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제로의 한반도, 김정은의 '파병 베팅'은 무엇을 노리나
2024년 11월 20일 18시 45분
국내 일부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한국 정부와 지자체가 단속하자 지난 몇 주 동안 미국 워싱턴의 이른바 ‘인권단체’들이 문재인 정부를 계속 비난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내 북한인권 활동가 수잔 숄티가 이끄는 ‘북한자유연합’과 기독교 단체 ‘주빌리캠페인USA’가 이를 주도했다. 주빌리캠페인은 홈페이지에 자신들을 파키스탄,이란, 중국, 북한 등지에서 박해받는 소수 종교 집단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지지하고 돕는 단체라고 소개한다.
북한자유연합, 주빌리캠페인 등의 단체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을 잇달아 보내 탈북자들의 법적 권리 보호를 요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 극우 인사들을 옹호하기도 했다. 기자는 이 단체에 질의서를 보내 서한 내용에 대해 물었으나 대부분 응답하지 않았다. 주빌리캠페인 측은 “질문이 편향적”이라고 따지기까지 했다.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 스티븐 코스텔로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북한인권 단체들의 인권 활동은 신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김대중평화재단 부이사장을 지냈고, 현재 조지워싱턴대 방문연구원이다. 코스텔로는 이들 단체는 “인권 문제를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 인권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신뢰할만한 단체들은 오히려 북한과의 외교를 지지하는 입장”이라며 “독재 정권을 반대하는 것은 쉬운 반면 원칙에 따른 전략적이고 실용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워싱턴의 탈북자 인권 단체들은 ‘대북 관여(engagement)’ 정책에 별 관심이 없다. 이 단체들이 옹호하고 나선 한국인 중에는 사랑제일교회 목사 전광훈도 들어있다. 그는 최근 한국의 코로나19 재확산 논란의 중심에 선 극우 목사다. 뉴욕타임스는 8월 20일자 기사에서 전광훈 목사와 사랑제일교회를 두고 “문재인 정권 하에서 한국이 공산화되고 있다고 두려워 하는 수많은 보수 기독교인을 끌어들이는 자석”이라고 묘사했다.
수잔 숄티가 이끄는 북한자유연합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8월 12일자 서한에는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정치인들의 서명도 있다. 이 편지는 “북한인권단체들을 위협하고 괴롭히는 문재인 정권은 이러한 정책을 재검토하고, 탈북자 단체의 북한인권 개선 노력을 지지하라”고 날을 세웠다. 기자는 수잔 숄티에게 이 편지와 관련해 코멘트를 요청했으나 그녀는 응답하지 않았다.
이 서한에 서명한 사람 중에는 레이건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리처드 앨런도 포함돼 있었다. 카터 행정부 인권담당 차관보 출신인 로베르타 코헨, 오바마 대통령의 북한인권특사였던 로버트 킹 대사의 이름도 있었다.
여기에는 미국에서 북한에 적대적이기로 정평이 난 인물도 몇몇 포함됐다. 그중 타라 오는 극우 성향의 동아시아연구소 대표이다. 그는 연구소 홈페이지에 ‘뉴데일리’ 기사를 번역해 싣는다. 또 다른 서명자는 미국기업연구소의 니콜라스 에버슈타트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북한을 비판하는 칼럼을 자주 쓴다.
수잔 숄티 등은 8월 4일에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한국 정부가 “기본적인 자유권을 억압하고 있다”며 “여기에는 탈북자, 인권운동 단체에 대한 탄압이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문 대통령에게 보낸 항의 서한에서 숄티는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박상학과 큰샘 대표 박정오 형제가 “한국 정부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빌리캠페인도 지난 8월 말부터 청와대로 항의 서한을 보내는 일에 동참했다. 주빌리캠페인은 코로나19 재확산 사태 와중에 한국 정부가 사랑제일교회에 취한 조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앤 부왈다 주빌리캠페인 대표는 “어느 나라에서든 종교 공동체를 희생양 삼고 박해하는 것은 문제이지만, 이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는 게 충격적이다”라고 썼다. 주빌리캠페인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 항의 서한에 57개국에서 266개 단체와 개인 1만4832명이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기자는 주빌리캠페인에 이메일로 질의서를 보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어기는 교회 등 단체를 처벌할 권한이 한국 정부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또한 주빌리캠페인이 보낸 서한 내용이 한국 내정에 간섭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물었다.
부왈다 대표는 이메일 답장에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서한에 이미 나와 있다”라고 답했다. 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기자의 일이라고 다시 질문하자 그녀는 “기자가 편향적이어서는 안 된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 통일부와 미 국무부 자문 역할을 해온 스티븐 코스텔로는 북한자유연합과 주빌리캠페인의 주장과는 반대로 대북전단 살포를 도발 행위로 정의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며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 당시에는 대북전단을 더 엄격하게 단속했다”라고 말했다.
코스텔로는 이들 단체가 벌이는 “북한을 도발하고 남한 공공안전을 무시하며, 외교를 반대하는 행동들은 그들을 ‘의사 표현 자유’의 수호자가 아닌 불법적 공격자로 만든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이 단체들의 비판 공세는 미국 등 해외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한 예로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진보 통치자들이 드러낸 내면의 권위주의’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지난 7월에는 워싱턴포스트가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박상학에게 기고문 자리를 내줬다.
해당 기고문에서 박상학은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고, 김정은 정권의 거짓말과 세뇌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활동가와 탈북자들의 노력을 (문재인 정부가)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상학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단순히 한국의 ‘인권’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이 탈북민 단체들의 활동은 미국 정부가 남북한 양쪽 모두를 보다 더 압박해주기 바라는 미국 방위산업체 이해관계자들과 미국 보수 매파의 지지와 금전 지원을 받는 일종의 국제적 캠페인이 됐다.
북한인권을 외치는 워싱턴의 단체들은 미국의 오랜 습성을 보여준다. 북한과 평화 외교를 섬세하게 쌓아가려는 한국의 주권을 억제하려 드는 것이다.
수잔 숄티 등은 앞서 언급한 8월 4일자 편지에서 “한국 정부가 계속해서 북한 인권 운동가들과 관련 단체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국제 사회에 이상 신호를 보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지난 수십 년 동안 발전해 온 한국 내 자유와 인권을 후퇴시키는 셈”이라고 경고했다.
숄티의 서한이 꼽은 ‘탄압’ 사례 중에는 ‘보랏빛 호수’의 저자인 탈북 작가 이주성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된 사건도 있다. 이 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 운동 때 김일성에게 북한군 특수부대 파견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그는 김대중평화센터로부터 고소를 당한 뒤 지난 6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미국에서는 베네수엘라 출신 재력가인 토르 할보르센 ‘인권재단’(HRF) 회장도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공세에 합류했다.
할보르센은 박근혜 정부 당시 남북 대화에 반대하며 북한을 해킹하자는 ‘Hack Them Back’ 캠페인을 이끌어 한국에서도 얼굴이 알려진 인물이다.
할보르센도 최근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항의서한을 보내 “문재인 정부의 끔찍한 조치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며 자의적 구금을 다루는 UN 실무그룹(United Nations Working Group on Arbitrary Detention)에 이 문제를 제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 단체들의 정체는 무엇이고 이들의 자금 출처는 어디일까? 취재 결과 워싱턴 내 초강경파와 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단체들이 외치는 인권 구호 이면에는 이른바 “불량배 국가”의 정권을 교체한다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숄티의 북한자유연합과 할보르센의 인권재단은 미 정부가 관여하는 ‘미국민주주의진흥기금’(NED)과 더불어 탈북자를 후원하는 대표적인 단체다. 이들은 미국 내 가장 힘있는 북한 인권 단체로 알려진 ‘북한인권위원회’(HRNK)와도 연결된다. 수잔 숄티와 칼 거쉬만 NED 회장은 HRNK 이사진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동안 NED가 지원한 북한 관련 단체로는 ‘북한 워치’(NK Watch), 자유북한라디오, 북한전략센터, ‘데일리NK’ 등이 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과거 NED의 후원을 받아 워싱턴에 방문한 사실은 2017년 뉴스타파가 보도한 바 있다.
미국 내 우파 평론가 고든 창은 폭스뉴스나 MSNBC 등 방송 매체에 한반도 전문가로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지난해 9월 ‘디펜스포럼재단’(DFF)이 주최한 컨퍼런스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끝장내기 위해 전력을 쏟고, 한국을 없애려고 일하는 중”이라고 연설한 바 있다.
북한자유연합의 모단체이기도 한 디펜스포럼재단은 홈페이지에 자신들을 “남한 거주 탈북자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탈북을 돕는 지하조직을 지원한다”고 소개했다. 디펜스포럼이 후원하는 단체 중에는 단파 라디오를 통해 북한으로 방송을 송출하는 ‘자유북한라디오’가 있다. 이들은 북한에 많은 청취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디펜스포럼의 핵심 활동 중 하나는 탈북자들을 미 의회로 초청해 북한 인권 실태를 증언하게 하는 행사를 주최하는 것이다. 지난해 9월에는 중국 정부에 맞서는 홍콩 민주주의 시위와 한국 보수 세력의 반정부 집회를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하는 포럼을 열기도 했다.
수잔 숄티 디펜스포럼 회장은 대북전단 살포 행사에 참여할 때마다 미디어 홍보에 열을 올린다.
디펜스포럼은 홈페이지에 예산이나 후원자 정보를 직접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가 미국 국세청 기록을 찾아본 결과 이 단체의 2018년도 예산은 41만 달러(4억8천만 원)로 확인됐다. 2018년 전체 예산의 25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11만 달러는 해외 단체를 지원하는 데 쓰였다. ‘북한뉴스’(NK News)는 디펜스포럼재단이 2007년에서 2018년 사이 적어도 12만 달러(1억4천만 원)를 대북전단 살포를 위해 지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디펜스포럼 이사진에는 미국 군산복합체 관계자 및 정치적으로 매파 성향을 가진 인사들이 여럿 포진해 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네오콘으로 알려진 제임스 울시다. 울시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3~1995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역임했다.
그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적극적으로 찬성했고 미군이 북한을 선제공격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하기도 했다. 2017년 쓴 글에서도 “미국은 북한을 선제타격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며 “여기에는 핵무기 사용도 포함된다”라고 말했다.
울시는 ‘팔라딘캐피탈’ 같이 미 정보기관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여러 개를 운영하거나 그곳에 자문을 제공해왔다. 디펜스포럼 부대표 타이달 맥코이는 로켓과 미사일 제조업체인 ‘티오콜’의 최고경영자였고 레이건 행정부 당시 공군장관을 역임했다. 맥코이는 ‘우주운송연합’(Space Transportaiton Association)이라는 비영리단체의 대표로 있으며 미국 로켓 제조업체들의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디펜스포럼재단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인물은 수잔 숄티와 채드윅 고어 부부다. 채드윅 고어는 디펜스포럼의 설립이자 초대 회장이기도 하다.
고어의 이력을 보면 그가 국방·안보 분야에 깊숙이 관여된 인물이라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링크드인’에 올라온 그의 이력에 따르면 고어는 현재 미 국무부에서 고급 안보를 다루는 선임 자문역으로 활동 중이다. 1991~1992년에는 미 국방정보국(DIA) 소속 국방정보대학에서 ‘합동 장교 교육’(Joint Officers Training) 과정을 수료했다. 2007년부터 2013년 사이에는 미 정부와 국방 관련 계약을 맺은 ‘캠버’라는 회사에서 일했다.
기자는 고어의 방위산업 관련 경력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고 이메일을 보냈으나 그는 응답하지 않았다.
취재 | Tim Shorrock |
번역 | 이명주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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