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2014년 남욱 등이 만든 불법 비자금 규모는 42.5억 원, 전체 사용처 규명이 관건
② 42.5억 중 30억 원은 업자들이 ‘생활비, 전세금, 골프회원권 구입’으로 사용
③ 대장동 수사기록에 박영수 전 특검 측에 비자금 흘러간 정황
④ 2015년 수원지검 수사받던 남욱, “박영수 선거비 대줬다” 진술
대장동 특혜 의혹을 다시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파악한 대장동 민간업자들의 불법 비자금 규모는 42억 5천만 원이다. 남욱 변호사 등이 2014년 4월부터 약 1년 동안 40억 대 불법 비자금을 만들어 대장동 인허가 로비에 사용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이 파악한 불법 비자금 총액은 42억 5천만 원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구속영장 청구서 등에 따르면, 남욱은 박영수 전 특검의 인척으로 알려진 분양대행업자 이기성으로부터 22억 5천만 원, 토목업자 나모 씨로부터 나머지 20억 원을 받아 총 42억 5천만 원 규모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했다. 이 과정에서 남욱은 2013년 자신들이 따낸 위례신도시 개발 사업권을 미끼로 썼다. 또 비자금을 약속받는 자리에 정민용 성남도시개발공사 팀장을 대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42억 5천만 원의 비자금 중 4억 원이 2014년 이재명 성남시장 재선을 위한 자금으로 전달됐다고 본다. 유동규와 남욱이 이재명 측에 선거자금을 상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조선일보는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4억 원 상납을 뒷받침할 새로운 물증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11월 30일 자 1면 기사. 검찰이 분양업자의 내용증명을 ‘최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새로운 물증이라던 ‘내용증명’, 지난해 이미 검찰이 파악
그런데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 내용증명은 새롭게 나온 증거가 아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내용증명을 이미 확보해 조사했다. 당시 대장동 업자인 정영학 회계사가 내용증명의 핵심 내용을 그림으로 설명한 자필 메모까지 작성해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정영학 자필 메모에는 이기성이 보낸 내용증명의 개요가 고스란히 담겼다. 메모에 따르면 이기성은 2020년 4월, 내용증명을 조우형에게 보냈다. 조우형은 대장동 개발 종잣돈을 끌어온 자금책으로 천화동인 6호의 실소유자다.
이기성이 조우형에게 내용증명을 보내기 4년 전인 2016년 6월 28일, 토목업자 나모 씨가 이기성에게 내용증명을 보냈다. 대장동 토목공사를 약속받고 20억 원을 줬는데, 약속이 이뤄지지 않자 반환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난처해진 이기성이 대장동 업자들을 압박하는 내용증명을 보낸 것이다.
정영학 메모에 40억 대 비자금 조성 수법 적혀
정영학 메모에는 불법 비자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조성 수법이 나온다. 우선 남욱 변호사는 위례 아파트 시공사인 호반건설과 불법 이면 합의를 맺었다. 이후 남욱은 호반 측에 나중에 분양대행 수수료를 부풀려서 줄 테니, 부풀린 만큼 돈을 미리 달라고 요구했다.
위례 아파트 분양을 맡은 이기성은 이면 합의에 따라 남욱에게 30억 원을 송금했다. 남욱의 계좌가 아닌 차명 계좌를 통해서였다. 이 비자금 중 8억 3천만 원이 김만배에게 갔고, 김만배는 이를 다시 유동규에게 건넨 것으로 나온다.
▲이기성 내용증명을 설명하는 정영학의 자필 그림 메모. 정영학은 이 메모를 지난해 9월 검찰에 제출했다.
정영학 녹취록에도 40억 대 비지금 내용 교차 확인
이러한 정영학 메모 속 비자금 조성 내용은 2020년 10월 30일 자, 정영학 녹취록에서도 교차 확인된다.
이날 김만배, 유동규, 정영학은 경기도 분당의 한 노래방에서 만났다. 김만배는 이기성의 '내용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유동규에게 “너랑 나랑 받은 돈은 위례 것까지 포함해서 8억 3천이야. 인정해? 안 해?”라며 따지듯이 말했다. 대화 내용을 종합하면, 김만배와 남욱은 '비자금은 나보다 네가 더 썼다'면서 비자금 사용처를 두고 갈등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정영학 녹취록(2020년 10월 30일 자). 김만배가 이기성의 내용증명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신과 유동규가 비자금 중 8억 3천만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40억 대 비자금 사용처 확인이 대장동 특혜 규명의 열쇠
대장동 업자들이 만든 불법 비자금 사용처는 대장동 비리의 전모를 파악하는 중요한 고리다. 그러나 검찰이 이재명 측에 선거자금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는 4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38억 5천만 원의 행방이 묘연하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정영학 녹취록과 검찰 수사기록을 분석한 결과, 대장동 업자들이 40억 대 비자금을 어디에 썼는지 사용처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여럿 발견했다.
먼저 2020년 5월 7일 자 정영학 녹취록.
정영학은 김만배와 대화 도중 “남욱으로부터 비자금 중 12억 9천만 원을 받았는데, 이 중 4억 7천만 원을 다시 남욱에게 송금했고, 4억 5천만 원은 대장동주민대책위원장이 소송에서 진 비용을 대납했으며, 남은 4억 원으로 골프장 법인회원권을 사들이고, (사업) 운영비로 썼다”고 말한다.
42.5억 중 약 30억, 대장동 업자끼리 사용 추정
남욱도 지난해 10월 검찰 조사에서 비자금 사용처를 일부 진술했다. ‘비자금 중 3억 원은 대장동 자금책 조우형에게 주고, 3억 원은 남욱 본인의 생활비로, 3억 원은 사업비로 썼다’고 말했다. 남욱은 42억 5천만 원의 비자금 중 30억 원가량을 김만배에게 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김만배가 비자금 중 8억 원을 자신의 전셋집을 얻는 데 쓴 걸로 안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정영학 녹취록과 검찰 수사기록을 종합하면, 42억 5천만 원의 비자금 중 약 30억 원은 대장동 업자들이 쌈짓돈처럼 나눠 쓴 것으로 추정된다.
▲정영학 녹취록(2020년 6월 17일 자) 김만배가 이기성에게 말한 내용을 정영학에게 설명하고 있다.
나머지 8억 대 비자금은 누구에게 갔나
앞서 설명한 대로 검찰은 비자금 4억 원이 이재명 측에 선거자금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대장동 업자들이 나눠 쓴 것으로 추정되는 30억 원을 뺀 나머지 8억여 원은 누구에게 갔을까.
뉴스타파는 2020년 6월 17일 자, 정영학 녹취록에서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비자금 사용처를 포착했다. 이날 김만배는 정영학을 만나 자신이 이기성과 무슨 말을 나눴는지 설명했다.
김만배는 이기성에게 “이러다 진짜로 니네 형 변호사 회장 나올 때부터 그런 것까지 다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 남욱이 그 당시에 돈 낸 거. 남욱이가 돈이 어딨었겠냐며 다 그 돈으로 넣은 거”라면서 “이제 그만해라, 이러다가 다 죽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영학 녹취록에 등장하는 새로운 비자금 사용처 ‘박영수 변협회장 선거자금’
여기서 ‘니네 형’은 이기성의 친인척으로 알려진 박영수 전 특검을 지칭한다. ‘그 당시는’ 박 전 특검이 2015년 1월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한 때를 뜻한다.
김만배는 이기성에게 “남욱이 박영수의 변협 회장 선거자금을 댔는데, 그 돈의 정체가 바로 이기성 네가 남욱에게 건넨 비자금이었다”면서 협박을 “그만하라”고 경고한 것이다.
남욱은 지난해 10월 검찰 조사에서 박영수 전 특검의 선거자금을 자신이 댔다고 진술했다.
당시 검사가 “이기성에게 돈을 빌릴 때 박영수가 도와줬나요?”라고 묻자, 남욱은 “그런 것은 없었다”면서 “오히려 2012년 1월경 박영수가 변협회장 선거에 나갔을 때 그때 제 돈으로 1억 5천만 원 정도를 써서 도와줬다”고 진술했다.
박영수 전 특검은 2015년 1월,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남욱이 2012년이라고 말한 것은 시기를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남욱의 검찰 피의자신문조서(2021.10.19) 남욱이 “박영수 변협 회장 선거 때 1억 5000만원을 써서 도왔다”고 진술했다.
“박영수 전 특검 1억 5천만 원 써서 도와줬다” 남욱 검찰 진술
그런데 2015년은 수원지검이 남욱, 정영학 등을 수사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남욱은 횡령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시행사 대표와 함께 회삿돈을 빼내고, ‘민간 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정치권에 돈을 뿌린 혐의였다.
검찰은 그러나 횡령 혐의는 빼고 재판에 넘겼다. 이후 남욱은 1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고, 검찰은 항소하지 않아 법적 처벌을 피했다.
당시 수원지검장이 강찬우 검사장이었다. 강 검사장은 퇴직 후 2018년, 자신이 속한 로펌에서 화천대유의 법률 자문을 맡는다. 강 검사장은 언론에 “소속 로펌이 자문을 맡은 것이고, 2015년 수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박영수 전 특검은 2011년 ‘대장동 자금책’ 조우형의 변호를 시작으로 대장동 업자들과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는 ‘50억 클럽’ 명단에도 들어 있고, 그의 딸은 화천대유에서 근무하면서 대장동 아파트를 특혜 분양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변협회장 선거자금 제공과 수사 무마 의혹과 관련해, 박영수 전 특검은 “변협 회장 출마 당시 남욱 변호사가 선거 홍보를 도운 적은 있지만, 자금 지원과 수사 무마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보내왔다.
결국, 대장동 업자들이 각종 로비를 목적으로 불법 조성한 40억대 비자금의 정확한 사용처와 위법 여부는 검찰이 수사로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검찰은 현재까지 ‘이재명 선거자금 4억 원’ 외에 구체적인 비자금 사용처를 밝히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