안보방위교류'라는 사업이 등장한다. 여기에 사사카와재단이 한국의 퇴역장성 단체 성우회와 일본 자위대 퇴역간부 단체인 안전보장간화회 간 교류를 지원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2017년 사업보고서에 일본 간화회 회원 8명이 한국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이들은 한국 국방부에 가서 송영무 국방부장관을 만났고, 놀랍게도 한국군 특수전사령부와 수도방위사령부까지 방문했다고 적혀 있다.
뉴스타파는 국방부에 사사카와재단 사업보고서 내용이 사실인지 물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장관이 성우회 고문과 만난 사실은 있지만, 일본 간화회가 방문한 기록은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당시 성우회의 한일교류에 관여한 방효복 전 성우회 국제전략교류협회장은 자신이 간화회 방문단과 국방장관과의 면담을 주선했다고 밝혔다.
특수전사령부 관계자는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2017년 11월 일본 간화회 회원들이 특수전사령부를 방문해 특수전사령관과 면담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반면 수도방위사령부 관계자는 “간화회가 방문한 건 맞고, 성우회를 통해 안보단체 민간교류 차원에서 요청이 와서 방문을 지원했다"면서도 몇 명이 와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며 “공문을 통해 취재목적과 기사방향을 명시한 후 공식 질의하라"는 답변만 내놨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성우회는 지난 2012년부터 일본 간화회와 ‘한-일 전략교류'라는 명목으로 매년 서로 방문하며 교류를 지속해오고 있었다. 지난해 10월에도 성우회 측이 일본을 방문해 일본의 국방차관 등을 만난 사실이 사사카와재단의 웹사이트에 나와 있다.
한일 퇴역 장성들이 교류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될 게 없다. 하지만 교류 상대방인 일본 간화회의 성격을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일본 간화회 고위 임원 중 아베 총리의 배후로 알려진 일본 극우세력 ‘일본회의'와 관계가 있거나,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부정하는 등 과거사 왜곡에 앞장서고 있는 인물들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현재 일본 간화회 회장을 맡고 있는 니시하라 마사시는 지난 2013년 일본 극우매체 산케이신문 칼럼을 통해 위안부 강제연행은 한국이 날조한 역사라고 주장한 인물이다. 지난해 제주도 국제 관함식 당시 욱일기 논란에 대해서도 “문재인 정권의 혐일관을 보여준다"면서 한국 측에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아리랑TV의 광복절 특집 인터뷰에서는 “한국 측이 지속적으로 역사 문제를 제기해 일본 여론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며 “과거사 문제는 충분히 보상을 했고, 끝났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런 전력을 가진 니시하라는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국립외교원에서 개최한 “한-일 전략적 협력을 위한 대화”에 일본측 참가자로 참석하기도 했다.
성우회 회원들이 2018년 일본을 방문해 만난 간화회 이사장 히바코 요시후미는 우리의 육군참모총장에 해당하는 일본 자위대 육상막료장 출신이다. 그는 아베 총리의 배후 세력인 일본 극우단체 일본회의 설립 20주년 기념 축사까지 한 인물이다. 이 축사에서 히바코 이사장은 과거사 왜곡 논란을 빚은 일본회의의 역사교과서 편찬사업을 치켜세우는가 하면, 헌법을 개정해 일본 자위대를 군대로 명시하고 자위대의 사기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특히 최근에 와서 일본 자위대 퇴역 군인들의 사회적 발언, 정치적 발언들이 지면을 통해 많이 확산되고 있다"며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난징대학살이나 일본군위안부와 같은 과거사 문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사카와재단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성우회와 간화회 간 교류에 사사카와재단이 지원한 돈은 일본-베트남 현역영관급교류 사업 지원액과 합쳐 매년 약 2천6백만 엔, 우리돈 약 3억원 가량이다. 한일 퇴역장성 간 교류에 사사카와재단이 매년 수억 원대 자금을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진은 이 재단 내부 사업보고서에 있는 사업 평가 내용에 주목했다.
2014년 사업보고서에서 사사카와재단은 한일 정부 간 외교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성우회와의 교류가 추후 한일 방위협력관계 기반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한국 성우회 측이 한국 내 반일세력의 비방을 피하고 싶어했다며, 추후 해당 사업을 일본 내외에서 널리 알리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2015년 사업보고서에는 일본 간화회 측이 우리군 합참본부의장을 만나고, 육군사관학교, 해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해 한국군의 체제와 교육훈련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고 적혀 있다. 또, 한국 군 기관지인 국방일보가 일본 간화회의 방한 사실을 사진을 첨부해 보도한 사실을 예로 들면서 “한국 측에 약간의 자세 변화의 징조가 보였다"고 평가했다.
2016년 사업보고서에서 사사카와재단은 지소미아, 즉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이 체결됐지만, 여전히 양국 관계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민간 수준의 방위교류의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라고 높게 평가했다. 또 2014년, 2015년과 달리, 자신들이 지원하는 간화회와 성우회 간 한일 ‘안보방위교류’ 관련 홍보활동의 제약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판단을 내렸다.
간화회가 한국 특전사와 수방사를 방문했던 해인 2017년 사업보고서는 한국의 정권 교체에 대한 사사카와재단의 시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사카와재단은 간화회 측 방한단의 활동을 언급한 뒤, “한국에서 좌파정권이 탄생해 일본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과거 축적된 (성우회와) 교류 경험을 토대로 간화회와 성우회가 안면이 있는 사이가 돼 깊이있는 의견교환이 가능해졌고 한국, 즉 성우회 측에서 ‘일한군사협력’을 제안했다며 “더욱더 본심에 가까운 강론을 촉구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뉴스타파는 당시 성우회 측이 제안했다는 ‘일한군사협력'의 내용이 뭔지 성우회 측에 물었다. 방효복 당시 성우회 국제전략교류협회장은 “일본과 한국은 군사적인 측면에서 매우 긴밀하게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많은 예비역 장군들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성우회는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표한 간도특설대 출신 백선엽이 초대회장을 지냈고, 그 외에도 일본육사 출신과 하나회 출신 정치군인들이 주요 임원 자리를 맡았던 퇴역장성 모임이다. 2016년도 성우회 내부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간화회가 2013년 처음 성우회와 교류차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백선엽과 만났다는 내용이 있다. 성우회는 박근혜 정부 때 역사왜곡 논란을 빚은 이른바 국정화 역사교과서를 주창하고 적극 지지하기도 했다.
사사카와재단은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자 스스로를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파시스트'라 일컫는 사사카와 료이치가 세운 니폰재단의 산하 재단이다. 현재 니폰재단 회장을 맡고 있는 인물은 사사카와 료이치의 아들 사사카와 요헤이다. 그는 일본 극우 정치인들과 친분이 두터운 인물이다. 2017년에는 아베 신조 총리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모리 요시로, 아소 다로 등 전직 일본 총리들을 자신의 별장에 불러 대접한 사실을 사진과 함께 개인 블로그에 올리며 일본 정계 극우세력의 거물들과 친밀한 관계임을 과시했다.
사사카와 요헤이가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에는 한일 과거사에 대한 그의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2017년 “위안부 동상을 둘러싼 수수께끼"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지난 2002년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심미선-신효순 양 추모비와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을 같은 작가가 제작했다는 점을 들면서, 원래는 심미선-신효순 양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녀상이 위안부 추모상으로 둔갑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일본 안전보장간화회와 교류하는 성우회는 사사카와재단의 지원을 받는 주체는 일본 간화회이고, 성우회는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효복 전 성우회 국제전략교류협회장은 “사사카와재단에는 별 관심이 없고, 일본의 예비역 장군들과의 교류에만 관심이 있다. 사사카와재단은 미국 (단체)에도 자금 지원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자금이 어떤 성격인지, 사사카와재단이 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본 극우세력과 성우회 중심의 퇴역장성 간 교류가 간접적으로 우리 안보정책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현재 일본 극우세력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그들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만들어 진 게 사사카와재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정치적 목적이 직접적으로 드러날 때도 있고, 굉장히 은밀하게 진행되기도 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퇴역군인들의 모임이라든지, 또는 다른 나라 단체와 교류를 통해서 그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거죠. (안보 정책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죠. 성우회나 간화회는 각국 군의 선배들이니까, 퇴역한 장성들은 (현역 안보 정책결정자의) 선배들이기 때문에, 선배들의 그런 교류들이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계속 연결되는 거니까, 그런 측면에서 굉장히 위험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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