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朝東)100년] ⑫ "언론은 공기나 물과 같다"...유신법정 최후진술

2020년 03월 30일 09시 00분

경기도 의왕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료실에는 아주 오래된 카세트테이프가 소장돼 있습니다. 이 테이프에는 41년 전 1979년 7월, 박정희 유신독재 치하의 법정에 선 젊은 기자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반독재 인권활동가였고, 바로 그 법정에 섰던 박종만 동아일보 해직기자의 아내가 몰래 녹음한 것입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소장돼 있는 카세트테이프. 이른바 ‘민권일지’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의 항소심(1979년 7월 25일) 최후진술이 담겨 있다.

1978년 동아일보 해직기자 10명은 이른바 ‘민권일지사건’으로 구속 기소됐습니다. 죄명은 긴급조치 9호 위반. 박정희 독재와 사주에 맞서 자유언론를 지켜려다 쫓겨난 젊은 기자들이 감옥에 갇힌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제도언론이 외면했던 노동자와 농민의 비참한 실태와 시민학생의 민주화 요구를 기록해 알렸기 때문입니다. 이게 ‘죄 아닌 죄’가 됐고 1979년 서슬퍼런 유신 법정에 섰습니다.

▲ 1971년, 동아일보 기자 시절 동아일보 별관 출판국(지금의 동아일보 신사옥 자리)에서 촬영한 2년차 기자 정연주의 젊은 모습

▲ 1979년 12월 14일 성동구치소 출소 직후 김종철 동아일보 해직기자의 모습.(한복입은 이) 이에 앞서 출소한 안종필(김종철 뒷편에서 왼쪽 안경쓴 이), 정연주(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 안경쓴 이), 박종만(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해직기자들의 모습도 보인다.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 군부정권이 들어서면서 동아일보 해직 기자들의 법정 육성은 오랫동안 공개되지 못했습니다. 민권일지 사건으로 구속돼 옥고를 치른 안종필, 홍종민, 성유보, 안성열 등 해직 기자들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이들도 이제 반백의 노인이 됐습니다. 이들은 지금도 자유언론, 그리고 권력과 자본에서 독립된 언론을 꿈꾸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41년만에 이들의 진술을 오롯이 공개합니다.

뉴스타파는 조선일보 창간일인 3월 5일부터 동아일보 창간일인 4월 1일까지 조선과 동아일보, 두 신문의 정체를 알리는 [조동(朝東)100년 두 신문 이야기] 기획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뉴스타파는 이를 토대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 오는 8월 개봉할 예정입니다.

동아일보 창간100년이 되는 4월 1일(수)에는 2차대전 이후 부역 언론을 단죄한 프랑스 사례를 통해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전합니다.


제작진
취재박중석 김용진 조현미 홍주환
데이터최윤원
촬영최형석 신영철
편집윤석민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자료협조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유언론실천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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