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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사를 '기적의 신약'으로 만든 언론

2019년 11월 15일 20시 23분

언론의 생명은 신뢰다. 언론 사업은 뉴스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정보를 판매하는 비즈니스지만 사실은 그 속에 담긴 신뢰를 판다고도 할 수 있다. 올해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공개한 세계 38개 국가 언론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언론 신뢰도는 22%였다. 조사 대상 국가 중 꼴찌다. 그것도 4년 연속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망하는 언론사가 거의 없다. 왜일까?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한국 언론의 기이한 수입구조에 주목했다. 그 중 하나가 기사를 가장한 광고다. 또 하나는 세금으로 조성된 정부의 홍보, 협찬비다. 이 돈줄이 신뢰가 바닥에 추락해도 언론사가 연명하거나 배를 불리는 재원이 되고 있다. 여기엔 약탈적 또는 읍소형 광고, 협찬 영업 행태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가 타파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게 불가능하다. 뉴스타파는 이 시대 절체절명의 과제 중 하나가 언론개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추적 결과물은 언론개혁 계기판 역할을 할 뉴스타파 특별페이지 ‘언론개혁 대시보드’에 집약해서 게재한다.-편집자 주

10분짜리 간단한 주사 시술로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며칠 전까지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는 사람들이 마음껏 걷고 체조를 했다. 한 지역방송국이 방송한 의료 정보 프로그램 속 장면이다. 

이 장면은 58세 이필선 씨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는 20년 가까이 무릎 관절염에 시달렸다. 반년에 한번 맞는 소염진통제 주사가 치료의 전부였다. 가게일 때문에 오래 쉬어야 하는 수술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 씨는 직접 인터넷을 검색해 방송에 나온 의사와 병원을 찾았다. 양쪽 다리에 주사시술을 받는 비용은 1450만 원. 주저하는 이씨에게 의사는 확실한 효과를 장담했다. 지난해 11월, 이 씨는 그렇게 인보사 케이 주사를 맞았다.

▲ 이필선 씨(58)는 의료 정보 프로그램을 보고 찾아간 병원에서 인보사 케이 주사를 맞았다.

“며칠이면 편하게 걸을 수 있다”던 의사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무릎 통증은 계속됐고, 이 씨는 다시 소염진통제 주사에 의존해야 했다. 그 사이 무릎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이전엔 가능했던 앉고 서는 동작이 이제는 뭔가에 기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른바 ‘인보사 사태’ 이후, 이씨에겐 무릎의 통증만큼이나 힘든 고통이 생겼다. 나라에서 허락받지도 않은 어떤 물질이 몸 안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에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하지만 방송사와 병원은 그저 유감이라는 말 뿐이다. 국가도, 제약사도 침묵하고 있다. 결국 이 씨는 인보사를 개발한 코오롱생명과학 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 소송에 참여했다. 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사에 따르면, 인보사 케이 투약 환자 4명 가운데 1명은 이씨처럼 언론 매체를 통해 인보사 케이 주사를 접한 사람들이었다. 

전문가들 "인보사 효능, 부실한 연구 논문 하나뿐인데..."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코오롱생명과학이 개발한 골관절염 세포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 케이의 품목허가를 취소한 지 반년이 지났다. 2017년 식약처 판매 허가 당시 신고된 제품의 주성분 중 일부가 허가된 성분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제품이 판매된 2년 동안 이 주사제를 맞은 환자는 3000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와 코오롱 측은 환자들에 대한 장기 추적 검사를 하겠다고 대책을 내놨지만, 아직 누가 이 주사를 맞았는지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의료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제약사의 도덕적 해이와 정부 당국의 무능이 부른 의료 참사라고 말한다.

▲ 코오롱 측과 언론은 인보사 케이가 연골세포 재생 효과를 가진 첨단 세포 유전자 치료제라고 홍보해 왔다.

인보사 케이가 처음 주목받은 이유는 세계 최초의 세포 유전자 치료제라는 점 때문이었다. 무릎의 연골이 닳아 없어지는 것이 관절염 통증의 주된 원인인데, 첨단 유전공학 기술을 접목한 인보사 케이를 사용하면 이 연골세포를 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 개발사 코오롱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일부 의료전문가들은 이 약을 '세포 유전자 치료제'라고 부르는 것에 의문을 던진다. 치료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인보사 케이의 임상 연구 논문을 검토한 백한주 가천대 의대 류마티스 내과 교수의 말이다. 이 논문은 인보사 케이의 효능과 관련된 유일한 학술 연구 자료다.

연구 결과를 보면 맹검(Blind Test)이 작동 안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보사 케이 주사 이후 극심한 통증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부작용이 나타나냐, 안 나타나냐에 따라 실험자와 피실험자가 투약 여부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인보사 투약군 11명에게만 부작용이 나타나고 대조군에게는 한 명도 부작용이 없었던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런 현격한 차이는 맹검이 깨졌다고 분석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검사 중 탈락자가 유난히 많은 점, 구제약(Rescue Drug) 사용 빈도가 양 집단에서 동일하게 나타난 점도 임상 연구의 가치가 현격히 떨어지는 부분입니다. 시작 단계 논문이고, 약점이 있는 논문이라는 얘기입니다.

백한주 가천대 교수

식약처도 2017년 7월 허가 당시, 코오롱 측이 주장했던 연골세포 재생 효과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다. 인보사 대신 생리식염수를 투약한 환자들에 비해 통증 개선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 입증됐을 뿐, 연골 재생 같은 치료 효과는 없었다고 명시했다. 아직 이 약의 효과가 기존의 진통소염제보다 뛰어나다는 과학적 입증도 이뤄진 바가 없다. 여기까지가 현재 시점에서 인보사의 효과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전부인 셈이다.

광고주는 띄우고, 부실은 감추고, 언론에 속은 환자들은 '나 몰라'  

그럼 검증된 적이 없는 인보사를 기적의 신약으로 만든 것은 누구였을까. 

언론이 처음 인보사에 주목한 것은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7월, 민경욱 당시 KBS 워싱턴 특파원(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한인회사 티슈진이 개발한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 TG-C가 미국에서 임상 실험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티슈진은 코오롱의 미국 자회사, TG-C는 인보사 케이의 당시 명칭이었다. 민 의원은 이 치료제가 연골 세포 재생 효과와 안정성을 갖췄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보도 당시 민 의원이 티슈진의 비상장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2015년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 시절 재산 공개 내역에 따르면, 민 의원은 액면가로 2000만 원에 해당하는 티슈진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민 의원이 이 주식을 취득한 것은 홍보기사를 내기 2년 전인 2004년, 결국 자기가 투자한 업체의 홍보기사를 셀프보도했던 셈이다.

▲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은 2006년 KBS 워싱턴 특파원 시절 티슈진 비상장주식을 보유한 상태에서 티슈진 개발 치료제의 임상 실험 소식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민 의원은 “지인의 추천으로 투자한 것”이며, “한국 기업의 임상 실험 사실을 취재해 보도한 것”일 뿐 “티슈진에게 이득을 주거나 개인적 이익을 얻으려 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민 의원이 보유한 티슈진 주식의 가치는 올해 3월 재산 공개 당시 4억 원 이상으로 급등했지만, 현재 티슈진 주식은 거래 정지 처분을 받은 상태다.

인보사라는 이름이 언론을 통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코오롱 측이 식약처에 판매허가 신청을 냈던 2015년부터다. 뉴스타파는 언론의 ‘인보사 띄우기’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201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성된 인보사 관련 기사 2262건을 분석했다.

인보사 띄우기 보도가 가장 많았던 시기는 판매 허가가 이뤄졌던 2017년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일제히 인보사 판매 허가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다루거나('60억 달러 관절염 치료제 시장 열린다') 검증되지 않은 약의 효능을 홍보('단 1번 주사로 2년간 무릎 관절 통증·기능 개선" 희소식') 했다. 인보사 판매를 자축하는 코오롱 주최의 행사를 보도하며 당시 이웅열 회장을 19년간 모험을 감행한 뚝심 있는 인물(가능성 0.00001%에서 일군 ‘인보사 성공 신화’)로 묘사하기도 했다.

▲ 2017년 식약처가 인보사 케이의 판매를 허가하자 언론들은 재벌 경영인의 뚝심이 거둔 성취로 평가했다. 식약처가 '인보사의 주 효능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발표한 내용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정작 식약처가 인보사의 주요 효능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을 때, 이 사실을 부각해 보도한 매체는 한 곳도 없었다. 오히려 식약처 발표 이후에도 계속해서 기능 개선 효과가 있다는 코오롱 측의 주장을 인용해 보도한 매체도 있었다.

심지어 인보사의 판매 금지와 안전성 논란이 벌어졌을 때는 환자에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코오롱 측의 입장만을 그대로 실어나른 언론도 뉴스타파 분석 결과 다수 포착됐다. 

인보사가 안전하다고 해도 성분명이 잘못 알려지고 효과도 불분명한 약을 주입받는 것 자체가 환자에겐 엄청난 피해입니다. 이 환자들이 종양 발생 가능성이 있는 세포주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이 주사를 맞았겠습니까. 엄청난 위해를 가해놓고 뻔뻔하게 문제가 없다고 하는 코오롱 측도 후안무치한데, 언론이 기계적 중립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코오롱의 얘기를 그대로 쓴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언론의 책무가 ‘진실에 대한 접근’ 아닙니까? 진실은 코오롱이 환자에게 위해를 가한 사건이라는 것이고, 언론의 역할은 코오롱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나 감시해야 하는 겁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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