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동(朝東) 100년]⑧ 별장 파티와 호텔...권력과 야합한 신문족벌

2020년 03월 20일 22시 00분

밤 9시, 동아일보 발행인 김상만과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서로 끌어안았을 때, 나는 “이제 됐다, 이 시골의 목가적 풍경에서 떠날 때가 됐다”라고 생각했다.

1971년 6월 동아일보 사주 김상만의 덕소별장(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에서 열린 한 파티의 ‘주빈’ 월리엄 포터 주한 미국대사가 본국에 보낸 비밀보고서 가운데 한 대목이다.  

▲ 동아일보 사주 김상만이 소유했던 한옥 별장(경기도 남양주시)

▲ 주한미대사 월리엄 포터가 1971년 6월 2일 동아일보 사주 김상만 소유 덕소 별장에서 열린 ‘파티’ 과정을 기록해 본국에 보고한 9쪽짜리 3급 비밀문서

당시는 1969년 이른바 3선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의 토대를 마련한 박정희 정권의 언론통제가 갈수록 심해지던 시절이었다. 언론은 점점 무기력해져 갔고, 시민과 학생의 언론 불신은 극에 달했다. 대학가에서는 언론 화형식이 잇달아 벌어졌고, 언론을 향한 경고문도 수시로 발표됐다. 급기야 71년 3월 26일에는 서울대 학생 50여 명이 동아일보사 앞에 몰려와 “민중에게 지은 죄 무엇으로 갚을 텐가”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언론 화형식을 가졌다. 

▲ 1971년 대학가에서 열린 ‘언론화형식’

시위 현장에는 “개와 기관원과 기자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나붙었다. 동아일보의 젊은 기자들은 대학생들의 성토에 자극받아 1971년 4월 15일 제1차 ‘언론자유수호선언’을 결행했다. 동아일보를 시작으로 다른 언론사에서도 ‘언론자유수호선언’이 잇달아 발표됐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은 중앙정보부가 지휘했다. 기관원이 언론사에 상주하면서 기사를 넣고, 빼고, 줄이고, 키우는 등 온갖 압박을 가했다. 정보, 수사기관은 혹시 권력에 불편한 기사라도 나가는 날엔 담당 기자와 데스크를 불법 연행하기 일쑤였다. 

이렇게 독재권력이 언론의 목을 죌 때 동아일보 사주가 언론탄압의 책임자와 포옹하는 장면은 기괴하다 못해 초현실적이다. 더구나 주한미국대사 포터가 본국에 보낸 비밀보고서에 따르면 동아일보 사주는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 회동하기 위해 미국 대사 송별연 자리를 꾸몄다. 이 보고서를 본 정연주 전 동아일보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도대체 당시의 김상만이라는 동아일보 사주가 어떤 행태를 벌였는지, 그러니까 한 편에서는 기자들이 언론자유수호 투쟁을 하고, 대학생들은 동아일보 앞에 와서 언론 화형식을 하고 하는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당시에 박정희 권력의 핵심 실세인 이후락을 만나가지고 그것도 미국 대사의 힘을 빌리는 정말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사대주의 생각을 가지고 비굴하게 미국 대사한테 가서 그런 부탁을 하면서 여자들까지 동원하는 파티를 열어가지고 거기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마음을 얻고 그래서 뭔가를 보장받으려고 하는 거잖아요.그런 발상 자체를 했다는 것이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정연주 전 동아일보 기자(전 KBS 사장)

▲ 월리엄 포터 주한미대사 작성 비밀보고서에 나오는 덕소 별장 파티 참석자 명단

뉴스타파는 월리엄 포터 주한미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9페이지짜리 비밀보고서에서 언론과 권력의 유착 관계를 잘 보여주는, 동아일보 사주 김상만의 별장 파티 개최 배경과 현장 상황을 발췌해 공개한다. 

▲ 서울 중구 태평로 1가에 위치한 1980년대 조선일보 코리아나호텔 모습(오른쪽 서울시의회 옆 고층건물) 사진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조선일보와 박정희 정권의 유착은 이미 60년대부터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리아나호텔 건립을 둘러싼 일본 차관 특혜 제공이다. 

“1968년 5월인가 조선일보하고 권력 사이에 아주 굉장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조선일보가 코리아나 호텔을 짓는데 일본으로부터 400만 달러에 달하는 상업차관을 들여온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400만 달러라면 굉장히 큰돈이었어요. 그때 시중 은행의 금리가 연 26%였는데, 조선일보가 부담한 금리는 7% 정도에 지나지 않았어요. 박정희 정권이 조선일보에 굉장한 특혜를 준 겁니다. 그것이 저는 조선일보와 권력 간의 유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라고 보고 있거든요.”

신홍범 전 조선일보 기자(전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이후 조선일보는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에 부역하면서 끊임없이 몸집을 불려나갔다. 반면 독재 권력의 언론통제에 저항하며 자유언론실천 투쟁을 벌였던 동아와 조선, 두 신문의 언론인 150명은 1975년 강제 해직된 뒤 다시는 청춘을 바쳤던 신문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뉴스타파는 3월 23일(월) [조동(朝東) 100년] 시리즈 9편에서 조선과 동아일보 두 신문이 전두환 5공정권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고속성장을 이뤘는지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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