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X파일] ‘검찰 버전 녹취록’에 드러난 수사 무마… 남욱 “수사관이 복수해준대요”

2023년 03월 29일 14시 00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시작점에 ‘저축은행’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당시 많은 저축은행이 차명 법인을 만들어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었다. 적게는 수백억 원, 많게는 수천억 원까지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해주고 막대한 수수료를 챙겼다. 분식 회계는 물론 대출 알선 뒷돈까지 챙기는 비리까지 벌어졌다. 
그러다 2011년 저축은행 사건이 터졌다. 당시 대검찰청 윤석열 중수2과장이 주임검사를 맡아 수사를 벌였다. 그해 11월까지 검찰이 재판에 넘긴 저축은행 관계자와 정관계 인사는 76명에 달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대장동 핵심 멤버인 ‘자금책’ 조우형과 ‘로비스트’ 남욱이다.
이들은 2011년 대검 수사에 이어 2년 뒤인 2013년에도 서울중앙지검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2013년 검찰은 경기도 고양시 풍동에서 저지른 배임 혐의로 남욱과 조우형을 수사 중이었다. 예금보험공사의 고발로 검찰 수사가 착수됐지만, 김만배의 청탁으로 수사가 뭉개진 의혹이 ‘정영학 녹취록’을 통해 불거졌다. 
2013년 7월 2일 자, ‘정영학 녹취록’을 보면, 남욱은 정영학에게 ‘(김만배의 청탁을 받은) 검사장이 수사관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건이 끝났다’는 취지로 말한다. 수사 무마 정황이 드러났지만, ‘정영학 녹취록’에는 김만배의 청탁을 받아 어떤 식으로 수사가 무마됐는지, 더는 나오지 않는다.  

정영학 “사적 대화가 많아 뺐다”고 했지만, 예보 관련 수사 무마 추적할 단서 있어

정영학 회계사가 2021년 9월과 10월, 세 차례에 걸쳐 검찰에 제출한 일명 ‘정영학 버전 녹취록’의 분량은 총 1,325쪽이다. 검찰은 정영학의 통화 기록과 위치 정보 등을 확인해 정영학 버전 녹취록에 위·변조가 없음을 검증했다.
검찰은 또 녹취록 검증의 일환으로 정영학이 녹취록과 함께 USB에 담아 제출한 녹음파일을 글자로 새로 풀었다. 일명 ‘검찰 버전 녹취록’이 만들어졌는데, 총 1,356쪽 분량이다. 정영학 제출 버전보다 31쪽이 더 많다. 정영학이 임의로 생략한 녹취를 검찰이 온전히 작성한 것이다.   
2021년 10월 13일, 검사는 정영학을 조사하며 “(녹취록에 본인에게) 불리한 부분은 편집하고 유리한 부분만 들어간 것은 아닌가요?”라고 묻는다. 정영학은 “녹취서 중간에 생략이라고 된 몇 개 안 되는 부분은 골프 이야기 등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내용이고, 녹취파일에는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 2013년 7월 2일 자, 남욱과의 전화 통화 녹음 파일을 정영학 본인이 정리한 일명 '정영학 녹취록'의 첫 페이지(좌)와 검찰에서 같은 녹음파일을 따로 정리한 일명 '검찰 버전 녹취록' 표지(우). 전체 녹음 분량은 3분 56초이지만, 정영학은 2분 2초부터 녹취록을 만들었다.  

정영학 버전 녹취록(1,325쪽)보다 31쪽 많은 검찰 버전 녹취록(1,356쪽) 내용 분석

뉴스타파는 정영학이 임의로 생략한 녹취 내용을 살펴본 결과, 정영학의 말대로 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사적 대화도 여럿 있었지만,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와 관련해 눈여겨볼 내용도 있었다. 특히 ‘검찰 버전 녹취록’에서 대장동 업자들이 예보가 고발한 사건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로비를 펼친 정황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2013년 7월 2일 자, 녹취록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예보가 고발한 풍동 개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조사과가 수사하고 있었는데, 수사받던 남욱이 이날 정영학과 통화했다. 
남욱-정영학 통화 음성파일은 총 3분 56초 길이다. 검찰 버전 녹취록에는 3분 56초 전체 대화가 다 나온다. 반면, 정영학 녹취록엔 대화 시작부터 2분 2초까지 생략한 채, 2분 3초부터 녹취록이 시작된다. 정영학이 녹취록 작성을 하지 않은 이날 통화 전반부(0초~2분 2초까지)에 수사 무마 로비 정황이 생생하게 나온다.  
▲ 2021년 10월 13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진행된 정영학의 참고인 조사 진술 내용 중 일부.  검사가 정영학에게 제출한 녹음 파일이나 녹취록을 임의로 가공하거나 편집한 사실이 없는지 묻자 정영학은 "제대로 작성됐다"고 답한다. 

2013년 예금보험공사 고발 사건...검찰 버전 녹취록에 담긴 적나라한 수사 무마 과정

이날 남욱은 ‘서울중앙지검 조사과 최모 수사관(계장)이 자료 제출에 편의를 봐줬다’는 내용을 정영학에게 설명한다.
최 계장이 ‘자료를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지적하자, 남욱은 “저번에 계장님이 그냥 가라(가짜)로 내라고 해서 낸 겁니다”라고 답했다고 말한다. 그러자 최 계장은 막 웃으면서 “이건 뺍시다, 그럼”이라며 사건을 무마 또는 축소해줬다는 게 녹취록 속 남욱의 설명이다.    
▲ 검찰이 작성한 남욱(남자1)-정영학(남자2)의 2013년 7월 2일자 전화 통화 녹취록. 남욱은 '시킨대로 가짜 자료를 냈다'고 답하자, 수사를 맡은 최모 계장이 '빼자'고 했다며 정영학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남욱 "수사관이 예보 담당자(고발인) 불러서 복수해준다 했다"...정영학 "다행입니다" 

이어 검찰 수사관과 피의자(남욱)가 나눈 대화라고는 믿기지 않는 내용이 이어진다. 
‘검찰 버전 녹취록’에 따르면, 남욱이 예보로부터 고발당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예보 담당자에게 욕설을 퍼붓자, 최 계장(수사관)이 “그러면 내가 (예보 담당자를) 불러서 조져줄게. 내가 복수 한번 해줄게”라고 말했다고 정영학에게 전한다. 이어 정영학이 “(혐의가) 밝혀졌는데도 다행”이라고 말하자, 남욱은 “(수사관이) 아예 터놓고 덮어주더라고요”라고 답한다.
이후 정영학은 “네, 다행입니다”라고 화답하는데, 이렇게 답한 데는 이유가 있다. 당시 대장동 땅 대부분은 예금보험공사에 담보로 잡힌 상황이었고, 예보가 땅을 강제 경매할 경우, 대장동 업자들은 민간 개발을 접고 떠나야 했다.
여기(0초~2분 2초)까지가 ‘정영학 버전 녹취록’엔 없고, ‘검찰 버전 녹취록’에만 있는 2013년 7월 2일 자 남욱-정영학의 통화 내용이다. 
▲ 검찰이 작성한 남욱(남자1)-정영학(남자2)의 2013년 7월 2일자 전화 통화 녹취록. 남욱은 최 계장이 남욱을 고발한 예금보험공사 담당자에게 복수해 준다는 말을 했다고 정영학에게 전한다. 
▲ 검찰이 작성한 남욱(남자1)-정영학(남자2)의 2013년 7월 2일자 전화 통화 녹취록. 남욱은 최 계장이 자신의 혐의를 덮어줬다고 정영학에게 말했다. 

남욱 "만배 형이 고생을 많이 했네"...윤갑근 검사장의 수사 개입 의혹 

음성파일 2분 3초 이후로는 ‘검찰 버전 녹취록’과 ‘정영학 버전 녹취록’의 내용이 같다.
김만배가 윤갑근 검사장에게 청탁했고, 윤갑근이 수사관에게 전화 걸어 예보가 고발한 경기도 고양 풍동 배임 사건이 무마됐다는 내용이다. 실제 남욱과 조우형은 2011년 대검 중수부에 이어, 2013년 서울중앙지검 수사망도 빠져나갔다. 
▲ 검찰이 작성한 남욱(남자1)-정영학(남자2)의 2013년 7월 2일자 전화 통화 녹취록. 남욱은 김만배 전 기자가 검찰의 수사를 무마시키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고, 수사 과정에서 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었던 윤갑근 전 검사장도 언급됐다고 정영학에게 말한다.
▲ 검찰이 작성한 남욱(남자1)-정영학(남자2)의 2013년 7월 2일자 전화 통화 녹취록. 남욱은 최 계장이 윤갑근 검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고, 최 계장이 조우형의 혐의 또한 없던 일로 해 주기로 약속했다는 말을 정영학에게 전한다. 

예금보험공사 고발로 4년 뒤 '늑장 처벌'...번번이 무뎌진 검찰 수사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대장동 사업 종잣돈을 알선한 조우형은 2011년 대검 중수부, 2012~2013년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를 모두 빠져나갔다. 조우형은 2014년 예보의 고발로 경찰 수사를 받고서야 처벌받는다. 남욱도 예보의 고발로 2015년 5월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남욱의 혐의는 배임, 횡령, 변호사법 위반 등 3가지였다.
그러나 검찰은 변호사법 위반 등으로만 남욱을 기소했고, 1심 법원은 무죄 선고했다. 남욱은 1심 재판에서 횡령을 사실상 시인했지만, 검찰은 횡령 혐의로 기소하지 않았다. 그때, 남욱과 조우형을 변호한 이가 박영수 전 특검이다. 2015년 수원지검장이었던 강찬우는 퇴임 뒤, 화천대유의 자문 변호사가 됐다.  
어제(28일) 뉴스타파는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2015년에 수원지검 수사를 막아줬다”는 김만배의 검찰 진술을 보도했다. 수원지검에서 위례 아파트 관련 사건을 내사했는데, 곽상도가 힘써 줘서 없던 일이 됐단 것이다. 박영수, 곽상도, 강찬우. 세 명 모두 ‘대장동 로비스트’ 김만배와 인연이 있는 고위 법조인들이다.  
2011년 저축은행 사건부터 2015년 대장동 사업권을 따내기 전까지, 4년간 이어진 검찰 수사는 대장동 업자들의 최대 위기였고 약점이었다.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전모를 밝히려면 누가, 왜 이들의 수사를 막아준 것인지 조사가 필요하다. 
제작진
취재조원일, 봉지욱
웹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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