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는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 또 사라진 '국가의 의무'

2023년 03월 08일 17시 00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4개월이 넘었지만, 추모·기록 시설 건립 계획은 한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가 울며 겨자먹듯 대책을 내놨지만 유가족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윤석열 정부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통해 추모시설을 설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태원 참사 반복 안 하려면, 추모시설 필요하다

사회적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추모·기록 시설 건립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유가족과 피해자들을 위로한다는 의미를 넘어, 재발 방지 등 사회적 이익이 크다고 한다. 조영삼 뉴스타파 전문위원(전 서울기록원장)은 "참사가 일정한 시간 동안 계속 반복되는 이유는 재난을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하지 않고, '재난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국가적 약속이 말로만 이뤄졌기 때문이다. 약속은 물리적 실체로 나와야 한다. 추모·기억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추모시설을 통해 안전과 생명에 대한 국민적 의식이 계속 고취시켜 유사 사고의 재발을 방지한다면, 이는 비슷한 참사가 발생했을 때 수습하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할 것이다"고 했다. 
김익한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도 "이태원 참사는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에 역사적 상흔을 남긴 몇 안 되는 사건이다. 그런데 벌써 '참사를 어떻게 끝까지 기억하고 살아갈 수 있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잊게 되면, 한국 사회가 개발 독재 이후 지금껏 뛰어온 방향을 의미 있는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게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사회적 참사 추모시설의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뉴욕의 '9·11 테러 추모 박물관'이다. 2001년 테러가 일어난 바로 그 장소(그라운드 제로)에 지었다. 매년 많은 미국인들이 찾고 있다. 학생들의 교육 장소로도 활용되며 누구나 박물관 웹사이트에 가면 테러 당시 상황, 수습 과정, 피해자 현황 등을 알 수 있다. 백종우 경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9·11 테러 추모관에 들어가면, 맨 앞에 '시간의 흐름도 결코 당신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 없다'는 경구가 적혀 있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 사회적 노력을 통해서만이 사회적 재난 치유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에 있는 '9·11 테러 추모 공원·박물관'. 2001년 테러가 발생한 바로 그 장소에 만들어졌다.  

추모시설에 무관심한 서울시... 임시 추모공간도 없다

이태원 참사 추모시설 건립의 일차적 책임은 서울시에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참사 직후인 지난해 11월 1일 "참사에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참사 수습을 위해 모든 행정력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서울시가 참사 발생 네 달이 넘도록 추모시설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는 점이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유족들이 공식적으로 요구한다면 논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의 요청 없으면, 추모시설을 만들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유가족이 제안하기 전에 서울시가 선제적으로 추모시설 얘기를 꺼낼 순 없느냐"는 질문에는 "지금 시점에선 답변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임시 추모공간이라도 만들어지길 원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정부에 임시 추모공간 설치를 요구했다. 정식 추모시설 건립은 계획부터 개장까지 적게는 5년, 길게는 10년이 걸린다. 9.11 테러 추모 박물관도 테러 발생 10년 만인 2011년에야 문을 열었다. 임시 추모공간도 최소 수년 간은 운영될 수밖에 없다. 어디에 임시 추모공간을 마련할 것인지, 어떻게 공간을 채울 것인지 등 여러 조건을 신중히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김익한 교수는 "추모· 행위를 할 때 장소성을 유지하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제일 중시되고 있다. 장소성의 출발은 원래 그 장소다. 원래 그 장소의 장소성을 잃게 돼 전혀 다른 곳에 추모공간이 만들어지면, 의도적으로 추억거리를 끄집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조영삼 전문위원도 "가급적 이태원에 두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제시한 임시 추모공간 장소 후보지는 모두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500m 이상 떨어진 12평짜리 반지하 공간과 800m 이상 떨어진 민간건물(2층, 4층)을 제안했다. 반지하 공간을 추모공간 후보지로 고르며 서울시는 "상인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장소의 상징성, 시민 접근성, 공공성 측면에서 유가족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12평짜리 반지하를 보고 굉장히 놀랐다. '어떻게 이런 곳을 제안을 할 수가 있느냐'고 했더니 서울시에서 '그거는 보시지 마시고 다른 빌딩 건물만 보시라'고 했다. 후보지를 3개나 준비했다는 식으로 구색 맞추기만 한 것이다. 심지어 해당 건물주는 '추모공간이 들어올 것이라고 들어본 바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만든 이태원 참사 임시 추모공간 후보지 관련 문서. 후보지 중 하나는 12평 반지하 공간이었다. 서울시는 이 공간을 선정한 이유를 '상권 밀집지역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해 상인 반발 최소화 예상'이라고 했다.  
서울시가 지난 1월 제안한 새로운 후보지인 녹사평역 지하 4층도 추모공간으로는 부적합했다. 취재진이 직접 현장을 찾아보니, 녹사평역은 참사 현장에서 500m이상 떨어져 있었고, 유동 인구도 출퇴근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많지 않았다. 특히 지하철 소음과 안내방송 소리가 심해 추모 분위기에도 맞지 않았다. 조영삼 전문위원은 "지금 서울시에서 제안하는 곳들은 일부러 큰 맘 먹고 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다. 피해자로서는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을 원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좀 더 전향적으로 장소 물색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서울시가 이태원 참사 임시 추모공간으로 제안한 녹사평역 지하 4층. 지하철 개찰구 바로 옆에 있다. 직접 현장에 가보니 수시로 지하철 소음과 안내 방송이 들렸고, 출퇴근 시간을 빼고는 인적도 드물었다. 

"서울시, 추모공간 문제를 '악성 민원' 정도로 여긴다"

서울시는 임시 추모공간 설치와 관련 소통방식에서도 문제를 보였다. '일방적 행정'이 문제였다. 그동안 서울시는 '유가족과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후보지를 찾았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박유진 서울시의원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는 임시 추모공간 문제와 관련해 유가족과 공식 회의를 가진 적이 없었다. 서울시 관계자가 유가족 측에 전화를 걸어 몇마디 얘기를 나눈 정도다. 서울시장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6일 국회 국정조사 당시 유가족 휴게실에 찾아가 5분 정도 얘기를 나누고, 1월 11일 이태원 분향소를 찾아 유가족과 10분간 면담한 게 전부였다.
박유진 서울시의원은 "논의 안건을 미리 유가족과 서울시 쌍방이 합의하고, 내용을 준비해서 만난 건 사실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국정조사장에서도 갑자기 휴게실에 들어오고, 이태원 분향소에 잠깐 와서 행안부 국장을 소개한 게 전부다. 그게 공식 만남인가. 그런데 지금 서울시에서는 소통을 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고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만남이 기록된 문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가족을 만난 건 두 번에 불과한 걸로 나와 있다. 모두 오세훈 시장의 '일방적' 방문이었다. (출처 : 박유진 서울시의원)
지난 1월 녹사평역 지하 4층을 임시 추모공간 후보지로 제안하면서도 오신환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유가족들에게 예고없이 전화로만 통보했다. 당시 직접 전화를 받았던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오신환 부시장이 전화해서 녹사평 지하 4층을 마련해 놨는데 와서 오세훈 시장의 설명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아니 갑자기 그걸 전화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느냐'고 말했다"고 했다. 
유가족들이 녹사평역을 거부하자 서울시는 '알아서 유가족들이 대체 후보지'를 찾으라는 식으로 나왔다. 오신환 부시장은 지난 2월 7일 언론 브리핑에서 "녹사평역 외에 선호하는 추모 공간이 있어 주말까지 유가족분들께서 제안을 해 주시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청 관계자도 "현재 다른 대체지는 찾지 않고 있다. 녹사평역까지다"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서울시가 임시 추모공간 문제를 빨리 처리해야 할 '악성 민원' 정도로만 여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마치 우리가 추모공간을 만들어달라고 민원을 넣고, 서울시가 이를 해결해주는 듯한 모양새인데,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임시 추모공간 민원을 넣은 게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것을 왜 하지 않느냐고 서울시에 따지는 겁니다. 당연히 본인들의 책임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으면 본인들이 어떻게든 이 부분을 해결하고 수습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마치 남의 일인 것 마냥 행동하고 있어요. 

이정민 /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부대표 (고 이주영 씨 아버지)

'무한 책임'은 어디에... 대통령실도 침묵 일관 

서울시의 일방적 태도는 최근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임시 추모공간 설치가 지지부진하자 유가족들은 참사 100일을 맞은 지난 2월 4일 서울시청 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참사 직후 기습적으로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던 정부가 위패·영정도 없이 분향소를 세웠던 바로 그 자리였다. 서울시는 '유가족들이 서울시의 소통 노력을 무시하고 광장을 불법 점거했다'는 식으로 맞섰다. 
(서울시는 유가족 측에) 가장 안정되고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녹사평역 내부 공간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유가족들은) 다른 이견 없이 검토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유가족 측은 참사 100일 추모제 직전에 광화문광장 세종로 공원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고, 서울시는 규정상 불가함을 통보하였습니다. 이후 아무런 소통 없이 유가족 측이 지난 2월 4일 서울광장에 추모 공간을 기습 무단 불법적으로 설치하게 된 것입니다.

오신환 / 서울시 정무부시장 (지난 2월 7일 언론브리핑)
박유진 서울시의원은 '도대체 어딜 봐서 서울시가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박 시의원은 "지금 서울시는 유가족이 광장 분향소를 설치하며 서울시와 협의가 없었다고만 말하고 있다. 그럼 정부가 '관제 추모' 분향소를 만들 때는 유가족과 협의가 있었나? 전혀 없었다. 그냥 나라가 임의로 세운 거다. 무한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한 서울시라면, 유가족들이 어떤 의견을 주기 전에 먼저 분향소를 세우자고 제안해야 했다. 그 제안이 그렇게 어려웠던 건가"라고 말했다. 
결국 임시 추모공간에 대한 논의는 쏙 들어갔다. 서울시는 "유가족과 협의 중"이라고만 얘기할 뿐 아무런 해법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녹사평역 지하 4층 하나 던져주고 '이거 받으려면 받고 말라면 말아라. 그리고 이거 받지 않으면 (서울광장 분향소) 밀어버리겠다'는 식이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3일 유가족들은 대통령실을 찾아 면담도 요구했다. 더는 서울시와 논의를 이어가는 건 무의미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대통령실은 "면담을 고려해 보겠다"고만 할 뿐 2주 넘게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뉴스타파는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에게도 연락해 유가족과의 면담 여부, 추모시설 설치 등에 대한 입장을 물었지만, 아무런 답도 듣지 못 했다. 
지난 2월 15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에서 주최한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 

"이태원 참사 특별법 통해 당당히 들어가겠다"

지난 7일 서울시는 갑자기 언론 브리핑을 열고, 유가족 측에 '4월 1일부터 5일까지 서울광장 앞 분향소 공동 운영 후 철수', '서울시청 근방 임시 추모공간 설치', '항구적인 추모시설 설치 논의'를 제안했다. 이 제안을 수용하는 대신 서울광장에 세운 분향소는 철거하라는 의미였다. 브리핑에서 이동률 서울시 대변인은 "지난주부터 유가족 측 대리인과 상의했고, 제안 내용도 전달했다. 유가족 측이 긍정적으로 화답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서울시 제안을 거부했다. 지난 4개월 동안 정부·서울시가 보인 행태에서 이미 신뢰를 잃었다는 이유다. 확인 결과, 7일 발표된 서울시 제안 내용도 유가족과 상의 없이 정해진 것이었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언론 플레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면담을 두 번씩 요구했는데 다 무시됐습니다. 저희가 그동안 요구했던 사항들이 전부 다 무시됐어요. 처음부터 온전하게 추모만 할 수 있는 분향소를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다 무시됐습니다. 서울시청 광장으로 나오니까 이제서야 (임시 추모공간을) 만들어 주겠다고요? 지금 서울광장 분향소조차도 인정을 안 하는 사람들이 무슨 벌써 항구적인 추모공간을 논의하겠어요. 저희들을 어디 그냥 무인도로 보낼 생각인가 보죠?

이종철 /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이제 유가족들은 더는 정부와 서울시에 끌려다니지 않고,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통해 추모시설 설치를 이뤄내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2월 28일 유가족 측이 발표한 특별법 요구안에는 '추모시설 설치 등 추모사업 실시', '추모재단 설립 및 지원', '피해자와 이태원동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시행'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유가족들은 특별법 요구안을 국회에 전달할 계획이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부대표는 "마치 우리를 공간이 없어 떠도는 노숙자처럼 대하는 행태 자체가 너무 화가 난다. 특별법을 만들고, 그 특별법을 통해서 영구적인 추모공간이 만들어지면 그때 우리는 당당하게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8일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협의회 주최로 열린 '이태원 참사 특별법'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 
전문가들도 지금 정부에 추모시설 설치와 추모사업의 의사결정권을 줘선 안 된다고 말했다. 참사의 가해자인 정부의 손이 아닌 당사자·시민 주도의 추모와 기록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익한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의 책임 그룹은 권력이다. 그런데 추모 관련 의사결정과 집행을 그 권력이 하고 있는 이 기현상을 극복하지 않는 한 어처구니없는 추모는 반복될 것이다. 정부가 가해자일 경우, 추모시설이나 추모사업을 하고, 관련 문제를 푸는 주체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특별법을 통해 추모위원회를 만들고 권한을 정의하면 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제작진
취재홍주환
촬영정형민
편집최예은 윤석민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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