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경향신문 기자 휴대전화도 통째 '디넷' 저장

2024년 09월 26일 15시 28분

'윤석열 명예훼손' 혐의로 기자들을 수사·기소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 ‘대선개입 여론조작 특별수사팀’(특별수사팀)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경향신문 A 기자의 휴대전화 전자정보를 대검찰청 통합디지털증거관리시스템(‘디넷’)에 통째로 저장해 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혐의와 관련된 전자정보만 압수·수색·수집하고 나머지는 모두 삭제해야 하는 규정이 특별수사팀 수사 과정에서 깡그리 무시됐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26일 경향신문 A 기자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진행한 바 있다. 
특별수사팀이 뉴스타파 봉지욱 기자에게 압수한 휴대전화를 돌려주고 ‘전자정보 삭제·폐기 또는 반환 확인서’(삭제폐기반환확인서)를 교부한 바로 당일, 해당 휴대전화에 담긴 전자정보 전체를 통째로 재압수한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검찰은 이런 사실을 피압수자인 봉지욱 기자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뉴스타파는 특별수사팀이 뉴스타파 기자 2명(김용진 대표, 한상진 기자) 등을 재판에 넘기면서 법원에 제출한 증거 기록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증거 기록에는 압수수색을 당한 기자들에게 교부한 삭제폐기반환확인서 등이 들어 있다.  
뉴스타파는 지난 6월부터 '윤석열 명예훼손' 수사과정을 통해 검찰 특별수사팀이 벌인 각종 불법 수사 행태를 연속 보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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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에 위치한 경향신문 본사 ⓒ연합뉴스

경향신문 A 기자 업무용 휴대전화, 대검 서버에 통째로 저장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지난해 10월 26일 경향신문 A 기자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A 기자는 취재원 연락처, 통화 기록, 메시지 등이 모두 담겨 있는 업무용 휴대전화를 뺏겼다. 
A 기자가 검찰로부터 받은 삭제폐기반환확인서를 보면, '(경향신문 A 기자 소유의) 아이폰 사본이미지는 주임검사의 지휘에 따라 법원 검증용으로 별도 보관함'이라고 적혀 있다. A 기자 휴대전화에 저장된 모든 정보를 대검 서버 ‘디넷’에 업로드했다는 말이다.
'사본이미지'는 휴대전화 등 원본 저장매체를 통째로 복제한 파일이다. 
지난 1월 16일 경향신문 A 기자가 검찰로부터 받은 휴대전화(애플 스마트폰 A2105)에 대한 전자정보 삭제·폐기 또는 반환 확인서. A 기자 휴대전화를 그대로 복제한 ‘사본 이미지’를 검찰이 별도 보관한다고 돼 있다.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하는 특별수사팀이 수사 대상인 기자들의 휴대전화 전자정보를 무단 복제해 ‘디넷’에 저장한 사실이 처음 알려진 건 지난 3월 뉴스버스 보도를 통해서다. 특별수사팀이 뉴스버스 이진동 대표를 압수수색해 손에 넣은 휴대전화 전자정보를 당사자인 이진동 대표의 동의 없이 ‘디넷’에 올린 사실이 문서로 확인됐다. (아래 사진)
뉴스버스는 이진동 대표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입수한 ‘목록에 없는 전자정보에 대한 지휘서’(검사 수사 지휘서)를 공개하며 "수사와 관련 없는 정보들이 대검 서버에 업로드된 화면을 확보했다”, "당사자 몰래 휴대전화 정보 전체를 대검 서버에 별도 저장‧관리하는 식으로 검찰이 불법 사찰을 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이 이렇게 획득한 정보를 별건 수사에 활용한다"고 보도했다. 
이진동 대표는 불기소처분을 받은 뒤인 지난 8월 19일, 검찰의 불법 사찰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검찰이 불법 수집한 전자정보의 당사자들은 자신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조차 모를 겁니다. 불법 수집 정보를 검찰이 어떻게 활용했는지까지 국정조사를 통해 낱낱이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 뉴스버스 이진동 기자
뉴스버스 이진동 대표 휴대전화에 대한 검찰의 '목록에 없는 전자정보에 대한 지휘서'. 휴대전화 전자정보 전체를 복제해 등록 저장하고 보존하라고 돼 있다. ⓒ뉴스버스

삼성 이재용 회장도 ‘검찰 디넷’ 문제로 1심 무죄 받아

‘디넷’ 관련 논란은 그동안 여러 번 제기돼 왔다. 주로 검찰이 ‘디넷’에 보관된 불법 수집 증거를 별건 수사에 활용한다는 지적이었다. 지난 4월 대법원이 위법 수집 증거를 이유로 검찰 수사가 잘못됐다고 판결한 검찰 공무원의 수사 기밀 누설 사건도 그중 하나다. 
지난 2018년 12월, 춘천지검 원주지청은 원주시청 간부 조 모 씨의 국토계획법 위반 여부 등을 수사하면서 조 씨의 휴대전화 전체 정보를 ‘디넷’에 불법 보관했다. 그리고 이렇게 보관한 증거를 바탕으로 해당 사건과 관련 없는 검찰 서기관 강 모 씨의 수사 기밀 누설 혐의를 수사·기소했다. 
지난 4월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최초 영장 집행이 종료돼 당연히 폐기돼야 할 전자정보를 대상으로 한 수사여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여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사건을 춘천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지난 2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재판도 같았다. 검찰이 해당 범죄사실과 무관한 전자정보인 소위 ‘장충기 문자’를 수사에 활용한 게 문제가 됐다. ‘장충기 문자’는 2016년 11월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이 수사 과정에서 확보했던 것으로 폐기됐어야 할 증거다. 검찰은 특검 수사가 끝난 뒤 ‘장충기 문자’ 등 장 전 사장의 휴대전화 전체 정보를 통째로 대검찰청 디넷에 저장‧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무관 정보 폐기했다면서... 뉴스타파 봉지욱 기자 휴대전화 전자정보 재압수

지난 8월 13일 '윤석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뉴스타파 봉지욱 기자는 압수됐던 휴대전화(애플 스마트폰(A1387) 및 유심 사본이미지)를 돌려받는 날 아무런 통보 없이 휴대전화 전자정보를 통째로 재압수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월 29일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 특별수사팀은 봉 기자에게 압수했던 휴대전화를 돌려주면서 전자정보 삭제폐기반환확인서를 교부했다. ‘포렌식을 통해 선별 작업을 마친 전자정보 원본은 모두 대검 서버에서 삭제한다’는 내용이 적힌 문서였다.   
그런데 같은 날 검찰은 봉 기자에게 삭제폐기반환확인서를 교부하면서 새로운 압수목록교부서를 같이 준 것으로 확인됐다. 교부서에는 삭제폐기 후 반환한 휴대전화(애플 스마트폰(A1387) 및 유심 사본이미지)가 압수 목록에 다시 들어 있었다. 봉 기자의 이름이나 서명도 없는 문서였다.  
지난 1월 29일 뉴스타파 봉지욱 기자가 받은 애플 A1387 휴대전화에 대한 전자정보 삭제·폐기 또는 반환 확인서.
지난 1월 29일 뉴스타파 봉지욱 기자가 받은 압수목록 교부서. 애플 스마트폰(A1387)에 대한 전자정보 삭제·폐기 또는 반환 확인서를 봉 기자에게 준 날, 검찰은 같은 휴대전화에 들어 있는 전자정보를 재압수했다며 이 문서를 봉 기자에게 전달했다. 
정리하면, 검찰이 봉 기자에게 혐의와 무관한 정보를 모두 삭제했다며 확인서까지 전달해놓고, 해당 휴대전화의 사본이미지를 당사자 몰래 재압수한 것이다. 봉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런 설명 없이 삭제폐기반환확인서를 교부할 때 압수목록을 슬쩍 끼워줬기 때문에 당시에 불법 압수 사실을 바로 알아차리기 힘들었어요. 법률이 아닌 대검 예규 따위로 피의자의 전자정보를 검사 마음대로 전체 저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 뉴스타파 봉지욱 기자

검찰, “대검 예규에 따라 적법” 주장.. 하지만 예규 자체가 위헌

뉴스버스 보도로 ‘디넷’ 논란이 제기된 이후 검찰은 줄곧 “적법한 수사여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고인 측이 재판 과정에서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사례가 잦아 불가피하게 전체 원본 파일을 보관할 수밖에 없다”, “대검 예규를 근거로 자료를 수집·보관하기 때문에 적법하다”고 했다.
검찰이 말한 대검 예규는 ‘디지털 증거의 수집·분석 및 관리 규정'이다. 여기엔 ‘법정에서 디지털 증거 재현이나 검증을 위해 이미지 파일 보관을 요청할 수 있다(37조 1항)’, ‘관련성 있는 사건에서 증거 사용이 예상되면 디지털 증거를 폐기하지 않을 수 있다(54조 2항)’ 같은 조항이 들어 있다.
하지만 행정기관 내부 지침에 불과해 구속력이 없는 대검 예규가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에는 ‘수사기관이 강제력을 행사할 때는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서만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대검 예규는 대법원 판례와도 맞지 않는다. 2022년 대법원은 혐의사실과 관련 없는 정보를 그대로 보관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수사기관이 범죄 혐의사실과 관련 있는 정보를 선별하여 압수한 후에도 그와 관련이 없는 나머지 정보를 삭제·폐기·반환하지 아니한 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면 범죄 혐의사실과 관련이 없는 부분에 대하여는 압수의 대상이 되는 전자정보의 범위를 넘어서는 전자정보를 영장 없이 압수·수색하여 취득한 것이어서 위법하다” 

- 대법원 2021모1586 결정 (2022. 1. 14.)
‘법원의 싱크탱크’라 불리는 사법정책연구원 또한 혐의 무관 정보는 영장 수집 허용범위가 아니기 때문에 저장 자체가 위헌이라고 판단한다. 사법정책연구원 박병민 연구책임자는 연구위원(판사)은 2021년 3월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경찰 내규에는 별건 정보가 포함된 이미징 복제본 전부를 보관할 수 있게 한 규정이 발견되지 않는다”면서 형사소송법에 ‘압수목록에서 제외된 정보를 지체없이 폐기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뉴스타파 본사,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 한상진 기자· 봉지욱 기자 주거지 압수수색 현장 사진 모음. 

예규 개정한다고 하지만… '원본 통째 저장’은 여전히 위헌

최근 검찰은 ‘디넷’ 관련 대검 예규를 개정한다는 입장을 밝힌 걸로 전해진다. 지난 9일 한겨레 보도를 통해서다. 한겨레는 ‘공판 검사가 법정에서 증거 입증을 위한 경우 이외에는 전체 이미지 파일에 접근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내용을 검찰이 대검 예규에 새로 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는 주임검사 등의 요청으로 디넷에 보관된 자료를 삭제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대검이 직권으로 삭제하도록 예규를 개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대검 예규를 개정하면서도 ‘전자정보 전체이미지(복제본) 디넷 보관’은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대검 예규를 손보는 것과 상관없이 헌법 위반, 영장주의 위반 지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검찰이 대검 예규를 개정하든 안 하든, ‘디넷’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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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이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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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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