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람 중사 사건 재판 지상 중계] ⑤ 전익수와 통화한 군법무관, “압력 느낄 수밖에 없었다”
2023년 03월 22일 10시 00분
저는 이 사건이 생기고 나서 햇수로 3년 동안, 685일 동안 예람이와 같이 소통하고 아침저녁으로 교감하면서 여기서 숙식을 하고 있습니다. 특검 재판이 진행될 때마다 계속 가고, 작년에는 국방부 군사법원 재판에도 갔습니다. 장례식장이 집이 돼 버렸습니다. 소파에 상당한 양의 서류를 깔아놓고 한 장씩 한 장씩 들여다보면서 계속 궁금할 때마다 찾아서 복기하고 또 기억해 내고 새로운 건 체크합니다.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 씨
바로 그 일(성추행)이 있을 때, 그 다음날 내려가서 반장 노OO 준위하고 김OO 대대장을 만났어요. ‘아버님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해자가 인정했습니다, 가해자와 이예람 중사를 분리시켰습니다’ 그러더라고요. 가해자가 ‘나는 죽기로 용서를 구한다’라고 했다면서 ‘병사를 따로 배치해서 가해자를 감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아니에요. (가해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탄원서를 받고 있었어요. 군이 우릴 속인 겁니다.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 씨
아무 것도 없는 중간수사 결과를 가지고 왔어요. 이해가 안 됐어요.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이 자리는 의미가 없다, 의미가 없는 자리다. 이렇게 오실 필요가 없는 자리였다’라고요. ‘그냥 가시라’고 얘기했던 것 같아요.고 이예람 중사 어머니 박순정 씨
식탁에 앉아서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 생생하고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예람이가 식탁에 올려놓은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엄마, 사실은 내가 너무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때 상담관한테 장문의 메일을 보냈고 자살방지센터에도 보냈어’라고 얘기했어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딸이 그 정도로 괴로워하고 그 정도로 군이 사건을 무마하려고 시도하는지 몰랐거든요.고 이예람 중사 어머니 박순정 씨
제가 너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우리 딸이 벌떡 일어나 손을 들면서 저에게 ‘엄마, 우리 산책 가자. 그런데 엄마 나는 자살은 안 할 거야’ 라고 말했던 것도 생생하게 기억해요. 저는 그 말을 믿었어요. 강한 아이였고, 제게는 친구이자 상담자 같은 딸이었는데, 그렇게 떠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어요.고 이예람 중사 어머니 박순정 씨
한 피고인의 변호사가 질문했었잖아요. ‘어느 부분이 자살암시냐’고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 화가 났어요. 내가 알고 있는데 왜 변호사는 그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저렇게 얘기할까 싶었죠. 예람이는 피해자잖아요. 그리고 예람이는 지금 살아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 말에 대해 반박할 수 없는 예람이에게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딸에게 너무 미안하고...고 이예람 중사 어머니 박순정 씨
우리 딸은 애칭이 되게 많았어요. 어떨 땐 땡이라고 불렀다가 어떨 때는 애롬이라고 불렀다가 어떨 때는 딸랑구라고 했다가 그때 그때 다르게 불렀어요. 예람이 생일이 4월 27일인데, 생일 날 저에게 ‘엄마, 예람이 낳아줘서 세상빛 보게 해줘서 고마워’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그 문자가 너무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추억이 모두 아픈 기억이 됐어요. 지난 2년 동안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고 이예람 중사 어머니 박순정 씨
취재 | 김주형 |
영상 취재 | 김기철 오준식 이상찬 |
편집 | 정지성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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