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제로의 한반도, 김정은의 '파병 베팅'은 무엇을 노리나
2024년 11월 20일 18시 45분
지난 2009년 7월 미국 무역대표부는 연방관보에 한미FTA와 관련한 공고문을 실었습니다. 제목은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한 의견 요청. 미무역 대표부는 이 무역 공고문을 통해 한미FTA는 아직 발효되지 않았다, 라고 전제하고 자국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미FTA와 관련해 어떠한 의견이라도 받겠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한미FTA가 무역과 투자에 미칠 영향. 자국, 노동자, 농민, 기업과 소비자에게 미칠 경제적 비용과 편의. 특별한 관심사를 다루기 위한 추가조치 등 세 가지 분야에 대한 의견을 접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접수기간은 공고일로부터 2009년 9월 15일까지. 50일 동안이었습니다. 이 기간에 어느 정도의 의견이 들어왔을까. 주한미대사관이 2009년 9월 본국에 보낸 한 외교전문을 보면 한미FTA에 대한 의견을 요청하는 연방관보 고지에 따라 모두 500건의 건의사항이 들어왔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 미무역 대표부는 권고안을 개발하기 위해 이 건의 사안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미국정부가 한미FTA 재협상을 위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을 때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지난 2009년 초 오바마 행정부가 잇따라 한미FTA의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서자 당시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은 재협상은 없다며 청와대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당시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 수석,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 김종훈 통상교섭 본부장 등도 한 목소리로 재협상 불가를 외쳤습니다.
<2009년 1월 14일 MBC 뉴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 본부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재협상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2009년 2월 4일 KBS 뉴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 본부장은 한미FTA 재협상 가능성과 관련해 재협상은 사리에 맞지 않으며 정부는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2009년 3월 11일 MBC 뉴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 본부장은 한미FTA와 관련해서 재협상이나 추가 협상이 없다느 정부방침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김종훈 통상교섭 본부장은 이듬해인 2010년 6월에도 점 하나 바꾸는 것도 개정이라며 재협상 가능성을 일축했습니다.
<2010년 6월 23일 김종훈 브리핑 영상>
협정문에 점을 찍으는 거는 그건 개정이죠. 점이든 콤마든 뭐 그러니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네.
하지만 주한미대사관이 파악한 이명박 정부의 속내는 재협상 불가라는 공식 입장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2009년 2월 12일 당시 주한미대사 스티븐스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보낸 비밀 전문입니다.
한국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지나치게 존중한다는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공식적으로는 재협상 불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재협상이 일방적인 양보로 간주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진전된 방안을 찾기 위해 우리와 논의하기를 원할 것으로 간주됐다, 라는 취지의 정보 보고가 담겨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겉으로는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모양만 잘 갖춰지면 재협상에 응할 것이라는 신호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정황은 2009년 2월 18일 미국무가 작성한 2급 비밀 문건에서도 확인됩니다. 이 전문에 따르면 당시 워싱턴에 방문한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스타인버그 미국무부 부장관이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FTA 합의 내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하자 김 수석은 한국 정부는 이 문제가 한미 관계에 부담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이명박 정부의 한미FTA 재협상 수용 가능성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연방 간부에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등 재협상 준비에 나섰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2010년 말 실제 한미FTA 재협상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재협상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다, 갑자기 입장을 바꿨습니다.
<2010년 12월 7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영상>
재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과는 상당히 다른 결과라고 생각을 하고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에 대해서 대단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김동철 / 민주당 의원]
이것은 한국외교사에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기록될 날이고....
미국 정부는 재협상을 염두에 두고 자국민들의 의견까지 새로 수렴을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ISD 즉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 삭제 등 재협상에 대비한 어떠한 의견 수렴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결국 기존보다 더 후퇴한 재협상 결과를 초래했던 것입니다.
한편 미국 비밀문서를 보면 미국이 한국정부 못지 않게 한미FTA를 간절하게 원했던 사실도 여러 곳에서 확인됩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08년 2월 21일. 주한미대사관이 미국무부에 보낸 전문은 “우리 앞에 있는 목표는 먼저 한미FTA 비준이다. 이것은 우리 미국 경제에 막대한 이윤을 창출해 줄 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을 영속하는 경제적 지주의 창조를 의미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2009년 11월 5일 스티븐스 당시 주한미대사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낸 보고서에는 “한미FTA는 다음 세대에서도 한국을 미국에 붙들어 맬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기에 한미FTA의 상징적 효과는 막대한 것이다”라며 한미FTA의 전략적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는 대목이 들어있습니다.
한미FTA에 대한 미국의 이같은 내부 입장은 미국과의 FTA 타결과 비준 자체에 지나치게 매달려 온 한국 정부의 협상 전략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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