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탐욕으로 범벅된 보훈처와 나라사랑재단의 10년 유착

2021년 10월 20일 10시 53분

나라 사랑을 명분으로 내건,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보훈처의 보훈 사업은 위법·편법으로 얼룩졌다. 애국정신 선양이라는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비리·탐욕으로 범벅됐다.

■ 위법·비리·탐욕으로 범벅된 보훈처와 나라사랑재단의 10년 유착 

뉴스타파와 송재호 의원실(더불어민주당, 제주시갑)이 협업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한 보훈처의 기부금 비리와 위법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2011년 박승춘 보훈처장은 재단법인 함께하는나라사랑(이하 나라사랑재단)과 업무 협약을 맺고 119억 원을 재단에 몰아줬다. 공무원은 특정인에게 특혜를 제공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을 어겼다. (공무원행동강령 제7조) 
② 보훈처는 공기업에 보훈지청장 명의로 공문을 보내 기부금을 낼 것을 강요했다. 모금을 강요받은 공기업은 16곳, 기부금은 20억 6,700만 원이다. 국가기관은 기부금을 모집할 수 없도록 한 법률을 위반했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제5조 1항)
나라사랑재단의 2013~2018년 기부금 총액과 지급 수수료
③ 강제 모금된 기부금을 실제 사용한 곳은 보훈처였다. 재단이 한 일은 공기업에 영수증을 끊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재단이 해야 할 기부금 사용 결과 보고서까지 보훈처 공무원이 작성해 공기업에 제출했다. 
보훈처가 기부금 사업에 재단을 내세운 것은 기부금품법 위반 논란을 피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했다. 재단의 자체 보훈 사업 실적은 0건, 행정 실행 능력이 전무한 조직이었다.
⑤ 재단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보훈처로부터 기부금 지급 수수료 명목으로 3~6% 돈을 받아 갔다. 부당 지급받은 금액은 1억 8,000만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나라사랑재단의 2013년 기부금품 모집과 지출 명세서, 유령회사인 StoryRoct.inc에 지급된 보훈 성금이 확인된다.
⑥ 2013년 나라사랑재단은 5회에 걸쳐 정체불명의 유령회사로 보훈 성금 31억 원을 빼돌렸다. 보훈처는 지금까지 이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⑦ 특혜를 제공받은 나라사랑재단은 정기 이사회 미개최, 결산 미 보고, 감사 미 선임 상황에도 보훈처 소관 공익법인 자격을 유지했다. 재단은 전직 보훈처 공무원들이 만든 보훈처 전관 단체로 확인됐다. 
나라사랑재단의 이사장과 직원은 국가보훈처 출신이었다.
⑧ 2017년 정권이 바뀌자 보훈처는 적폐 청산을 내걸고 나라사랑재단을 감사했다, 하지만 보훈처는 유병혁 재단 이사장의 개인 비리 일부만 밝혀냈을 뿐, 위에 언급한 위법 사실에 대해선 어떤 조사도 하지 않았다.
⑨ 10년이 넘게 저질러진 보훈처의 기부금 비리와 관련해 박승춘 처장을 비롯해 형사 처벌을 받은 공직자는 단 한 명도 없다.

■ 숱한 증거 제시에도 보훈처는 거짓과 은폐로 일관 

비리의 내용도 중차대하지만, 진짜 문제는 비리의 당사자인 보훈처의 태도다. 보훈처는 거짓말로 있는 사실을 숨기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뉴스타파가 보훈처의 기부금 강제 모금 단서를 포착한 것은 지난 7월이었다. 당시 취재진은 ‘나라사랑재단을 통해 기부금을 모집한 사실이 있는지’ 보훈처에 질의서를 보냈다. 보름 뒤인 8월 10일 서면 답변이 왔다. 보훈처는 “나라사랑재단과 기부 업무를 추진한 적이 없다”는 허위 답변을 보냈다.
보훈처가 지난 8월 10일 뉴스타파에 보낸 서면 답변
이후에도 보훈처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뉴스타파는 보훈처의 거짓말에 대응하기 위해 공기업을 대상으로 증거 수집에 주력했다. 보훈처와 관계 때문인지 많은 공기업들은 사실 확인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뉴스타파는 송재호 의원실과 협업을 시도했다.
협업 결과, 보훈처가 공기업에 보낸 수많은 기부 협조 공문을 찾아낼 수 있었다. 확보한 공문엔 각 지방보훈청장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혔고, '나라사랑재단'을 명시해 기부금을 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기부 금액과 재단의 입금계좌까지 적어놓은 공문도 여럿 나왔다. 
그러나 보훈처는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뻔뻔했다. 취재진이 공문을 보여주며 지시자가 누군지, 보낸 경위가 뭔지 따졌지만, 보훈처는 해명을 회피한 채 침묵으로 버텼다. 심지어 공문의 존재와 보낸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뉴스타파의) 보도 내용을 보고 필요한 경우 대응하겠다”고만 답했다.
보훈처는 지방보훈청장 직인이 찍힌 공문을 제시해도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 보훈처장 공식 사과했으나, 재발방지·진상규명 약속은 안 해

보훈처는 국회 국정감사가 열리고 나서야 공식 입장을 냈다. 10월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황기철 보훈처장은 재단과 불법적인 유착·특혜 비리를 따져 묻는 송재호 의원의 질의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짧게 답했다. 보훈처가 소속 공무원을 동원해 기부금을 강제 모집하고 재단에 몰아준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한 것이다. 
황기철 보훈처장이 10월 12일 국회 정무위 국감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그것뿐이었다. 황기철 처장은 변명을 늘어놨다. “보훈 대상자의 복지 혜택를 늘리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또 보훈 선양이라는 선의로 시작했다는 궤변도 내놨다. 재발 방지 마련과 진상 조사 등은 명시적으로 약속하지 않았다.

■ 보훈처가 기부금에 개입 못 하도록 ‘보훈기금법률’개정안 마련 중

지난 석 달 동안 뉴스타파와 함께 보훈처 비리를 조사했던 송재호 의원은 현재 ‘보훈기금법’ 개정안을 마련 중이다. 보훈처가 아닌 검증된 외부 기관을 통해 기부 희망자가 직접 기부금을 낼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훈처가 보훈 기부 활동에 간여할 수 없도록 하고, 민간의 자율적인 기부를 보장하자는 게 개정 취지다. 현행 보훈기금법은 보훈처를 통해서만 보훈 대상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송재호 의원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기부 앞에 강제가 붙으면 그건 기부가 아니고 강요인데, 국가보훈처가 그 선을 넘은 측면이 있다”며 “국민이 선의에서 (기부금을) 내야 되지, 보훈처나 국가기관이 ‘돈을 내세요’ 요구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할 기부·후원 영역에 국가기관이 개입해 모금을 강요한 행위는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중대 범죄다. 이를 두고 송 의원은 '국기 문란'으로까지 질타했다. 국가보훈처가 답해야 할 차례다. 
제작진
취재강현석, 임선응, 박종화, 박중석
영상취재정형민
데이터최윤원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자료협업송재호 의원실
공동기획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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