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보도 후, 검찰 고위직 간부는 법조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2015년에 수원지검이 압수한 정영학 휴대전화에는 녹음파일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즉, 녹음파일이 없어 수사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대장동 검찰 증거기록 40,330쪽에는 이런 검찰의 해명을 뒤집는 내용이 있다. 바로 대장동 사건의 핵심 인물 김만배가 검찰에서 한 '진술'이다.
[대장동 X파일]"곽상도가 수사 막아줬다"...김만배 자백에도 검찰은 수사 뭉갰다
김만배가 자백한 '2015년 수사 무마'...담당 검사 이름까지 진술
김만배는 2021년 10월 12일부터 총 12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만배는 자신의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다. 그는 천화동인 1호는 '100% 내 것'이며, '50억 클럽'은 자신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줄이려 지어낸 '허구'라고 주장했다.
김만배가 검사에게 자신의 혐의를 딱 한 번 실토한 적이 있다. 2015년 수원지검이 수사하던 두 개 사건에 대해 '청탁'을 했다고 자백한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2015년 수원지검 수사는 남욱과 조우형이 횡령 및 뇌물(알선수재)로 조사받은 사건이 전부였다. 그런데 김만배는 또 다른 '청탁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진술은 2021년 11월 14일자, 피의자(김만배) 신문조서에 나온다.
이날 김만배는 "별도로 수원지검 특수부에서 김현수 검사가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발주한 위례 개발 사업 관련하여 수사를 진행하였는데, 위 건과 관련하여 당시에도 (검찰이) 정영학을 조사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날 조서 내용을 종합하면, 수원지검은 위례 사건을 내사(수사 전 단계) 중이었다. 김만배는 "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는데, 당시 부장검사가 이용일 검사였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라며 검사 이름까지 거명했다. 그 당시 이용일은 수원지검 특수부장이었다. 김만배는 자신이 손을 써서 특수부가 내사 중인 위례 사건을 무마했다고 검사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 김만배 피의자 신문조서(2021.11.14)
김만배 "곽상도가 힘써서 무혐의 종결"...자신의 혐의 중 유일하게 인정
이날 조사에서 김만배는 "곽상도가 힘을 써서 무혐의 종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검사에게 말했다. 검찰 증거기록에는 정영학과 남욱이 "김만배가 (형사 사건과 관련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곽상도에게 인사를 시켰다"고 진술하는 대목도 있다.
▲김만배 피의자 신문조서(2021.11.14)
김만배 "곽상도에게 감사의 뜻 표하라"...구체적 진술에도 수사 안 한 검찰
같은 날 조사에서 검사는"곽상도에게 후원금을 보내는 방법으로 감사 표시를 하라 했느냐"고 물었다.
김만배는 "남욱과 정영학에게 후원금을 내라고 하였다면, 곽상도가 사건 무마를 해준 것에 대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라는 의미였을 것으로 기억합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자신이 "곽상도에게 사건 처리를 부탁했고, 실제로 잘 무마됐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만배의 자백 석 달 후, 검찰은 아들의 퇴직금 명목으로 뇌물 50억 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곽상도를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2015년에 곽상도가 수원지검 수사를 무마한 혐의는 포함하지 않았다. 김만배의 반복된 진술에도 별도의 수사를 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2월 8일, 1심 재판부는 곽상도 아들의 50억 원 퇴직금은 무죄라고 판단했다. 판사는 50억 원에 대한 대가성을 검찰이 입증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검찰이 원인을 제공한 셈이다. 김만배가 유일하게 인정한 곽상도의 '수사 무마' 혐의를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
▲김만배 피의자 신문조서(2021.11.14)
곽상도,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김만배 청탁 없었다"
곽상도 전 의원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2015년에 수원지검이 위례 아파트 사건을 내사한지도 몰랐고, 김만배가 이를 막아달라고 청탁한 사실도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2016년에 남욱이 자신에게 전달한 5천만 원에 대해서는 "남욱이 수원지검 수사를 받을 때, 법률적인 도움을 준 대가"라고 주장했다.
앞서 곽상도 사건 1심 재판부는 남욱이 건넨 5천만 원을 불법 정치자금이라고 보고, 벌금 800만 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그러나 남욱이 불법 정치자금을 왜 줬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2015년 수사 무마에 대한 대가일 가능성이 크지만, 앞서 말했듯 검찰은 이 부분을 따로 수사하지 않았다.
8년 전 누가, 왜 수사 뭉갰는지 조사해야
2015년 초, 수원지검은 정영학 자택을 압수 수색해 여러 대의 휴대전화를 확보했다. 여기엔 수십 개의 통화 녹음파일이 저장돼 있었다. 뉴스타파가 지난 1월 공개한 '정영학 녹취록'에는 2012~2013년 사이 대장동 업자들이 유동규에게 뇌물을 주고 위례 아파트 사업권을 따내는 과정이 나온다. 또 김수남, 윤갑근, 우병우 등 고위 법조인들의 이름도 등장한다.
이 시기의 정영학 녹음파일은 위례 사건을 내사하던 검찰에겐 주요 증거였다. 그러나 내사는 수사로 확대되지 않고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