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공공의료 확충 '골든타임' 또 놓치면 안 된다

2020년 06월 09일 11시 34분

코로나19 사태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언제든 2차 대유행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100년 전 스페인독감 때도 계절이 바뀌고 찾아온 두 번째 유행이 더 큰 피해를 낳았다.

뉴스타파가 의료·방역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 코로나19 대응 평가와 과제, 개선 방향을 물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방역은 상당히 성공을 거뒀으나 의료에는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정부의 신속한 대응과 시민의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으로 확산세를 잠재우는데 성공했지만, 환자를 위한 의료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고도 공공의료 기반 확충을 차일피일 미룬 것이 주원인이다. 이른바 ‘K 방역’에 대한 국제적 찬사 이면에 있는 공공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시급히 점검하고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히어로'에 기대는 코로나19 의료 대응

코로나19 의료 대응의 성패는 사람을 살리는 데 있다. 단순 격리 환자와 중증 환자를 신속히 분류하고, 중증 환자 관리에 집중해야 치명적인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환자의 생사를 가르는 것은 의료진, 특히 간호사의 숙련도라고 입을 모은다.

"중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 원인을 살펴보면 결국 간호사의 숙련도입니다. 이들이 어떤 훈련과 경험을 가지고 있느냐, 얼마나 성실하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예후가 달라집니다. 하지만 우리 의료 환경에서는 이런 숙련된 간호사가 나오기 힘듭니다. 간호사가 부족하고 한 사람에 맡겨지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막연히 코로나19 일선에 있는 간호사들을 영웅으로 추켜 세우고 헌신만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하지만 현행 민간 중심의 의료 시스템에서는 숙련된 간호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 인건비 비중이 큰 의료업계 특성상 간호 인력의 수는 늘 최저 기준에 맞춰진다. 실제 우리나라 인구 천명당 간호사 수는 3.5명으로, OECD 평균(7.2명)의 절반이 되지 않는다(2018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보건사회연구원). 간호사 인력 정원을 정한 의료법 시행규칙은 50년 넘게 개정되지 않고 있다.

반면 병원 수익과 직결되는 병상 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인구 천 명 당 병상수는 12.3개로 일본(13.1개)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많다. OECD 평균(4.7개)과 비교하면 2.6배 많다(2019 OECD Health Statistics). 간호사 한 명이 돌봐야 하는 병상 수가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훨씬 많다는 얘기다.

수익 추구 우선으로 인해 악화된 노동 환경은 간호사들을 현장에서 떠나게 만들고 있다. 자격증을 가진 간호사 가운데 실제 현업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절반 정도다. 매년 간호대학을 졸업한 새내기 간호사 중 절반 가까이는 1년을 채우지 못한 채 일터를 떠난다. 간호사의 평균 근속연수는 채 8년이 안 된다(2019 병원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 병원간호사회).


코로나19 사태 초기 진화에는 갓 임관한 간호장교들이 동원됐다. 부족한 경험으로 인해 수시로 위험에 노출됐지만 언론은 '영웅 만들기'에 주로 관심을 뒀다. 질병관리본부 지침에 따르면, 감염병 대응 때는 숙련도와 피로도 등을 감안해 충분한 인력을 확보한 후 의료진을 배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감염병 병동 간호사의 원칙은 가장 숙련된 간호사가 들어가는 겁니다. 방호복 갈아입는 것부터 숙련되지 않으면 의료진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갓 임관한 간호사까지 투입하게 됐는데 이것이 위험하다고 얘기하는 곳이 없습니다. 위대하고 헌신적이라고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위험한 일이라고 함께 지적을 했어야 합니다."
-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본부장

공공병원 없앤 자리에 오피스텔 들어설 예정

지난 3월 초, 대구에서는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첫 환자 발생 이후 보름만에 확진자 수가 5,000명을 넘어섰다. 대구 시내 병상은 4만 개. 하지만 막상 대규모 감염병 사태가 발생했을 때 확진자들이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은 부족했다. 병상의 97%가 민간 병원 소유였기 때문이다.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는 혼란 속에도 민간 병원의 병상을 동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없었다. 2,000명이 넘는 확진자들은 자가 격리를 하며 기다려야 했다. 코로나19 초기 사망자 75명 중 70명은 대구, 경북 지역에서 발생했다. 4명 중 1명(17명)은 입원 치료조차 받지 못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았다.


공공병원이었던 대구적십자병원은 지난 2010년 재정 적자로 문을 닫았다. 폐원 이후 시민사회 단체들은 같은 자리에 새 공공병원을 설립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대구시는 지난 1월 민간에 부지를 매각했다. 곧 수익형 오피스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대구시는 2009년부터 4,000억 원을 들여 '메디시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예산 일부가 공공병원 설립에 투입됐다면 코로나19 초기의 혼란과 사망을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9년부터 메디시티라는 광고판이 대구 시내 여기저기에 붙더군요. 의료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인데 지역 경제에 주는 효과는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예산으로 공공의료에 투자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도 예전 적십자병원 건물을 자주 지나쳤는데 보일 때마다 안타까웠습니다. 확진자가 1000명, 2000명 될 때 병상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조금씩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을 때도 대구엔 이미 병상이 없었습니다. 적십자병원 150병상이라도 있었으면 적어도 일주일은 버틸 수 있었을 것이고, 이송 대비를 하며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겁니다. 병상이 준비되고 체계가 갖춰져 있었다면 막을 수 있는 죽음들이라 안타깝습니다."
-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소 잃고 외양간 못 고친 메르스의 교훈 “감염병 사태는 또 온다”

취약한 공공의료에 대한 경고는 이미 5년 전 메르스 사태 때 나왔다. 당시 정부는 공공의료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국가방역체계 개편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전체 병상 가운데 공공병상의 비중은 2012년 11.2%, 2015년 10.4%, 2018년 10.0%로 꾸준히 줄고 있다.

감염병 전문병원을 세우겠다는 정부 계획은 5년째 도돌이표 논의 중이다. 300병상 이상의 감염병 전문병원을 권역별로 3~5곳 지정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현재까지 국립중앙의료원과 조선대 병원 단 2곳만 확정됐다.

메르스 사태 대책으로 추진된 국가지정 격리병상 확대 정책도 실효성이 없었다. 일반 병상이 있는 민간 병원 시설에 함께 설치됐기에 이번 감염병 사태에서 사용이 불가능했다.

메르스 사태 종식과 함께 공공의료 확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급격히 줄었다. 과거의 실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급히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단기, 중장기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가장 공공병원 비율이 낮은 나라가 일본하고 미국인데 여기가 24~27% 정도입니다. 현재 10% 수준인 공공의료 비중을 최소 25% 정도까지 올려야 재난 상황이나 필수적인 의료를 지탱할 수 있는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이 공공병원 30% 확보였어요. 근거는 이미 과거부터 다 있던 겁니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일단 당장 급한 중환자실을 확보하기 위해 민간병원과 협력해야 합니다. 그냥 중환자실을 비우라 하면 손해가 나니까 이것에 대한 보상 제도 같은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

제작진
취재오대양
촬영최형석 김기철 신영철
편집조문찬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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