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회] 최용익 칼럼 - 다시 고개 든 색깔론

2012년 10월 12일 08시 04분

선거철만 되면 흘러나오는 유행가가 있습니다. 고장 난 녹음기처럼 끊어질만 하면 다시 되풀이되는 이 유행가의 이름은 북풍 혹은 색깔론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1987년 대선 직전에 발표된 김현희의 칼기 폭발 사건입니다. 이 이후에도 대선 때 대규모 간첩사건과 96년 총선 때 판문점 북한 무장군의 난입사건. 그리고 97년 대선 때는 이른바 총풍사건이 들통 나기도 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민주정부 기관에는 이 같은 일이 뚝 끊겼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 정권을 잡았던 민정당을 뿌리로 하는 보수정권들이 북풍을 정치적으로 활용해왔음을 반증합니다. 새누리당의 정문헌 의원이 주장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의 비밀녹취록 논란은 수십 년간 익숙하게 보아왔던 색깔론을 연상시킵니다.

새누리당은 정 의원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국기를 문란 시키는 엄청난 사건이라며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한편 자체적으로 대북 게이트 진상조사특위를 구성키로 하는 등 아연 활기를 띄고 있습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14선언이 준비 기획단장이었던 문재인 후보는 녹취록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면서 북풍몰이 과녁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런데 어째 좀 뜬금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현 정권의 공과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보통인 대선을 70일밖에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갑자기 5년 전의 일을 문제 삼는 속내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 때문입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부실한 발표도 의혹을 증폭시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단독 회담을 통해 NLL 즉 북방한계선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녹취록은 이재정 당시 통일부장관 등의 반박이 나오자 비공개 대화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에 대해 공식적인 대화록이 있을 뿐이며 이것은 1급 이상의 비밀인가증이 있어야 볼 수 있다는 재반박이 나오자 수도권에서 미군을 내보내겠다고 말했다고 공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내용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북방한계선은 남한의 영토를 표시하는 경계선이 아닙니다. 1953년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북한을 자극함으로써 정전 협정이 무효화 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남한의 배가 올라가지 못하도록 임의로 그어 놓은 가상의 경계선이 바로 북방한계선입니다.

김영삼 정부 당시 이향후 국방부장관이 NLL은 우리가 어선의 월북을 막기 위해 임의로 설정한 한계선으로 북한에서 이를 넘어와도 정전 협정과는 무관하다고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국제법상 남한의 영토선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북방 한계선은 지속적으로 남북간의 분쟁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어족자원이 풍부한 북방한계선 인근 서해상에서 남북한 어선들이 꽃게 조업 중에 이동하다 보면 보이지도 않는 선을 침범하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유엔 사령관이 임의로 만들어 놓은 경계선을 가지고 남북 간의 쓸데없는 기 싸움을 하고 있는 사이에 정작 재미는 중국이 보고 있습니다. 남북 어선들은 들어가지도 못하는 바라만 보고 있는 서해상에서 중국 어선들이 활개 치면서 꽃게를 싹쓸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남북대치 때문입니다.

2007년 10월 4일 정상회담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정에 합의한 것도 대안도 없이 군사적 긴장만을 고조시키는 NLL 인근 해역이 평화적 이용에 쌍방이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같은 남북 상생의 정신은 사라지고 다시 옛날 냉전시대로 회귀해 버린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아직도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색깔론을 언론들이 키우고 부풀리면 보수가 결집할 것이고 이를 통해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 하락과 리더십 부족으로 겪고 있는 새누리당의 내용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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